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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실조 아이 둔 과테말라 미혼모가 영양제 거부한 까닭

기자
조희경 사진 조희경
[더,오래] 조희경의 행복 더하기(5)
한국에서 과테말라 컴패션 어린이센터를 방문한 후원자가 이유식에 영양제를 섞어 후원 어린이에게 사랑을 담아 먹여주고 있다. 딸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엄마의 미소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사진 한국컴패션]

한국에서 과테말라 컴패션 어린이센터를 방문한 후원자가 이유식에 영양제를 섞어 후원 어린이에게 사랑을 담아 먹여주고 있다. 딸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엄마의 미소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사진 한국컴패션]

 
전 세계에서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사망한 어린이의 절반은 영양실조로 목숨을 잃는다. ‘영양실조’라는 의미는 누군가의 도움만 있었다면 생존할 수 있었던 생명이라는 안타까운 의미를 담고 있다.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어린이들에게 영양제를 직접 제공하자는 ‘(사)사랑의 본부’의 제안을 처음 들었을 때, 기쁨과 감사가 앞서 만세를 불렀다.
 
이 단체의 도움으로 지난해 연간 12억원을 영양실조 문제가 심각한 케냐와 에티오피아, 필리핀에 위치한 88개 컴패션 어린이센터에 등록된 임산부와 태아, 만 1세 이하의 영아를 후원했다. 더불어 품질이 인증된 영양제를 어린이들에게 직접 제공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를 추진하던 중 국제 컴패션으로부터 뜻밖의 요구를 받았다.
 
기부한다는데 왜 못 받는다는 거지?
국제 컴패션은 이미 검증된 영양제라도 일정 기간 시범 운영을 해보고 실제적인 효과가 검증되기 전에는 영양제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품질이 인증되었고 필요한 모든 비용을 준다는데 받지 않겠다니 이해가 안 됐다. 이후 시범 국가를 정하고 사업예산을 수립하는 과정을 함께했다. 
 
도우려는 사람의 마음은 이미 현지에 가 있는데, 현지는 준비하는 진행속도와 구체적인 성과가 부족한 것 같아 답답했다. 그런데도 준비과정에서 본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목표 수립과 탁월한 준비과정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게 됐다. 뜻을 모은 후원자들에게 우선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6개월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18년 9월부터 영양실조 문제로 도움이 시급한 과테말라에서 영양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사람을 믿지 못하는 가난
(사)사랑의 본부 후원으로 진행된 영양프로그램의 진행경과를 설명 중인 국제컴패션 릭의 모습(왼쪽)과 과테말라 컴패션의 영양프로그램 후원을 받는 어린이에게 제공되는 영양제 세트와 달력(오른쪽). 아이 엄마들은 아이가 먹은 영양제 봉투를 달력 왼쪽에 달린 흰색 봉투에 모은다. [사진 한국컴패션]

(사)사랑의 본부 후원으로 진행된 영양프로그램의 진행경과를 설명 중인 국제컴패션 릭의 모습(왼쪽)과 과테말라 컴패션의 영양프로그램 후원을 받는 어린이에게 제공되는 영양제 세트와 달력(오른쪽). 아이 엄마들은 아이가 먹은 영양제 봉투를 달력 왼쪽에 달린 흰색 봉투에 모은다. [사진 한국컴패션]

 
모니터링을 위해 찾아간 현지에서 우리는 새로운 사실을 접하게 됐다. ‘영양실조 개선’ 프로젝트의 운영매뉴얼과 결과 보고, 어린이의 건강상태를 측정하는 기기와 데이터가 적힌 파일들, 영양제 세트와 달력은 긴 준비 기간이 어떻게 결실을 가져오는지 보여줬다. 그런데 정작 도움을 받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시스템과 영양제의 탁월함이 아니었다.
 
어린이센터에서 자원봉사 중인 선생님은 “이곳에 사는 아이 엄마 중에는 강간이나 인신매매를 당해 아이를 낳은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낯선 누군가가 조건 없이 도와주겠다고 하면 성매매나 아이를 훔쳐가는 게 목적이라고 생각해서 경계하기 때문에 아이 엄마들을 설득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그동안의 과정을 설명했다.
 
“처지를 아는 직원과 선생님들이 10번이고 20번이고 찾아갔어요. 그들과 함께 울고 이야기하고 난 뒤에 센터에 등록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 믿는 것은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엄마들입니다.”
 
어린이센터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제야 무릎이 탁 쳐졌다.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일을 겪었기에 절실한 도움 앞에서도 선뜻 손을 잡지 못했을까. 사람을 믿지 못하고, 마음을 열지 못하는 것. ‘신뢰’라는 중요한 가치를 잃어버린 삶. 이 역시 가난이었다. ‘어떤 꿈도 믿음도 가질 수 없는 상태. 그것이 경제적인 가난보다 더 무서운 가난’이라는 서정인 한국컴패션 대표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린이센터에서 양육 받는 아기와 엄마의 모습. [사진 한국컴패션]

어린이센터에서 양육 받는 아기와 엄마의 모습. [사진 한국컴패션]

 
6개월 가까이 아기 엄마들을 설득하고 교육을 시켜 시작된 프로그램. 이제 아기 엄마들은 매일 유아식에 영양제를 섞여 먹이고 달력에 표시한 뒤 영양제 봉투 14개를 모아서 다시 2주 분량의 영양제와 이유식 재료를 받아 간다. 올해 18세인 한 엄마는 아기에게 유아식 먹이는 법을 몰라 힘들었는데 센터에 와서 양육하는 법을 배웠고, 영양제 덕분에 아기가 건강해져서 행복하다며 활짝 웃었다.
 
진정한 기적, 진짜 변화는 같은 마음 높이에서
진정한 기적은 잘 만들어진 시스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후원자들과 현지 직원과 선생님들, 수많은 자원봉사자가 이 엄마들과 어린 아기들을 겹겹이 싸고 지키고 보호하고 있었다. 바로 같은 마음 높이에서. 그것이 진짜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었다.
 
사회 곳곳의 뉴스에서 들리는 충격적인 사건들로 우리는 신뢰를 잃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는지 모른다. 서로서로 신뢰하지 못한다면, 우리 역시 가난한 건지 모른다. 진짜 가난이 우리 사회에 스며들지 않도록, 더욱 우리의 신뢰를 돈독하게 해주는 소식들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조희경 한국컴패션 후원개발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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