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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문화계 패밀리 비즈니스

이지영 문화팀 기자

이지영 문화팀 기자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매일 고민입니다. 어떻게 유지·운영할 것인지가 항상 숙제지요.” 산울림소극장 임수진 극장장은 연거푸  “숙제”란 말을 했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한국 초연 50주년 기념행사 취재차 만난 자리에서였다. “방대한 자료를 정리·관리하는 것도 개인에겐 벅찬 일”이라고 했다.
 
임 극장장은 한국 연극의 거목, 임영웅 연출가의 맏딸이다. 임 연출가는 1969년 ‘고도를 기다리며’ 초연 성공 이후 극단 산울림을 창단했고, 1985년 전용극장 격으로 서울 서교동에 산울림소극장을 마련했다. 공연 때마다 대관 장소를 찾아 떠도는 데 지쳐 살던 집을 팔아 지은 극장이었다. 부인인 번역가 오증자 전 서울여대 교수의 인세 수입까지 모조리 쏟아부었다.
 
노트북을 열며 5/1

노트북을 열며 5/1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연극과 상관없이 살았던 임 극장장이 2012년 극장 운영을 맡게 된 것은 “이러다 극장 문 닫겠다” 싶은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100석이 채 안 되는 소극장은 객석이 꽉 차도 수익이 날 수 없는 구조였다. 인건비 부담 없이 일할 사람이 필요했다. 연로한 부모를 대신해 극장 살림을 떠맡을 사람은 자식밖에 없었다. 동생인 임수현 서울여대 불문과 교수 역시 2012년부터 극단 산울림의 예술감독을 맡아 “부모님 돕기”에 나섰다. 온 가족이 매달린 ‘패밀리 비즈니스’가 된 것이다. 임 극장장은 극단 연수단원 수준의 월급을 받고, 임 예술감독은 무보수로 일한다.
 
이렇게 문화계의 가족 경영은 존속을 위한 최후 수단인 경우가 많다. 1976년 창간된 무용 평론 월간지 ‘춤’ 역시 산울림소극장과 꼭 닮은꼴로 운영되고 있다. 창업자 조동화 선생이 2014년 작고한 이후 ‘춤’의 발행인과 주간을 아들 조유현 늘봄 출판사 대표 부부가 맡고 있다.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인 며느리 조은경 주간은 최저 임금 수준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으며 잡지를 만든다. 아들 조 발행인은 아예 월급이 없다.
 
산울림소극장과 ‘춤’ 모두 우리나라 연극사·무용사에 한 획을 그은 존재지만, 이들의 지속 가능성은 불투명한 상태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설립자의 능력 있고 효성 깊은 자식들의 사명감에 기대 이어져 왔지만, 이후의 존폐 여부는 누구도 장담 못 한다.
 
산울림소극장을 두고 유민영 서울예대 석좌교수는 “현대문화재로 지정해 국가 차원에서 보존·관리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우리 사회 공공재인 문화 자산의 운명을 어느 개인의 자식 농사 성공 여부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는 말이다. ‘생존형 패밀리 비즈니스’ 차원을 뛰어넘는 대안은 없을까. 문화계와 정부·지자체·기업 등이 함께 머리를 맞대 고민해볼 일이다.
 
이지영 문화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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