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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피우스, 바우하우스 문 열자 알마는 사랑의 문 닫아

김정운의 바우하우스 이야기 <9>
‘군인’ 그로피우스.

‘군인’ 그로피우스.

‘늙은 남편’ 구스타프 말러가 사망하자 ‘젊은 부인’ 알마 말러는 7살 연하의 천재화가 오스카 코코슈카와 공개적 연애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코코슈카의 편집증을 견뎌낼 수 없었다. 그의 아기를 임신했지만 몰래 낙태했다.  
 
알마는 전쟁터에 나가는 것을 어떻게든 피하려 했던 코코슈카를 ‘겁쟁이’라고 비웃기도 했는데, 이에 열 받은 코코슈카는 알마와 자신이 꼭 껴안고 있는 모습을 그린 ‘바람의 신부(Windbraut)’를 팔아 말을 샀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황제의 기병대로 입대해버렸다. 당시 폼 나는 기병대에 입대하려면 전시의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인해 스스로 말을 끌고 들어가야 했다. 아무리 뜨거운 사랑도 뒤돌아서면 항상 그 모양이 된다. 코코슈카는 1915년 여름 머리에 총을 맞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살아남아 아주 오래오래 살았다.
 
코코슈카와의 관계가 채 끝나지도 않았던 1915년 초부터 알마 말러는 그로피우스와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철십자훈장까지 받은 멋진 ‘군인’과의 사랑은 알마에게 ‘늙은 말러’와 ‘집착하는 어린 코코슈카’ 사이의 극단적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종합한 것이었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알마 말러는 그로피우스가 ‘전형적인 프로이센 남자’였다고 고백한다. 유머도 없고, 자신을 둘러싼 빈의 남자들에 비해 음악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 없다고 불평했다.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프로이센 남자 그로피우스에게는 섬세한 빈의 남자들에게 없는 결정적 ‘한 방’이 있었다. 강한 육체였다.
 
미망인 알마 위안해 준 ‘독일 병정’의 젊음
 
젊은 날의 알마 말러.

젊은 날의 알마 말러.

1910년 초여름 휴양지에서 만났을 때부터 그로피우스는 알마에게 육체적으로 특별했다. 코코슈카가 군대에 입대하자, 알마는 그로피우스와 만나며 새롭게 얻은 자유를 만끽했다. ‘군인’ 그로피우스에게 보낸 알마의 편지 내용 중에는 포르노 소설에 가까운 내용이 자주 나온다. 전쟁터의 군인이 읽으면 ‘환장할 내용들’이다(군대 다녀온 한국남자들은 그 자극이 얼마나 강력한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 내용을 자세하게 소개할 수 없는 게 몹시 안타깝다. 원고를 쓰며 나만 매번 격하게 흥분한다).
 
아무튼 그로피우스는 전쟁터를 오가며 알마와 뜨겁게 사랑했다. 1915년 초부터 그로피우스가 부상 후유증으로 신경쇠약에 걸려 휴양했다고 공식적으로는 기록돼있다. 그러나 난 알마 말러와의 사랑 때문이었다고 ‘합리적 의심’을 한다. 결국 그해 여름, 정확히는 1915년 8월 18일, 두 사람은 베를린에서 문자 그대로의 ‘비밀 결혼’을 했다. 그로피우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알마와의 결혼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로피우스는 이틀간의 특별 휴가를 받아 구청의 호적사무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우연히 지나가던 행인 두 명이 불려와 결혼 증인이 됐다.
 
‘슬프고 아름다운 소설’ 같은 알마와 그로피우스의 결혼은 이내 현실이 되었다. 그로피우스는 바로 전쟁터로 돌아가야 했다. 알마는 전쟁터의 남편에게 온갖 불만의 편지를 보냈다. 그로피우스의 어머니, 즉 시어머니에 대한 불평이 가장 많았다.
 
물론 채워지지 않는 성적 판타지가 가득한 편지도 자주 보냈다. 임신하자 알마의 불평은 더욱 심해졌다. 전쟁터의 그로피우스는 편지를 받을 때마다 냉탕온탕을 오가며 미칠 지경이 되었다. 그 이듬해인 1916년 10월 알마는 딸 마농 그로피우스를 낳았다.
 
화가 코코슈카가 알마와의 사랑을 그린 ‘바람의 신부’. 평화롭게 잠든 알마를 안고 있지만 코코슈카는 눈을 부릅뜨고 있다.

화가 코코슈카가 알마와의 사랑을 그린 ‘바람의 신부’. 평화롭게 잠든 알마를 안고 있지만 코코슈카는 눈을 부릅뜨고 있다.

1917년이 되자, 그로피우스는 벨기에로 발령지가 바뀌었다. 새로운 임무도 부여받았다. ‘군견 훈련’이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다양한 목적으로 군견이 쓰이고 있었다. 알마는 자신의 남편 ‘군인 그로피우스’가 군견을 훈련한다는 사실을 몹시 부끄러워했다.
 
출산 후 몸을 추스르자, 알마는 예전의 생활로 돌아왔다. 빈에서 매일 밤 파티를 개최하며 시간을 보냈다. 물론 자신이 베를린에서 그로피우스와 결혼했고 딸까지 낳았다는 사실은 비밀이었다. ‘그로피우스의 부인’이 아닌 ‘말러의 미망인’이 자신의 ‘붉은 살롱(Roter Salon)’에서 개최하는 파티에는 음악가·미술가·학자 등 각 분야의 스타들이 드나들었다. 그중 마음에 드는 남자와 알마는 자주 사랑에 빠졌다.
 
