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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기관장 커피숍 불러 "사표 내라는게 장관님 뜻"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문건' 관련 네번째 조사를 받기 위해 지난 12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검에 출석하며 조사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문건' 관련 네번째 조사를 받기 위해 지난 12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검에 출석하며 조사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12월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의 한 커피숍. 환경부에서 인사 업무를 담당하는 신임 운영과장 A씨는 산하 공공기관장을 이곳으로 불러냈다. 이 자리에서 A씨는 기관장에게 “사표를 내달라는 것이 장관님 뜻입니다”라는 취지로 말을 건넸다. 기관장은 부임한 지 10개월, 임기는 2년 2개월 남아 있는 상태였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한 검찰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의 지시로 환경부 공무원들이 이같이 산하기관장 사표를 종용한 사실을 공소장에 기록했다. 29일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이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 주진우)로부터 제출받은 공소장에 따르면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은 환경부 고위 공무원들과 공모해 6개 산하기관에서 기관장과 임원 13명을 교체하려고 시도했다. 동부지검은 지난 25일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 등 2명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강요,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2017년 연말에 당초 계획과 달리 전 정부에서 임명됐던 공공기관 임원들이 사직서 징구(徵求‧돈이나 곡식 등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일)가 부진하자 2018년 1월 2일에 열린 환경부 시무식 신년사를 활용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은 신년사에서 “아직 시작 못한 소속기관, 산하기관의 인사도 1~2월 중에는 마쳐 모두가 최대한 과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언했다. 
 
환경부 운영지원과장은 김 전 장관이 신년사로 사표 제출 기한을 못 박은 것으로 생각해 부담을 느껴 즉시 인사팀장과 사무관을 불러 사직서 징구를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은 공소장을 통해 “이들은 청와대 송모 행정관 등과 공모해 공공기관 임원들을 사퇴시킨 후 그 자리에 청와대 또는 환경부 장관이 추천하는 사람으로 후임자를 임명하기 위해 권한을 남용했다”고 밝혔다.  
 
김 전 장관 등은 자신들이 추천한 인사들을 기관장이나 임원으로 임명시키기 위해 공모 절차를 무력화시키는 작업도 했다. 검찰은 이 작업에 ‘형해화(形骸化‧앙상한 모습처럼 부실하게 만드는 일)’라는 이름을 붙였다.  
 
공소장에 따르면 김 전 장관 등은 환경부 실‧국장을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 심사 과정에 참여시켜 자신들이 추천하는 후보자를 무조건 통과시키도록 지시했다. 실‧국장은 심사 결과와 상관 없이 청와대 추천 후보자에게 높은 점수를 줬고, 다른 임추위 위원들을 설득하는 작업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2017년 8월에는 한 공공기관 이사장을 뽑는 자리에 황당한 자기소개서를 쓴 후보가 추천되는 사태도 벌어졌다. 해당 후보자는 자기소개서에 ‘백두대간을 종주하였다’ ‘이와 관련해 시를 쓰는 등 백두대간의 중요성을 사회 전반에 인식시켰다’고 썼고, 직무수행계획서에는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모든 역량과 경험을 토대로 이바지하겠다’는 내용 뿐이었다.  
 
보다 못한 환경부 운영지원과장은 서류 통과가 어렵다고 보고를 올렸지만 “다시 한 번 검토해 봐라”라며 “필요한 지원을 다해서 최종 후보자가 될 수 있게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해당 기관 인재개발부장도 나서서 ‘산악 관련 잡지사 편집 이사로 약 5년 간 근무했다’는 내용의 경력 증명서를 서류에 넣도록 도움을 줬다.  

 
환경부 자원보전국장은 지원자 16명 중 합격자 5명에 해당 후보자를 합격시키기 위해 해당 기관 임추위 위원으로 참여했다. 자원보전국장은 다른 위원들이 단점을 지적할 경우 이를 반박해 통과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또 해당 후보에게 100점 만점에 96점을 부여했다. 결국 후보는 서류 심사를 평균 80.57점으로 2등으로 통과했다. 이런 분위기는 면접 심사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지난해 여성 비서관들과 함께한 문재인 대통령. 왼쪽이 신미숙 균형인사비서관. [중앙포토]

지난해 여성 비서관들과 함께한 문재인 대통령. 왼쪽이 신미숙 균형인사비서관. [중앙포토]

 
지난해 6월에는 다른 공공기관에서 이같이 추천한 후보가 서류심사에 통과하지 못하자 다른 통과자 7명 전원을 ‘적격자 없음’으로 탈락시키는 일까지 나왔다. 김은경 전 장관은 2018년 7월 싱가포르 출장 중 해당 사안에 대해 보고를 받고 “차관과 상의해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지시했다. 안병옥 당시 환경부 차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와대를 찾아갔으나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은 “환경부는 왜 이렇게 문제가 많냐”며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하길래 청와대 추천 인사가 서류심사도 합격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왔냐”고 질책했다.  
 
검찰은 “2017년 8월부터 2018년 11월까지 청와대와 환경부 공무원들이 공모해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6개에서 17명이 이와 같이 임추위에서 추천되도록 했다”며 “공정하게 후보를 추천해야 할 다른 임추위 위원들의 업무를 방해했다”고 밝혔다.  
 
김은경 전 장관 측 "정당한 감찰권 행사"
그러나 김 전 장관 측은 이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김 전 장관 변호인은 지난달 25일 영장실질심사에서 전(前) 정부에서 임명된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에게 사표를 받고 감찰을 진행한 것에 대해 “장관의 정당한 인사권과 감찰권 행사였다”고 항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청와대가 추천한 인사를 산하기관에 임명하는 과정에서 환경부와 산하기관 관계자들이 특혜를 제공한 의혹에 대해서도 “청와대의 추천은 단순 추천이라고만 생각했을 뿐 특혜가 제공된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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