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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릅 도둑이 흘린 서리의 기술

안충기의 삽질일기 
명자나무. 산당화라고도 한다. 가시가 억세다. 예쁘다고 덜컥 손댔다가 찔리면 눈물이 쏙 빠진다. 이 꽃이 지면 철쭉이 피는데 그러면 곧 여름이다.

명자나무. 산당화라고도 한다. 가시가 억세다. 예쁘다고 덜컥 손댔다가 찔리면 눈물이 쏙 빠진다. 이 꽃이 지면 철쭉이 피는데 그러면 곧 여름이다.

이게 뭐예요, 간격이 너무 좁아요, 심는 순서가 바뀌었잖아요, 구멍에 먼저 물을 붓고 모종을 넣어야지요, 밭을 빠대면 안 돼요….
 
밭 쥔장 아저씨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훈수하느라 바쁘다. 요란한 목소리가 갑자기 들리지 않는다. 돌아보니 페트병 그득한 바구니를 들고 밭 옆에 붙은 산으로 올라간다. 쓰레기 버리러 가는 거 아냐? 양심에 털 난 양반 같으니라고, 한마디 해줘야지 하는데 잠시 뒤에 내려온다.      
 
삽질일기. 안충기

삽질일기. 안충기

바구니에는 페트병이 그대로 들어있다. 뭐지? 하는 새 내 밭으로 성큼성큼 와서는 병 하나를 꺼낸다. “잡숴 봐요. 자작나무 수액인데 고로쇠보다 좋아요.” 밍밍하고 심심하고 찝찔하니 뭐라 말할 수 없는 맛이지만 몸에 좋다니 연거푸 두 잔을 원 샷 원 샷.    
 
아까 친구가 집에서 해온 부침개와 막걸리로 목을 축일 때 쥔장을 부른 부수입이 짭짤하다. 오해해서 미안해요.  
 
“저거 따 먹어도 되쥬?”
 
뿌리고 남은 씨앗. 농사 선생님들은 선선한 그늘에 보관하라고 한다. 깜빡 잊고 차 트렁크에서 푹푹 찌는 여름을 난 씨앗을 뿌려봤더니 싹은 잘도 트더라.

뿌리고 남은 씨앗. 농사 선생님들은 선선한 그늘에 보관하라고 한다. 깜빡 잊고 차 트렁크에서 푹푹 찌는 여름을 난 씨앗을 뿌려봤더니 싹은 잘도 트더라.

수액을 마시던 친구가 순이 나오기 시작한 밭 옆 두릅나무를 가리키며 능청을 떤다. 쥔장이 10여 년 전에 심은 나무다. 가지 끝에 달린 순이 통통하게 부풀고 있다. 대답이 신통찮기에 내가 한술 더 떴다. “지난해 보니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며 따가도 놔두더구먼유”
 
쥔장이 헛웃음 치며 지나간 이야기를 꺼낸다.
 
겨울난 대파. 도랑 건너에 있는 다른 사람의 밭이다. 어찌나 토실토실한지 서리하고 싶은 유혹이 불끈, 큰일 날 소리다.

겨울난 대파. 도랑 건너에 있는 다른 사람의 밭이다. 어찌나 토실토실한지 서리하고 싶은 유혹이 불끈, 큰일 날 소리다.

“가끔씩 서리를 당해요. 한번은 저쪽에서 일하다보니 누가 순을 꺾는 거예요. 소리를 질러도 계속 꺾어요. 아니 뭐 저런 사람이 있나 싶어 쫓아와서 왜 남의 밭에서 이러느냐고 했지요. 그랬더니 이 산이 당신 거냐고 물어요. 내 산은 아니지만 이 나무들은 내가 심었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꺾어요. 메고 있는 배낭을 보니 두릅이 그득해요. 낚싯대까지 들고 있더라고요. 끝에 달린 갈고리로 높은 가지를 당겨서 순을 자르는 용도지요. 딱 보니 이 사람 꾼이에요. 산 저쪽에 다른 사람 두릅 밭이 있는데 거기서부터 훑어온 낌새예요. 내놓으라고 했더니 못 주겠대요. 열이 확 뻗치잖아요. 좋게 말할 때 내놓고 가랬더니 신고하려면 해보라는 거예요. 이거 봐라 하며 그자 허리춤을 꽉 잡고 112를 눌렀지요. 그러면 웬만하면 잘못했다고 할 텐데 이 사람 보통이 아니에요. 옥신각신하고 있는데 백차가 왔어요. 그런데 내놓고 가라는 경찰 말도 안 들어요. 절도죄에 해당 합니다 같이 가시겠습니까, 하니 그때서야 태도를 바꾸더라고요. 요 앞에 있는 파출소 소장이 내 친구예요. 혼내줄까 하다가 내 밭에서 딴 거만 받아내고 보내줬어요. 그 뒤로는 안 오더라고요”  
 
밭 옆에 있는 소나무 가지에 걸어놓고 쓰는 호미. 겨우내 눈비 맞아 녹이 슬었다. 봄이 지나면 반짝반짝 빛난다.

밭 옆에 있는 소나무 가지에 걸어놓고 쓰는 호미. 겨우내 눈비 맞아 녹이 슬었다. 봄이 지나면 반짝반짝 빛난다.

치안센터 직원들이 밭에 와서 밥 먹는 걸 봤으니 쥔장 말은 틀림없을 테다.  
 
쥔장에게 배운 꿀팁 하나, 서리꾼이 주로 출몰하는 시간은 해질녘 어스름이다. 농부는 하루 일 끝내고 저녁 먹으러 들어갈 때고, 어두워지니 암약하기 딱 좋다. 농부는 방어의 시간이고 도둑은 공격의 시간인데, 혹시 서리하실 마음 있는 분이라면 참고하시길. 단, 얼굴에 두툼한 철판을 깔 것, 주인이 밤에 풀어놓는 개조심, 요즘 인심이 예전 같지 않아 고추 하나 따도 쇠고랑차기 십상이니 걸리면 책임은 본인이 질 것.
 
둘이서 일을 마쳤다. 초봄에는 일이 많지 않아 다른 친구들보고는 꽃구경이나 다니라고 했다. 나는 호미 들고 기어 다니며 씨를 넣고, 친구는 부러진 삽자루로 구멍 뽕뽕 뚫어 모종을 심었다. 흙 돋워 만든 이랑은 고추와 토마토를 심을 자리다. 작년에는 친구가 대전 신탄진장에서 튼튼한 모종을 사다가 심었다. 올해는 쥔장네서 구하거나, 아랫동네 은미네 농장에서 가져와도 되는데 모종 상태를 먼저 봐야겠다. 고추 모종은 5월에 심는다. 서둘렀다가 냉해를 입으면 새우처럼 등이 굽거나 조림용 고추처럼 쪼글쪼글하게 달린다.  
 
씨 뿌리고 나니 비가 내린다. 출발이 순조롭다.
 
그림·글=안충기 아트전문기자 newnew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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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