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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 원숭이띠 다섯의 반란 “우리 힙한 게 싫다”

복고풍의 선율과 시적인 가사로 인기를 끌고 있는 5인조 밴드 ‘잔나비’. [사진 일간스포츠]

복고풍의 선율과 시적인 가사로 인기를 끌고 있는 5인조 밴드 ‘잔나비’. [사진 일간스포츠]

밴드 ‘잔나비’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이들이 지난달 발표한 2집 ‘전설’의 타이틀곡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는 각종 음원차트에서 1~2위를 달리며 방탄소년단과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다. 데뷔 5년 차 인디밴드가 세계적 아이돌 그룹과 차트 경쟁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
 
덕분에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 없지만’ ‘사랑하긴 했었나요…’ ‘She’ 등 이들의 전작까지 차트에서 역주행하며 주목받고 있다. 장기하와 얼굴들, 혁오의 명맥을 잇는 스타급 밴드의 탄생이다.
 
원숭이를 뜻하는 잔나비가 밴드명이 된 건, 리더 겸 보컬 최정훈(27) 등 멤버 다섯명이 모두 1992년 원숭이 띠라서다. 경기도 분당의 동갑내기 친구인 이들은 음악 하나로 의기투합, 공연만으로 대중과의 접점을 넓혀왔다.
 
‘잔나비’의 음악에선 좋았던 옛 시절에 대한 동경과 아련한 복고 감성이 묻어난다. 대놓고 ‘힙한 게 싫다’고 말하는 이들이다. 그럼에도 지금 가장 ‘힙한’ 밴드가 된 건 복고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음악의 힘 때문이다.
 
‘잔나비’의 음악은 기승전결이 뚜렷한 멜로디가 특징이다. 80~90년대 가요 황금기 시절,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던 히트곡들 같다. 비틀스·퀸·산울림·유재하 등 전 세대 뮤지션들의 체취가 느껴지는 건 이 때문이다. 빈티지한 느낌의 사운드 또한 클래식하면서도 풍성하다. 잔향과 울림이 오래도록 귀를 잡아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익숙한 듯 새롭고, 촌스러운 듯 세련된 음악이다. 가사도 시적이면서 은유적이다.
 
‘나는 읽기 쉬운 마음이야/당신도 스윽 훑고 가셔요(중략)/추억할 그 밤 위에 갈피를 꽂고선/남몰래 펼쳐보아요’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이별 통보조차도 SNS로 한다는 요즘 세대의 감성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애 늙은이’ 감성이다.
 
어른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 어른이 돼가고 있다는 담담한 고백을 담은 노래 ‘꿈과 책과 힘과 벽’은 성장통을 앓는 동년배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다.
 
시적인 가사에 음유시인처럼 읊조리는 최정훈의 보컬이 얹어지면, 아무리 EDM 사운드에 익숙한 젊은 세대라 해도 빠져들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대화 대중음악평론가는 “판에 박은 듯한 음악들에 대한 대중의 피로도가 임계점에 달한 시점에 비주류 음악계에서 새로운 스타가 탄생했다”며 “귀가 아닌 가슴을 잡아끄는 음악에 대한 대중의 갈구가 그만큼 컸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리더 최정훈이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보여준 아날로그적인 일상 또한 화제가 됐다. 2G 폴더폰을 사용하고, 70~80년대 가요를 듣고, 시집을 탐독하는 27살 청년의 모습은 이들의 음악과 실제 감성이 별개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 보였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는 “‘잔나비’가 우리 가요 고유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건, 멤버들 본연의 아날로그 감성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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