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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연의 시시각각] ‘어쩌다 대통령’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평범한 30대의 고교 역사 교사가 수업 중 정부 부패를 육두문자로 비판한다. 한 제자가 휴대전화로 몰래 찍어 유튜브에 올리는 바람에 국민적 지지를 받고 하루 아침에 대통령에 당선된다. ‘국민의 종’(Servant of the People)이란 우크라이나 TV의 정치 드라마 얘기다. 더 황당한 건 현실이다. 바로 그 코미디언 젤렌스키가 지난 주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당선돼 곧 취임한다. 70% 넘는 압도적 지지로 드라마의 60%대 당선 지지율을 넘어섰다.
 

누더기 공수처 제2사냥개 십상
‘제왕적대통령 종식’ 공약대로
인사권 풀어줘야 호랑이 될 것

TV속이든 현실이든 그를 대통령으로 밀어 올린 건 분노의 힘이다. 소수 특권층의 갑질과 부패에 질려버린 국민이다. ‘젤렌스키가 대통령이 되면 재앙이 될 가능성이 90% 이상이지만 그래도 그에게 투표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다고 한다. 현직 대통령을 창피 주려 그를 선택했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그도 그럴게 지금 대통령도 5년 전 부패 척결을 앞세워 압도적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자 곧 이 ‘어쩌다 대통령’에게 박살났다.
 
드라마에서 대통령을 연기한 게 유일한 정치 경력인 코미디언이 나라를 제대로 수술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부정적 견해가 많다. 사람들은 젤렌스키가 누군지,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잘 모른다. 다만 그런 정치 무경험이 당선 비결인데, 싹 바꿔보자는 움직임은 확산 추세다. 미국이나 슬로바키아가 정치권 밖에서 대통령을 골랐다.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을 떠올린 이탈리아 민심도 맥락이 같다.
 
왜 그런 것인가. 국민 이익엔 등신이고 자기 이익에만 귀신인 기존 정치권에 환멸이 커졌기 때문이다. 코미디언이든 부동산업자든 ‘신상품’이라야 뜬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정치 문법에 고개를 돌리고 이젠 경쟁자 공격보다 차라리 자신을 희화시키는 능력에 감동 받고 열광한다. 현직 대통령을 향해 ‘나는 당신이 실수해서 생긴 결과’란 너스레로 펀치를 날리는 젤렌스키다.
 
안타깝고 한심한 건 우리 정치야말로 젤렌스키가 조롱하는 코미디 정치를 빼닮았다는 사실이다. 남의 티끌엔 거품을 물지만 내 눈 들보는 모르쇠인 이중잣대 말이다. 적폐청산 대상이란 게 적폐(積弊)아닌 적패(敵牌·적의 무리)인 경우가 허다하다. 당장 무죄 판결 난 박찬주 전 육군대장,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그렇다. 우리 편만이 무조건 옳다는 사시(斜視) 때문일 것이다. 박 전 대장은 ‘적군 포로로 잡힌 느낌’이라고 했다.
 
숫제 정치를 세우고, 검찰총장 항명까지 부른 공수처법과 수사권 조정 패스트트랙은 우크라이나 TV에도 안 나오는 코미디다. 공수처는 대통령 측근과 친인척, 집권당 의원의 권력형 비리에 검찰의 칼이 무딘 걸 보완하자는 제도다. 그런데 여권의 지금 법안은 모두 다 빠진 누더기다. 또 공수처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다. 제 2의 사냥개로 가는 직행 코스다. ‘대통령의 공수부대가 공수처’란 얘기가 나도는 데엔 이유가 있다.
 
공수처를 만들고 검찰 수사권만 넘기면 권력자의 비리와 부패가 한 방에 해결될 거란 믿음은 착각이다. 정치적 독립 확보, 막강한 권한 통제 방안이 선결 과제다. 더 나아가 그런 방안을 아예 검찰에 적용하면 된다. 그게 인사권이다. 인사권만 풀어주면 사냥개 소리 듣는 검찰도 금새 호랑이로 되돌릴 수 있다. 제왕적 대통령을 끝장낸다는 게 이 정부 다짐이었다. 촛불정신이라고 했다. 그래 놓곤 말 뿐이다. ‘어쩌다 대통령’을 노리는 누군가나 반길 일이다.
 
TV 드라마 속 젤렌스키는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정치는 모른다. 다만 부끄럽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는 건 안다’고 역설한다. 부끄럽지 않다는 건 언행이 일치하고 내 허물에 엄격하다는 거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니체는 말했다. 욕하면서 배우기 십상이란 뜻이다. 말로만 되는 일은 없다. 깨끗한 손이 건강을 만든다.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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