물론 대부분 금방 끝났다. 그러나 작가 프란츠 베르펠과의 사랑은 많이 달랐다. 알마보다 11살 연하의 베르펠은 작고 뚱뚱했다. 그러나 그는 피아노를 잘 연주했고 노래도 아주 잘 불렀다. 알마의 살롱을 빛내주는 게스트였다.
 
이혼의 조건 “당신이 잘못한 걸로 해”
 
오스트리아 빈 외곽의 작은 마을 푀흐라른에 있는 코코슈카 하우스. [사진 윤광준]

오스트리아 빈 외곽의 작은 마을 푀흐라른에 있는 코코슈카 하우스. [사진 윤광준]

베르펠에겐 또 다른 특별함도 있었다. 알마는 후에 베르펠에겐 아주 특이한 ‘변태적 습관’이 있다고 썼다. 자신은 그의 변태적 욕망을 채워주느라 힘들었다고 썼다. 그러나 알마가 튼튼한 군인, ‘프로이센 남자’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다른 ‘독특한 그 경험’을 즐겼음에 분명하다.
 
1918년 초, 알마는 베르펠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알게 됐다. 임신 초기에는 그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 정확히 몰랐다. 그러나 임신 시기와 그로피우스의 휴가 기간이 차이 나는 것을 계산한 후 베르펠의 아이임을 확신했다. 그해 여름, 임신 말기의 알마는 베르펠과 격렬한 성관계를 가졌다. 이 때문에 아기를 조기 출산하게 된다. 아들이었다. 이름은 마틴으로 지었다. 그러나 그 아기는 조산과정에서 심각한 장애를 갖고 태어났고, 이듬해 5월 사망했다.
 
아들이 태어날 때, 알마의 곁은 그로피우스가 지키고 있었다. 그로피우스는 그 어떤 의심도 없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베르펠과 알마가 막 태어난 자신들의 아이에 관해 행복해하며 전화로 수다 떠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로피우스는 알마가 당황할 정도로 매우 침착했다(자업자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수년 전 구스타프 말러가 알마에게 했던 것처럼, 베르펠과 자신 중 한 명을 선택하라고 했다. 아울러 자신은 알마를 포기할 마음이 전혀 없다고 했다. 알마는 그때처럼 아주 어정쩡하게 행동했다. 그로피우스와의 부부관계를 유지하며, 베르펠과의 연인관계도 지속했다.
 
그 사이 전쟁은 끝이 났다. 그리고 그로피우스와 베르펠 사이를 오가던 알마 앞에 전쟁에서 심각한 부상을 당해 후송됐던 오스카 코코슈카까지 나타났다. 이번에는 베르펠이 알마에게 누구를 사랑할 것인지 선택하라고 결정을 요구했다.
 
코코슈카의 알마 인형. 전쟁터에서 돌아온 코코슈카는 알마를 잊지 못하고 알마와 똑같은 크기의 인형을 주문제작해 옆에 두고 살았다.

코코슈카의 알마 인형. 전쟁터에서 돌아온 코코슈카는 알마를 잊지 못하고 알마와 똑같은 크기의 인형을 주문제작해 옆에 두고 살았다.

당시 코코슈카가 미쳤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가 인형과 함께 다닌다는 소문이었다. 그 인형은 코코슈카가 뮌헨의 인형 제작자에게 알마와 똑같이 만들어달라고 주문제작한 것이었다. 그는 인형 제작자에게 그 인형을 꼭 껴안을 수 있는 크기로 부드럽게 만들어달라고 했다. 코코슈카는 페티시즘의 끝판왕이었다. 코코슈카가 자신을 닮은 인형을 옆에 끼고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를 알게 된 알마는 베르펠에게 “나의 유일한 사랑은 당신뿐”이라고 편지를 썼다.
 
1919년 5월 아들의 죽음과 동시에 그로피우스와의 관계는 끝내기로 알마는 결심했다. 1919년 4월 개교한 바우하우스 일로 정신없는 바이마르의 그로피우스에게 이혼하자는 편지를 보냈다. 그로피우스는 “이혼은 동의하나 딸 마농의 양육권은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딸의 양육권을 둘러싼 알마와의 다툼은 일 년이 넘도록 지속됐다.
 
그러나 알마의 집요한 요구를 당해낼 수 없었다. 게다가 당시 그로피우스는 형편없는 조건 속에 막 개교한 바우하우스를 어떻게든 자리잡게 하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결국 1920년 10월 11일, 알마와 그로피우스는 베를린의 법정에서 공식 이혼했다. 이혼 사유는 흥미롭게도 ‘그로피우스의 부정’이었다. 그로피우스는 ‘창녀와의 관계’를 가짜로 증명했다. 자신의 사회적 체면을 지키기 위해 알마가 그렇게 요구했고, 그로피우스는 순순히 알마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해하기 힘든 그로피우스의 태도는 둘 중 하나다. 엄청난 ‘젠틀맨’이었거나, 어떻게든 알마로부터 자유롭고 싶었거나. 아니다. 둘 다 일 수도 있겠다.
 
그로피우스는 이처럼 알마와 복잡하게 얽혀있는 동안 바우하우스를 성공적으로 출범시켰다. 그러나 알마가 소개한 요하네스 이텐과의 권력투쟁이 바우하우스에서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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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