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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인 한·일 관계 풀려야 북한에 효과적 대응도 가능

한·일 관계 전문가 좌담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왼쪽)과 다나카 전 일본 외무성 심의관이 지난 19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한·일 관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왼쪽)과 다나카 전 일본 외무성 심의관이 지난 19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한·일 관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한·일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냉각된 양국 분위기가 풀리기는커녕 대립의 골만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젠 상대국 정부를 감정적으로 무시하는 상황까지 초래되고 있다. 쌓여 있는 현안만 해도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부터 평화헌법 9조 개정,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 등 한둘이 아니다.
 
얽히고설킨 양국 관계 개선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신각수 전 외교통상부 차관과 다나카 히토시(田中均) 일본총합연구소 전략연구센터 이사장이 지난 19일 마주 앉았다. 신 차관은 주일대사를 지냈고, 다나카 이사장은 일본 외무성 외무심의관으로 근무한 한반도 전문가다. 다나카 이사장은 니어재단(이사장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동북아시아 평화와 번영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한 ‘한·중·일 서울 프로세스’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과거사·영토·국민감정 등 현안 산적
 
현재의 한·일 관계를 평가한다면.
▶다나카=“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가장 큰 문제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점이다. 일본 측은 한국 정부가 ‘국가 간 협정’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한국 정부는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외면만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일 관계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안보 등 분야에서 특히 그렇다. 예를 들어 1994년 북·미 갈등으로 한반도에 군사적 위기가 닥쳤을 때 일본에선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이 가동됐다. 북한을 견제하기 위해 군용기 등 상당한 군사력이 일본에서 대기했다.”

▶신각수=“최근 한·일 관계는 1965년 수교 이후 가장 길고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 있다. 2012년 이후 7년간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에는 갈등이 생겨도 1년 안에 해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번 위기는 7년이나 지속되고 있다. 한·일 관계는 과거사, 영토 갈등, 지정학적 문제, 국민감정 등 4개 분야에서 단층이 형성돼 서로 상승 작용을 하며 ‘악순환의 구조’가 정착됐다. 2013년 양국의 새 정부 출범,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합의,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등 세 차례에 걸쳐 회복할 기회가 있었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그 결과 갈등 고조와 함께 국민감정도 매우 악화된 상황이다.”
 
갈등이 깊어지면서 한·일 관계가 예전만큼 중시되지 않는 분위기다.
▶신각수=“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장기적인 관계 악화로 인해 양국에서 상대방을 경원시하고 무시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상대방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평가절하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특히 걱정되는 건 감정적 대응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최근 국제관함식에서 일본 해상자위대함의 욱일기 게양 문제, 한·일 양군의 사격 통제 레이다 가동 및 저공 위협비행 문제,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국회의장 일왕 관련 발언, 지방의회 전범 기업 표시 조례 제정 시도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다나카=“향후 중국을 견제하는 데 있어서도 한·일 협력은 필수적이다. 경제적으로도 양국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한·일 간 정치적 관계가 악화되더라도 경제나 문화 교류 등 다른 분야까지 악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한국이 안전 보장에선 미국을, 경제에선 중국을 중요한 파트너로 인식하면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을 과거보다 가볍게 볼 수도 있지만 이는 잘못된 판단이다. 한반도에서의 효과적인 전쟁 억지력은 한·미와 미·일 간 안보 협력 체제를 통해 나온다. 일본의 협력이 한반도 안정을 위해 필수라는 의미다. 양국 정부는 ‘한·일 관계가 국익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한국, 강제징용 배상 관련 선택 폭 좁아
 
문재인 대통령(左), 아베 신조 총리(右)

문재인 대통령(左), 아베 신조 총리(右)

각론으로 들어가 보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를 놓고 마찰을 빚고 있는데.
▶다나카=“위안부 문제는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다. 대만·중국·인도네시아와 네덜란드에서도 같은 문제가 있었다. 이들 나라에도 사죄하고 기금을 조성했다. 모두 원만하게 해결됐는데 오직 한국과는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정치적 요인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이번에는 한국 정부가 나서서 양국 합의를 흔들었다. 일본은 지난 합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사죄하고 지원 기금까지 내놓는 성의를 보였다.”

