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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의 심스틸러]절대선은 없다…선악 공존하는 남궁민

‘닥터 프리즈너’에서 나이제 역할을 맡은 남궁민. 의사 가운을 입고 있는 시간보다 수트 차림으로 병원과 교도소 밖을 돌아다니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 [사진 KBS]

‘닥터 프리즈너’에서 나이제 역할을 맡은 남궁민. 의사 가운을 입고 있는 시간보다 수트 차림으로 병원과 교도소 밖을 돌아다니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 [사진 KBS]

메디컬 드라마가 교도소를 만났을 때 얼마나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 지난달 시작해 줄곧 수목극 1위를 달리고 있는 KBS2 ‘닥터 프리즈너’의 기획의도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의학 드라마라면 ‘종합병원’(1994) 이후 지난 25년간 숱하게 봐 온 장르요, 병원 내 권력 다툼을 그린 ‘하얀 거탑’(2007)부터 의사답지 않은 의사가 이끄는 ‘낭만닥터 김사부’(2016)까지 이미 다양한 변주를 봐온 터였다. 한데 ‘닥터 프리즈너’는 의사라는 직업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생명까지 쥐락펴락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으로 설정하면서 이전과는 전혀 결이 다른 서사를 펼쳐 나간다.
 
극 중 나이제 역할을 맡은 배우 남궁민(41)은 통상 우리가 알고 있는 의사의 정형성을 모두 깨트린다. 돈도 없고 빽도 없는 개천 출신으로 태강병원 응급의학센터의 에이스로 자리 잡고, 그 돈과 빽이 없어 의사면허까지 정지당하고 전과자로 전락한다. 그렇다면 우연한 기회에 어디선가 실력을 발휘하고 병원으로 돌아와 복수해야 정상이거늘 서서울교도소 의료과장이 되어 교도소는 물론 검찰과 기업을 오가며 장외전을 벌인다. 그가 겨누고 있는 칼끝이 자신의 행복을 망가뜨린 사람이 아닌 정당한 법이 있음에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에 있기 때문이다.  
억울하게 교도소에 수감된 나이제는 3년간 거대한 규모의 복수를 기획한다. [사진 KBS]

억울하게 교도소에 수감된 나이제는 3년간 거대한 규모의 복수를 기획한다. [사진 KBS]

하여 그는 한때 적으로 대립했던 사람들과도 거리낌 없이 손을 잡는다. 자신을 의료법 위반으로 허위 신고한 태강그룹 차남 이재환(박은석)은 물론 자신을 여러 차례 위험한 상황에 몰아넣었던 선민식(김병철) 전임 서서울교도소 의료과장 등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지금 눈앞에 놓인 적을 상대할 최적의 방법을 고민할 뿐이다. 그것이 법에 저촉되거나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해도 개의치 않는다. 없는 병은 만들고, 없는 것은 훔쳐서라도 목표 달성에 한 발 더 다가서면 그만이다. 방법론으로만 놓고 보면 확실히 선인보다는 악인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럼에도 남궁민은 나이제라는 인물에게 설득력을 불어넣는다. 바둑으로 치면 한 수 앞이 아닌, 두세 수 앞을 바라보고 말을 놓으며, 비록 그가 지금 행하는 행위가 악할지언정 궁극적으로는 정의를 향한 것임을 믿게 하는 것이다. 이는 극 중나이제가 주변 인물의 마음을 사서 자기편으로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태강그룹 후계자 싸움을 놓고 이재준(최원영)과 대립하는 모이라(진희경) 이사장과 이재인(이다인) 모녀도, 형 집행정지 수사에 난항을 겪던 정의식(장현성) 검사도 모두 처음엔 그를 의심했지만, 이제 그의 다음 수를 기다린다. 그가 원하는 것을 쥐여줌으로써 자신들도 원하는 것을 손에 넣게 되리라는 믿음이 생겨난 셈이다.
 
‘김과장’에서 코믹 연기를 선보인 남궁민. 사이다 대사와 연기로 화제를 모았다. [사진 KBS]

‘김과장’에서 코믹 연기를 선보인 남궁민. 사이다 대사와 연기로 화제를 모았다. [사진 KBS]

무엇이 이 어려운 일을 가능하게 했을까. 그것은 전적으로 그간 남궁민이 쌓아온 필모그래피 덕분이다. 2001년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로 데뷔 이후 오랫동안 그는 주목받는 연기자는 아니었다. 초반 필모를 보면 ‘드라마시티’나 ‘베스트 극장’ 같은 단막극이 더 많을 정도다. 하지만 그는 본인이 갖지 못한 것을 보완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를테면 ‘내 마음이 들리니’(2011)로 호평받으면서 이후 비슷한 역할 제안이 쏟아질 때 그는 달리기보다는 쉬어가기를 택했다. 서브 남자주인공 역할에 안주하고 싶지 않아서다.
 
덕분에 2년의 공백이 생겼지만, 그는 보다 다양한 얼굴을 갖게 됐다. ‘구암 허준’(2013) 같은 사극에서도 튀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갔고, ‘냄새를 보는 소녀’(2015)의 권재희나 ‘리멤버’(2015)의 남규만처럼 악역도 가능한 배우로 거듭났다. 누가 연쇄살인마나분노조절 장애를 연기하는 남궁민을 상상했겠는가. 하지만 그는 선한 미소 뒤에 숨겨진 악함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스펙트럼을 확장해 나갔다. “이들을 거치고 착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과 거치지 않는 것에는 차이가 있었을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선과 악이 공존하는 얼굴을 갖게 된 것이다. 더이상 마냥 착하거나 이유 없이 악한 캐릭터로는 공감을 얻을 수 없는 시대에 엄청난 무기를 얻게 된 셈이다.
 
‘리멤버’에서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재벌 3세 남규만 연기로 호평 받았다. [사진 SBS]

‘리멤버’에서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재벌 3세 남규만 연기로 호평 받았다. [사진 SBS]

2017년 ‘김과장’과 ‘조작’ 이후 사람들이 그에게 거는 기대는 더 커졌다. 비단 두 방송사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을 휩쓸어서가 아니라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대신 싸워줄 것만 같은 기대감이 생겨난 탓이다. 아마도 거기에 갇히고 싶지 않아 ‘훈남정음’(2018)을 택했겠지만, 평범한 로맨스물로 그 기대감을 충족시키기는 힘들었다. 이 시대가 원하는 소시민 영웅을 대표하게 된 이의 숙명이라고나 할까. 이제 ‘닥터 프리즈너’의 이야기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간의 전개를 보면 앞으로도 몇 번의 반전은 더 남아있을 터. 선악의 이분법을 넘어 새로운 정의를 구현하게 될 그가 다음에는 어떤 수를 놓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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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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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