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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걸 다 줄여 말하는 한국…'대한외국인'은 혀 내둘렀다

MBC에브리원의 퀴즈대결 프로그램 '대한외국인'에 출연하고 있는 여성 고정출연자 삼인방. 왼쪽부터 안젤리나 다닐로바, 에바, 모에카.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MBC에브리원의 퀴즈대결 프로그램 '대한외국인'에 출연하고 있는 여성 고정출연자 삼인방. 왼쪽부터 안젤리나 다닐로바, 에바, 모에카.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연예인급 인기 누리는 '대한외국인' 여성출연자 삼인방  
 
대단하다 못해 대견하기까지 하다.  
한국인들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순우리말 '시망스럽다'(몹시 짓궂은 데가 있다) '구쁘다'(배 속이 허전해 자꾸 먹고 싶다)의 뜻을 알아맞히고, 'ㅅㅅㄱ ㄱㅅㅇ'란 초성 만으로 '실시간 검색어'를 유추해내는 능력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 오래 거주한 외국인들과 한국의 스타 출연진이 한국과 한국어에 대한 퀴즈 대결을 펼치는 MBC에브리원 '대한외국인'의 외국인 출연진 얘기다.  
한국 관련 퀴즈를 풀지만 도전자는 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 스타들이다. 발상의 전환이다. 10단계까지 난이도별로 포진해 유창한 한국어와 풍부한 상식을 과시하며 한국인 출연자들의 도전을 막아내는 이들을 보면, 프로그램 제목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된다.  
특히 에베레스트를 빗댄 별명 '에바레스트'로 불릴 정도로 에이스급 한국어 실력을 과시하는 에바(코노노바 에바·27·러시아), 3년이 채 안 되는 짧은 거주 기간에도 만만치 않은 실력을 지닌 안젤리나 다닐로바(23·러시아), 같은 한자문화권의 이점을 안고 한자어 문제에 강점을 보이는 모에카(사토 모에카·27·일본) 등 여성 고정출연자 셋의 활약은 단계별로 프로그램에 큰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대한외국인'은 최근 '케이블TV 방송대상'(예능·코미디 부문)을 수상했다. 22일 인터뷰를 위해 한자리에 모인 이들은 수상 소식을 접하곤 "계속 꽃길만 걷자"며 환한 미소로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이들은 프로그램의 인기 덕에 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했다. 
안젤리나는 얼마 전 자신의 사진을 휴대전화 배경화면으로 해놓은 택시기사를 만나 기념촬영을 해줬고, 모에카는 한의원에서 어떤 중년여성으로부터 "문제 잘 풀던데, 더 열심히 해요"라는 격려를 받았다고 했다. 
에바는 자신을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했던 영국인 여성 에바로 오해하는 사람들을 보면 살짝 우울해진다고 했다.      
한국어 실력은 에바(9단계), 모에카(4~6단계), 안젤리나(3단계)순이다. 
 
'대한외국인'에서 난이도 9단계를 맡으며, 출중한 한국어 실력을 자랑하는 에바.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대한외국인'에서 난이도 9단계를 맡으며, 출중한 한국어 실력을 자랑하는 에바.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조선왕조실록' 읽는 에바, 예능·케이팝 즐기는 모에카·안젤리나  
 
매주 금요일 촬영을 앞두고 이들은 어떤 준비를 할까. 에바는 "한국인도 모르는 조선시대 문제가 나오기 때문에 조선왕조실록을 읽고 있다"며 "감을 잡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모에카는 "4~6단계에선 유행하는 신조어 또는 난센스 문제가 나오기 때문에 '전지적 참견 시점' '나 혼자 산다'(이상 MBC) '연애의 참견'(KBS Joy) 등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안젤리나는 "한 달 전 다니기 시작한 한국어 학원에서 배운 걸 복습하지만, 한국 친구들과 주고받는 SNS 메시지나 케이팝 가사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대한외국인'에는 10대들이 즐겨 쓰는 급식체와 줄임말 등 신조어 퀴즈가 자주 등장한다. 
이들은 모든 걸 몇 음절로 축약해 표현하는 한국인의 언어습관에 대해 '별다줄'이라고 했다. '별걸 다 줄인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보조 배터리의 줄임말 '보배'도 방송에 퀴즈로 등장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아아'로 줄이는 걸 보고, 한국 사람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많이 줄이고, 줄임말이 등장하는 주기도 빨라지니까 업데이트하기가 힘들어요."(에바) 
안젤리나에겐 '인싸'(인사이더, 인기있는 사람) '혼코노'(혼자 코인노래방 가다) '갑분싸'(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다) 등의 급식체는 일상어가 됐고, 모에카는 "일본도 줄임말 쓰긴 하는데, 한국만큼은 아니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대학생 때 한국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운 모에카.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대학생 때 한국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운 모에카.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국 사람들 줄임말 너무 심해, '잔나비'같은 순우리말 아름다워"  
 
