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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지 석탑, 20년 보수공사 마침표 찍었다

30일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 준공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탑을 둘러보고 있다. 미륵사지석탑은 1999년 보수를 시작해 준공식을 하기까지 20년이 걸렸다. [사진 뉴스1]

30일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 준공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탑을 둘러보고 있다. 미륵사지석탑은 1999년 보수를 시작해 준공식을 하기까지 20년이 걸렸다. [사진 뉴스1]

20년에 걸친 보수를 마치고 2019년 위용을 드러낸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 [사진 문화재청]

20년에 걸친 보수를 마치고 2019년 위용을 드러낸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 [사진 문화재청]

보수 작업이 진행되기 전의 익산 미륵사지 석탑. [사진 문화재청]

보수 작업이 진행되기 전의 익산 미륵사지 석탑. [사진 문화재청]

높이 14.5m, 너비 12m. 사용된 부재는 1627개, 무게는 1830톤. 
국내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석탑인 전북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이 다시 그 위용을 드러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익산 미륵사지에서 전라북도와 익산시와 공동으로 30일 준공식을 열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조선총독부가 입힌 콘크리트 땜질을 벗어내고 다시 제 모습을 찾은 것은 석탑 해체보수가 결정된 지 만 20년 만이다. 국내에서 단일 문화재로는 가장 오랜 시간에 걸쳐 체계적인 수리를 진행한 사례로 꼽힌다. 
 
미륵사, 639년 백제 무왕 때 건립  
1910년 익산 미륵사지 석탑 모습. [사진 문화재청]

1910년 익산 미륵사지 석탑 모습. [사진 문화재청]

익산 미륵사는 7세기 백제 무왕 시대(639년)에 창건돼 조선시대까지 유지된 사찰이다. 올해는 석탑이 건립된지 1380주년이 되는 해다. 미륵사지 석탑은 원래 미륵사에 있었던 3개의 탑 중 서쪽 영역에 자리하고 있으며, 석재 2800여 개를 목탑처럼 짜 맞춘 형태로. 백제 목조건축의 기법이 반영된 독특한 양식이다.  
 
20년에 걸친 체계적 보수 
1980년 발굴조사 당시 모습.[사진 문화재청]

1980년 발굴조사 당시 모습.[사진 문화재청]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국제 기준에 따라 학술조사와 해체·수리 과정을 충실히 이행한 사례로 주목할 만하다. 1998년 구조 안전진단을 한 결과 콘크리트가 노후화되고, 구조가 불안정하다는 판단에 따라 1999년 문화재위원회에서 해체·수리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2001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석탑의 본격적인 해체조사와 함께 학술·기술 조사연구, 구조보강 등을 해왔다. 석탑 보수·정비에는 총 230억원(국비 161억원, 지방비 69억원)이 투입됐다.  
 
"참고자료 거의 없어" 오래 걸렸다 
 
 2017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김현용(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현장팀장은 “참고자료가 거의 없다. 무(無)에서 시작한 것과 같다. 발굴→해체→조립 모든 과정이 도전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해체에만 10년, 조립에만 4
년이 걸렸다는 설명이다. 
 
"잡석을 포함하면 돌은 3000 조각이었고, 이것들은 길이·두께·모양이 모두 다르고 같은 게 하나도 없었다"면서 "그것을 일일이 측량하고, 3D 스캐닝을 했다. 해체된 돌을 토대로 조립 설계를 했다"고 말했다. 
 
왜 6층까지만 부분 복원했나  
수리를 마친 미륵사지 석탑 동북측 모습. [사진 문화재청]

수리를 마친 미륵사지 석탑 동북측 모습. [사진 문화재청]

미륵사지에서 바라본 전경. [사진 문화재청]

미륵사지에서 바라본 전경. [사진 문화재청]

미륵사지 석탑은 애초 9층(높이 25m)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추정에 의한 무리한 복원을 지양하고 원래 남아 있었던 6층(14.5m)까지만 수리했다. 탑을 어떤 상태로 보수 복원할 것인가를 두고 학계에서는 논란이 일었지만, 결국 '추정에 의한 복원' 대신에 '부분 복원'으로 방향을 결정했다. 
 
조선 시대 이후 석탑은 반파된 상태로 6층 일부까지만 남아있었는데 1915년 일본인들이 붕괴한 부분에 콘크리트를 덧씌워 보강해 놓은 상태였다. 해체 당시 나온 콘크리트만 185t에 달했다. 석탑의 원래 부재는 81%까지 복원에 사용됐다.
 
김현용 현장팀장은 2017년 현장에서 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문화재 수리의 대원칙은 원형 보존"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재료는 최대한 옛 부재(部材)를 살려 썼다"며 "옛 돌의 손상된 부분과 새 재료를 티타늄 봉으로 접합했다. 돌과 돌 사이 빈틈을 메우는 무기질 재도 개발했다”고 덧붙였다. 
 
2009년 석탑 해체 과정에서 발견된 사리 장엄구 모습. [사진 문화재청]

2009년 석탑 해체 과정에서 발견된 사리 장엄구 모습. [사진 문화재청]

2009년 1월 석탑 해체조사 과정 중 1층 내부의 첫 번째 심주석에서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가 발견돼 미륵사 건립 시기(639년) 등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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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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