▶신각수=“문재인 정부가 2015년 한·일 합의를 폐기하거나 재협상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지난해 말 일본 정부가 제공한 10억 엔을 집행하기 위한 화해치유재단이 해산되는 바람에 사실상 양국 간 합의는 무력화됐다. 그동안 피해자나 유족에 대한 보상금 지급에 진전도 있었지만 아직 58억원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고 한국 정부가 제공한 100억원도 전혀 소진되고 있지 않다.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검증하기 위해 외교부에 설치된 태스크포스(TF)팀이 피해자 중심주의 측면에서 결함이 있는 합의라고 했지만 양국 외교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합의인 만큼 양국이 협력해 부족한 점을 보완하면서 이행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도 나왔다.
▶다나카=“한·일 관계의 안정성을 해치는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해결된 문제다. 현재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 판결에 따른 한국 정부의 구체적인 액션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신각수=“한국 정부의 선택지는 매우 제한돼 있다. 판결을 그대로 이행하게 되면 일본과 외교 분쟁이 발생해 양국 경제 관계에 큰 타격을 주게 될 것이다. 한국 정부가 보상할 수도 있지만 국내 여론의 반발로 쉽지 않다. 국제사법재판소의 판단에 맡기는 것도 사안의 민감성을 볼 때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쉽지 않겠지만 한국 정부, 청구권 자금 사용 한국 기업, 강제징용을 한 일본 기업 등 3자가 기금을 조성해 문제를 해결하는 게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본다.”
 
후쿠시마 수산물 분쟁에서 세계무역기구(WTO)가 한국의 손을 들어줬는데.
▶신각수=“WTO 상소 패널에서 한국이 승소함으로써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금지를 둘러싼 한·일 분쟁이 막을 내렸다. 법치를 강조하는 일본 정부도 WTO의 최종 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더 이상 이 문제가 양국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나카=“일본 정부는 WTO 결정을 받아들였다. 공식적인 클레임도 제기하지 않았다. 이는 일본이 WTO의 결정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 언론은 WTO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쏟아내고 있는데.
▶다나카=“그건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 따라서 일본 정부가 WTO 결정을 받아들였다는 게 옳은 판단일 것이다.”
 
한국에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평화헌법 9조’ 개헌에 대한 우려가 크다.
▶다나카=“헌법 개정은 주권의 문제다. 일본 국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개헌을 하게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다른 나라들이 뭐라고 할 사안은 아니다. 하지만 개헌에는 엄격한 판단이 필요하다. 의회에서 통과되는 것도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개헌이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9조는 상징적이면서 굉장히 중요한 조항이다. 일본에 대해 주변국들이 갖고 있는 인식을 결정한다.”

▶신각수=“기본적으로 개헌 문제는 일본 국내 문제라는 점에서 일본 국민이 결정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평화헌법은 2차 대전의 반성과 교훈 위에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일본 국민이 신중하게 결정할 것으로 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본 정부와 국민은 과거 일본 제국주의로 인해 피해를 입었던 주변국들의 우려를 충분히 감안해야 할 것이다.”
  
한·일 ‘비정상 관계’ 고착화 우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양국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인데.
▶신각수=“북핵 폐기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북한 대 국제사회 구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한·미·일 3국 공조가 국제사회의 단결된 대응 태세를 만들어 가는 핵심 요소다. 북한의 전략적 셈법을 바꾸기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은 제재다. 북한 관련 정보 측면에서도 양국은 서로 협력할 여지가 많다.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체결로 제도적 기반이 구축된 만큼 협력을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다나카=“한·일 관계가 개선되면 북한에 대해 더욱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경제 발전과 관련해서도 한국을 비롯해 일본과 중국 등이 협력해 도움을 줄 수 있다. 북한의 발전을 위해서도 한·일 양국의 튼튼한 관계가 필요하다.”
 
한·일 지도자 모두 자국 내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양국 관계를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신각수=“양국 정부가 한·일 관계를 국내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 정부는 개헌 등 보수 어젠다 실현을 위한 지지층 결집이란 차원에서 혐한 감정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한국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과도한 반응은 그런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양국 정부 모두 자제해야 한다.”

▶다나카=“모든 정치 지도자는 그런 경향을 갖고 있다. 미국·영국·프랑스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 행동이 국가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신각수(64)
1975년 외무고시 합격(9회), 2006~2008년 주이스라엘 대사
2009~2011년 외교통상부 1차관, 2011~2013년 주일대사
2013~2017년 국립외교원 국제법센터장
다나카 히토시(72)
1996년 일본 외무성 북미국 심의관, 2001년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2002년 고미즈미 일본 총리 방북 성사 주역, 2002년 외무성 외무심의관
2005년~ 일본총합연구소 전략연구센터 이사장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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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