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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5만원 룰 비웃다···상가집의 '쪼개기 봉투'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1월부터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령을 개정해 경조사비 상한액을 5만원(조화 포함 10만원)으로 조정했다. 사진은 2017년 12월 11일 열린 국민권익위원회 전원위원회 모습. 김성태 기자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1월부터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령을 개정해 경조사비 상한액을 5만원(조화 포함 10만원)으로 조정했다. 사진은 2017년 12월 11일 열린 국민권익위원회 전원위원회 모습. 김성태 기자

지난해 말 중앙부처의 김모(46) 사무관은 부친상을 당했다. 부의함을 열고 나서 그는 이내 이마를 찌푸렸다. 산하기관과 단체 등의 부의금이 10만원 넘는 게 대여섯 개에 달했다. 30만원, 50만원도 있었다. 
 
김 사무관은 “지난해 초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령이 개정돼 경조사비 한도가 5만원으로 바뀌었다는 걸 산하 공기업이나 단체, 민원인 등이 대부분 알고 있을 텐데, (한도 초과 봉투를 받고) 솔직히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상을 치른 뒤 직접 만나 부조금을 돌려주고 양해를 구했다. 만나지 못한 사람은 ‘법이 바뀌어서 정중히 되돌려 드린다’는 편지를 써서 보내고 송금했다. 김 사무관은 “예전에는 수십만원씩 부조금을 받아도 그러려니 했는데, 요즘은 달라졌다. 나처럼 돌려주는 경우를 주변에서 가끔 본다”고 전했다.
 
또 다른 중앙부처에 근무하는 이모(48) 서기관도 “김영란법 덕분에 경조사 봉투에 얼마 넣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됐다. 경조사에 다니기가 편하다”고 했다. 이 서기관은 5년 전 부친상을 치렀다. 당시 적잖은 부조금을 받았다. 그 돈으로 일부 빚을 갚았다. 그는 부조금 명단과 금액을 지금도 갖고 있다. 이 서기관은 “공무원 신분이라 받은 액수대로 돌려줄 수 없다. (상대방이) 이해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청와대와 총리실, 감사원 등에서 언제 암행 감사 나올지 몰라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월부터 공직자 등이 받는 경조사비 상한선이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줄었다. 화환·조화를 포함하면 10만원이다. 업무 관련성이 없는 지인이나 친척 등에겐 1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서울 시내 한 장례식장에 조화가 줄지어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중앙포토]

서울 시내 한 장례식장에 조화가 줄지어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중앙포토]

김영란법 시행 이후 변화 조짐이 있다. 중앙부처의 한 국장급 인사는 “요즘 차관급 이상 고위직 상가엔 ‘조화나 부의금을 정중히 사절한다’는 전자 게시가 뜨는 사례가 적지 않다. 괜한 구설에 오르고 싶지 않다는 뜻 아니겠냐”고 풀이했다.
 
경제부처의 한 국장은 “얼마 전 자녀를 결혼시킨 모 국장도 청첩장을 50장 정도만 돌렸다더라”며 “경조사비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모든 공직사회에서 나타나는 게 아니다. 소위 '을'의 입장에 있는 민간단체 얘기는 다르다. 주요 경제단체 간부, 대기업 임원들은 “공직사회 분위기가 달라졌다고들 하지만 절반만 맞는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한 경제단체 간부는 이렇게 말한다. 
 
“처음엔 봉투에 5만원만 넣었습니다. 부조금 없이 조화나 화환만 보내기도 했고요. 법을 지키는 게 상대에 대한 도리라고 여겼지요. 혹시라도 ‘김영란법 위반 1호’라는 오명을 쓸 수 있어서지요. 요즘엔 달라졌습니다. 다른 곳에 다녀왔다고 기록을 남기고, 10만원, 20만원,30만원을 넣는 거죠. 우리 기관장과 가까운 사이라면 더 신경 씁니다. 그동안 현장에서 적발된 사례가 없지 않나요.”

 
중앙일보가 익명을 전제로 10개 주요 기관·협회에 물어봤더니 “엄격하게 ‘경조사비 5만원’ 원칙을 지키고 있다. 화환·조화만 보낸다”고 답한 데는 7곳이었다. 나머지 3곳에선 “부분적으로 변통하고 있다” “상황을 봐가면서 요령껏 조치한다”고 대답했다. 
 
기업은 거의 지키지 않는다. 대기업에서 정부부처를 담당하는 김모 상무는 “1년에 대여섯 차례 공무원 상가나 자녀 결혼식에 간다. 그때마다 10만원, 20만원을 냈지만 한 번도 돌려받은 적이 없고,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없다”고 했다. 공기업의 정모 부장은 “5만원씩 여러 사람 이름으로 내는 '봉투 쪼개기 수법'을 쓴다”며 “받은 사람은 알고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일부 공무원 사이에서도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정책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지방 세무서에 근무하는 최모(50) 주무관은 “중간 간부 이상이나 승진을 앞둔 직원이 세무서장의 애경사에 5만원만 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김영란법은 실효성이 떨어지는 법 조항”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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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권익위원회는 경조사비 위반을 아예 집계조차 하지 않는다. 김영란법의 핵심 조항인데도 불구하고 '금품수수' 항목에 버무려놓았다. 국민권익위 최길호 주무관은 “애초에 공직자 등은 금품 수수가 금지돼 있는데 경조사비는 예외적인 경우다. 경조사비와 관련한 사고 접수나 징계 현황 통계는 따로 없다”고 말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앙부처 공직자 재산 증가 상위 10명, 지자체 상위 10명, 공공기관·공기업 상위 10명 중 '상속'이 주요한 이유인 경우는 5명이다. 이들은 부모상이나 배우자 부모상을 치렀다. 부모 장례를 치르고 부의금이 증가하면 '상속' 항목으로 표기한다. 5명 중 ‘부의금 수입’을 신고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임병근 인사혁신처 재산심사과장은 “부조금 액수가 많을 경우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지만, 당사자에게 별도의 소명서를 제출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명서를 공개하지는 않는다. 
 
경조사비 범위를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순은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법은 큰 틀에서 존중하고 지키는 게 맞다”며 “다만 경조사비와 관련한 김영란법 조항은 기본 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현실을 고려해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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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재·김태호 기자 lee.sangja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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