이들은 굉장히 아름다운 '순우리말'에 한국 사람들이 별로 관심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입을 모았다.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로 '소나기'를 꼽은 모에카는 "일본말에도 소나기를 뜻하는 단어가 있지만, 소나기만큼 아름다운 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에바는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는 밴드 '잔나비'를 통해 알게 된 잔나비(원숭이를 뜻하는 방언)를 '여우비'와 함께 가장 사랑하는 우리말로 꼽았다. "신조어 홍수 속에 아름다운 순우리말의 가치가 희미해지는 게 아닐까 걱정된다"며 "나중에 아기를 낳으면 순우리말 이름을 지어주려 한다"고 말했다.  
 
삶의 지표로 삼는 인생 속담으로 모에카는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를, 안젤리나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를 꼽았지만, 에바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를 택했다. 
"누구도 사람들 속마음까진 알 수 없잖아요. 정말 절묘한 속담 아닌가요? '사람 일은 모른다' '사람은 안 변한다' 같은 말도 재밌어요."  
 
대통령 통역사(에바), 예능 방송인(모에카), 싱어송라이터(안젤리나)가 꿈  
 
한국에 살면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일까. 대학원에서 한·러 통번역을 전공한 에바는 얼마 전 투르크메니스탄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만찬사를 번역했다. 장차 러시아 대통령 옆에서 통역을 하고, 한·러 문화교류의 전령사가 되고 싶다는 그의 명함에는 '이에바'라는 한국 이름이 적혀 있다.  
"피아노 강사 일을 하던 어머니를 따라 6살 때 한국에 온 뒤 양국을 왔다 갔다 하며 자라났어요. 양국에서 대학을 동시에 다니며 폭풍 같은 시간을 보냈죠. 평범한 한국 남자와 결혼해 행복한 '대한외국인'이 됐습니다.(웃음) 러시아 문학을 한국에 들여오고, 한국 문학 작품도 러시아어로 번역하고 싶어요."      
 
걸그룹 '소녀시대'와 배우 김태희를 좋아하던 모에카는 도쿄의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했지만, 하루에 10시간씩 한국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한국어를 독학으로 배웠다고 했다.   
"대학 졸업한 뒤 하루 종일 한국 생각만 나길래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얻어 무작정 건너왔어요. 뷰티방송 BJ를 한 적도 있어요. 4년간 생활하면서 힘든 일도 있었지만, 배운 것도 많아요. 모델 일을 하고 있지만, 예능 활동과 연기도 하고 싶습니다."  
 
한국 남자의 외모와 패션을 좋아하고, 아이돌그룹 '엑소'에 빠져 살던 안젤리나가 한국에 오게 된 건 우연한 계기였다.
 
케이팝의 열렬 팬인 안젤리나 다닐로바는 싱어송라이터가 돼서 한국어 가사의 곡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케이팝의 열렬 팬인 안젤리나 다닐로바는 싱어송라이터가 돼서 한국어 가사의 곡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러시아의 한국식당에서 된장찌개 먹는 모습 등 SNS에 올린 사진이 인기를 끌며 한국인 팔로워 수가 급증하고 포털사이트에 포스팅되는 등 한국 네티즌 사이에 유명인사가 됐다. 덕분에 케이블TV 외국인 예능 프로그램 섭외가 들어왔고, 출연을 계기로 안젤리나는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지금은 방송 활동과 모델 일을 하고 있지만, 원래 꿈은 싱어송라이터예요. 지금은 외모로 주목받고 있지만, 언젠가 내 안의 색깔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한국어 가사의 곡이라면 더욱 좋겠죠."  
 
이들은 '이게 뭐냐' 같은 혼잣말도 한국어로 할 때(에바), 일본에 간 지 이틀 만에 고등어조림과 무말랭이가 그리워질 때(모에카), 러시아에 도착하자마자 한강이 보고 싶어질 때(안젤리나) '내가 한국 사람이 다 됐구나'라고 느낀다고 했다.  
 
"우리도 이렇게 사랑하는 한국, 한국 분들이 더 사랑해줬으면" 
 
한국 사회에 대한 애정어린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한국 사람들은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고,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며 살아요. 그런 분위기에 영향받아서인지 한국 사람들처럼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까' 신경 쓰며 살다 보니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더군요. 다들 남들 눈치 보지 말고,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느끼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안젤리나·모에카) 
"우리 같은 외국인들도 이렇게 한국을 사랑하는데, 한국 분들도 좀 더 자기 나라를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한국이 변화가 빠르고 스트레스 많은 사회인 건 맞지만, 그만큼 발전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이렇게 빠르게 성장한 나라가 어딨나요? 언제나 열심히 살고 계신 한국분들,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셔도 됩니다."(에바)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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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