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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13층 기어올라간 러시아 北노동자, 생명줄은 안전모 뿐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 한 건설 현장에서 28일(현지시간) 북한 노동자가 합판을 옮기는 작업 중이다. 안전모 1개가 유일한 안전 장치였다. 이 노동자가 서있는 곳은 건물 11층 높이다. 블라디보스토크=전수진 기자

블라디보스토크 한 건설 현장에서 28일(현지시간) 북한 노동자가 합판을 옮기는 작업 중이다. 안전모 1개가 유일한 안전 장치였다. 이 노동자가 서있는 곳은 건물 11층 높이다. 블라디보스토크=전수진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4~26일(현지시간) 머물렀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루스키섬. 이 섬 초입에 있는 고급 맨션 건설 현장을 27일 오전 찾았다.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공사 현장이라고 현지 소식통이 귀띔했던 장소다. 앞서 25일에도 이곳을 찾았지만 공사는 멈춘 상태였다. 자신의 이름을 '드미트리'라고 밝힌 현지인 소식통은 “보스(김정은 위원장)가 왔으니 공사를 멈춘 것 같다”며 “평소엔 이곳에서 십여 명이 아침 일찍부터 해질녘까지 공사를 계속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전용 열차로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난 하루 뒤인 27일 오전, 이곳은 공사가 재개된 상태였다. 감독 격으로 보이는 중년 러시아인 남성이 현장을 쓱 둘러본 뒤 북한 노동자 중 현장 지휘 역할로 보이는 이에게 지시를 내리고 떠나는 모습도 목격됐다. 
 
 
드미트리의 안내에 따라 현장이 잘 보이는 고지대로 갔더니 북한 노동자들의 모습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왔다. 2인 1조로 안전모를 착용한 채 분주한 모습이었다. 구석에 철근 뭉치가 놓인 가운데 그 위에 걸터앉아 서류 작업을 하는 이, 용접 작업을 하는 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이들이 보였다. 13층까지 올라가 있는 이 건물은 드미트리에 따르면 30층 이상의 고층 고급 맨션으로 분양될 예정이다. 드미트리는 “블라디보스토크의 야경 명물인 금각교 등이 보이는 입지라 비싸게 분양될 것”이라고 말했다. 극동연방대 출신인 안철환 현지 변호사도 “꽤 고급 맨션이 될 것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28일(현지시간) 블라디보스토크의 공사 현장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전수진 기자

28일(현지시간) 블라디보스토크의 공사 현장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전수진 기자

건물 안에서 작업하는 북한 노동자들에겐 안전모 하나가 안전장치의 전부였다. 이들은 합판을 짊어지고 13층 높이를 맨손으로 올라가거나, 철근을 기계를 이용해 올리는 작업을 했다. 드미트리는 “이런 작업은 우리 러시아인들은 더 이상 안 하려고 한다”며 “위험하면서도 임금이 낮기 때문이다. 북한 사람들은 더 낮은 비용으로 더 길게 기꺼이 일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작업장에선 노랫소리도 간간이 들려왔는데, 노래 없는 반주 음악이었지만 곡조가 북한 곡으로 추정됐다. 이들은 자신들끼리 집단 생활을 하는데, 움막 등 안에서 간이 침대를 놓고 자는 등 주거 현실이 열악하다고 한다. 실제로 이 현장 근처에도 슬레이트 지붕 등으로 엮은 움막 같은 곳이 눈에 띄었다.  
 
블라디보스토크 북한 노동자 현장에서 28일 노동자들이 고층에서 작업 중이다. 별다른 안전장치는 없었다. 블라디보스토크=전수진 기자

블라디보스토크 북한 노동자 현장에서 28일 노동자들이 고층에서 작업 중이다. 별다른 안전장치는 없었다. 블라디보스토크=전수진 기자

북한 노동자들은 북한 입장에선 소중한 외화벌이 일꾼들이다. 반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게 있어선 북한의 핵ㆍ미사일 개발의 자금을 대는 위험한 존재들이다. 이들의 생활 환경은 열악하다. 미 국무부는 지난해 이들이 “노예와 같은 노동을 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유엔 안보리는 2017년 북한의 핵ㆍ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결의 2397호를 내 유엔 회원국들이 북한 노동자를 신규로 받지 못하도록 했으며 현재 파견 중인 노동자들의 비자 연장도 못 하게 했다. 러시아도 안보리 상임이사국(P5)으로서 여기에 합의했으나 CNN은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가 “마지못해(grudgingly) 합의했다”고 전했다. 2017년 12월 현재 약 9만3000명의 북한 노동자가 해외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 중 절반이 넘는 5만명이 러시아, 그중에서도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것으로 국제사회는 보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북한 노동자 현장. 외부인의 출입은 철저히 통제돼있다.  블라디보스토크=전수진 기자

블라디보스토크 북한 노동자 현장. 외부인의 출입은 철저히 통제돼있다. 블라디보스토크=전수진 기자

이번 북ㆍ러 정상회담에서도 이들의 비자 연장 및 체류 기간 연장은 주요 의제였다. 푸틴 대통령은 25일 김정은 위원장과의 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대북 제재에 저촉될 수 있는 이 의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들은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이라며 “차분하고 대결적이지 않은 해결책이 있다”라고만 답했다.  

 
 북한 노동자들의 현실은 고달프다. 김 위원장의 방러 직전인 4월 중순엔 블라디보스토크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북한 노동자 1명이 투신자살했다. 처음이 아니었다. 2016년에도 비슷한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올해) 투신자살한 남성은 30대 후반으로 (북한) 노동당 39호실과 연관이 있다”며 “북한 당국의 상납금 요구가 점점 거세지자 압박을 못 견딘 것”이라고 보도했다. 39호실은 김정은 위원장의 통치자금을 관리하는 곳으로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북한 노동자 현장의 모습. 현지인 전언으로는 고급 맨션으로 분양될 것이라 한다.  블라디보스토크=전수진 기자

블라디보스토크 북한 노동자 현장의 모습. 현지인 전언으로는 고급 맨션으로 분양될 것이라 한다. 블라디보스토크=전수진 기자

상납금 압박은 대북 제재 여파 속에서 더 거세졌다고 한다. 현지 한국인 소식통은 익명을 전제로 “얼굴이 조금 익숙해진 북한 노동자분들 중 고참 격인 이들이 한국인 커뮤니티에 ‘혹시 일거리가 없느냐’고 물어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상납금 압박이 강해지고 있다는 반증이라는 게 현지 한국인 커뮤니티의 해석이다.  

 
글ㆍ사진 블라디보스토크=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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