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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뿐인 김영란법 5만원 룰, 여러 사람 명의 ‘쪼개기 부조’

[이슈분석] 달라지는 경조사비 
김영란법 규정 표

김영란법 규정 표

“다른 곳에 다녀왔다고 기록을 남기고 10만원, 20만원, 30만원을 부의함에 넣는 거죠. 우리 기관장과 가까운 사이라면 더 신경씁니다. 그동안 현장에서 적발된 사례가 없지 않나요.”
 
한 경제단체 간부의 고백이다. 중앙일보가 익명을 전제로 10개 주요 기관·협회에 “정부부처에 부조금을 얼마 하느냐”고 물었더니 “엄격하게 ‘경조사비 5만원’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답한 데는 7곳이었다. 나머지 3곳에선 “부분적으로 변통하고 있다” “상황을 봐가면서 요령껏 조치한다”고 대답했다.
 
지난해 1월부터 공직자 등이 받는 경조사비 상한선이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줄었다. 화환·조화를 포함하면 10만원이다. 업무 관련성이 없는 지인이나 친척 등에겐 1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공직사회 경조사 문화가 달라졌을까.
 
◆공직자들 부의금을 ‘상속’으로 신고=주요 경제단체 간부, 민간 기업 임원들은 “공직사회 분위기가 달라진 건 맞지만 절반만 맞는 얘기”라며 “소위 ‘을’인데 어떻게 5만원 기준을 지킬 수 있느냐”고 항변했다.
 
특히 기업은 거의 지키지 않는다. 대기업에서 정부부처를 담당하는 김모 상무는 “1년에 대여섯 차례 공무원 상가나 자녀 결혼식에 간다. 그때마다 10만원, 20만원을 냈지만 한 번도 돌려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공기업의 정모 부장은 “5만원씩 여러 사람 이름으로 내는 ‘봉투 쪼개기 수법’을 쓴다”며 “받은 사람은 알고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대표는 “중앙부처 공무원 경조사는 30만원을 낸다. 잘 알거나 업무와 관련이 있는 데는 그 이상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번 딱 한 번 돌려받은 적이 있는데, 나머지는 잊고 산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다른 대표자는 “대개 10만원 하지만 친분이 있는 공무원한테는 식장에서 주지 않고 따로 만나 20만원, 30만원을 건넨다”고 말했다.
 
일부 공무원 사이에서도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정책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지방 세무서에 근무하는 최모(50) 주무관은 “중간간부 이상이나 승진을 앞둔 직원이 세무서장의 애경사에 5만원만 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김영란법은 실효성이 떨어지는 법 조항”이라고 말했다. 공무원끼리도 안 지킨다. 정부부처 정모(53)국장은 “최근 상을 치른 뒤 10만원, 20만원짜리 봉투가 있었는데, 현직 공무원이어서 놀랐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김영란법, 현실 고려해 보완해야”=국민권익위원회는 경조사비 위반을 아예 집계조차 하지 않는다. 김영란법의 핵심 조항인데도 불구하고 ‘금품수수’ 항목에 버무려놓았다. 국민권익위 최길호 주무관은 “애초에 공직자 등은 금품 수수가 금지돼 있는데 경조사비는 예외적인 경우다. 경조사비와 관련한 사고 접수나 징계 현황 통계는 따로 없다”고 말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앙부처 공직자 재산 증가 상위 10명, 지자체 상위 10명, 공공기관·공기업 상위 10명 중 ‘상속’이 주요한 이유인 경우는 5명이다. 이들은 부모상이나 배우자 부모상을 치렀다. 부모 장례를 치르고 부의금이 증가하면 ‘상속’ 항목으로 표기한다. 5명 중 ‘부의금 수입’을 신고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임병근 인사혁신처 재산심사과장은 “부조금 액수가 많을 경우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지만 당사자에게 별도의 소명서를 제출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명서를 공개하지는 않는다.
 
일부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지난해 말 중앙부처의 김모(46) 사무관은 부친상을 당했다. 부의함을 열었더니 산하기관과 단체 등의 봉투가 10만원 넘는 게 대여섯 개에 달했다. 30만원, 50만원도 있었다. 그는 상을 치른 뒤 직접 만나 부조금을 돌려주고 양해를 구했다. 만나지 못한 사람은 ‘법이 바뀌어서 정중히 되돌려 드린다’는 편지를 써서 보내고 송금했다. 김 사무관은 “예전에는 수십만원씩 부조금을 받아도 그러려니 했는데, 요즘은 달라졌다. 나처럼 돌려주는 경우를 주변에서 가끔 본다”고 전했다.
 
또 다른 중앙부처에 근무하는 이모(48) 서기관도 “김영란법 덕분에 경조사 봉투에 얼마를 넣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됐다. 경조사에 다니기가 편하다”고 했다. 이 서기관은 “청와대와 총리실, 감사원 등에서 언제 암행 감사를 나올지 몰라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제부처의 한 국장은 “얼마 전 자녀를 결혼시킨 모 국장도 청첩장을 50장 정도만 돌렸다더라”고 말했다.
 
경조사비 범위를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순은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법은 큰 틀에서 존중하고 지키는 게 맞다”며 “다만 경조사비와 관련한 김영란법 조항은 기본 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현실을 고려해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장급 공무원도 “김영란법의 취지가 경조사비 몇만원 더 냈다고 과태료를 물리려는 게 아니고 부정부패를 척결하자는 것”이라며 “경조사비까지 일일이 단속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상재·박형수·김태호 기자 lee.sangjai@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https://news.joins.com/Digitalspecial/356)에 접속하면 본인의 경조사비를 타인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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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