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오래 달릴 수 있는 인간, 맹수도 이기는 '런다운 사냥법'

기자
윤경재 사진 윤경재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33)
일상을 내려놓고 배낭여행길에 나서 바람이라도 느껴보자. [사진 unsplash]

일상을 내려놓고 배낭여행길에 나서 바람이라도 느껴보자. [사진 unsplash]

 
배낭여행
여행을 떠나는 일은
그리워 기도해줄 미소를 만날까
꿈꾸어 보는 길
 
물려받은 이름 잠시 접어두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별명을 얻어
발자취에 삽입해보는 길
 
헛헛증이 도진 듯
콧잔등에 바람이라도 쐬어야
사진의 바깥처럼 눈까풀이
파르르 채워지는 길
 
그리곤 제 이름으로 돌아와
내가 있기 전의 뒤편을 만나
말개진 머릿속을
추억의 기다림으로
배낭 속에 구겨 넣는 길
 
해설
인류는 전 세계에 퍼져 살기에 유리한 조건을 지녔다. 땀구멍이 있는 피부 덕분에 오래 달릴 수 있었고, 여럿이서 협동하면 강한 동물도 사냥해낼 수 있었다. [중앙포토]

인류는 전 세계에 퍼져 살기에 유리한 조건을 지녔다. 땀구멍이 있는 피부 덕분에 오래 달릴 수 있었고, 여럿이서 협동하면 강한 동물도 사냥해낼 수 있었다. [중앙포토]

 
인간은 단일 종이 전 지구에 퍼져있는 유일한 종족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인류 조상이 비교적 짧은 기간에 여러 지역으로 퍼져나갔기 때문이란다. 인간은 직립보행을 할 수 있어 비교적 빠르고 지구력 있게 달릴 수 있었다. 사냥할 때에도 목표로 삼은 동물을 추적해 목표물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쫓아다녔다. 몸에 털이 없고 피부에 땀구멍이 잔뜩 있어 달리느라 급격하게 상승한 체온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든 ‘런다운’ 사냥법
대개 동물의 순간 속도는 인간보다 빠르겠지만, 급격한 심장박동으로 생긴 체열을 잘 낮추지 못해 쉽게 지쳐버리는 특성이 있다. 일곱, 여덟 시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장점이었다. 비록 날카로운 발톱과 크고 힘센 턱과 뾰족한 송곳니가 없어도 여럿이서 협동해 사냥하는 인간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이런 방법을 ‘런다운(run-down)’ 사냥법이라고 부른다. 마치 야구에서 주자를 협공해 아웃시키는 방법을 닮았다.
 
이렇게 인류는 잘 달릴 수 있는 특성을 이용해 아프리카 대륙에서 벗어나 유럽과 아시아 심지어 얼음으로 덥힌 베링해협을 건너 남아메리카 대륙까지 퍼져나갈 수 있었다. 유목과 정착 생활은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의 이야기였다.
 
인간의 유전자 속에는 이렇게 멀리 달리고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낼 줄 아는 특질이 담겨 있다. 이런 특징을 프랑스 철학가 가브리엘 마르셀은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곧 ‘여행하는 인간’ 또는 ‘길 위의 인간’이라고 정의하였다. 생존하기 위해서 장소를 이동해야 하는 ‘호모 노마드(유목민)’와는 그 의미가 다르다.
 
스페인 도보순례여행인 '카미노 데 산티아고(산티아고 가는 길)'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의 하나였던 야고보가 스페인 당에서 순교한 것을 기념해 세운 야고보 성당을 방문하자는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특히 이 도보 여행에서는 "길을 떠날 때는 지팡이 외는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 빵도 여행보따리도 전대도 가지고 가지 말라. 신발은 신되 옷은 두벌은 껴입지 말라"는 가르침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800km 긴 여행을 할수록 배낭에 꼭 필요한 것 외에는 하나둘 버리게 된다고 한다. 배낭의 무게가 곧 자신의 삶의 무게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그래서 자신을 덜어내는 길이 곧 새 삶과 생명을 얻는 길이라는 걸 배우게 된다.
 
오디세우스와 세이렌(1891), ⓒpublic domain. 오디세우스는 귀향 중 많은 우여곡절을 겪는다.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와 갈등을 겪고, 세이렌에게 현혹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몸을 돛대에 결박하기도 한다. [그림 wikipedia]

오디세우스와 세이렌(1891), ⓒpublic domain. 오디세우스는 귀향 중 많은 우여곡절을 겪는다.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와 갈등을 겪고, 세이렌에게 현혹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몸을 돛대에 결박하기도 한다. [그림 wikipedia]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은 누구나 친구가 된다. 얼굴 모양이나 피부색 성별은 큰 문제가 안 된다. 누군가 아플 때 약을 나누어주고, 목마를 때 물을 주며, 배고파 할 때 빵을 나누어주게 된다. 땀 냄새가 진동하는 발의 물집을 따주면서도 누구 하나 얼굴을 찡그리지 않는다. 배낭에 담긴 물건으로 한 사람의 삶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지닌 본래의 모습으로 그를 바라보는 능력을 배우기 때문이다. 그러니 낯선 이에게 자신의 빵빵한 배낭을 열어 보이는 것은 자칫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드러내는 일이 되고 만다.
 
오디세이아와 같은 그리스 고전은 주인공이 겪은 여행담을 이야깃거리로 삼아 우리에게 교훈을 전한다.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여행에서 겪은 사건 중에 외눈박이 키클롭스에게 당한 고난은 사실 오디세우스가 스스로 자처한 것이었다.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으로 자신을 한껏 부풀린 그는 무참하게 깨지고 만다. 오히려 동료들의 비참한 죽음을 속절없이 바라보아야만 했다. 다행히 그는 자신이 ‘노바디(아무도 아닌 자)’라는 것을 고백하고 죽음의 동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스 고전에서 영웅들이 갖는 교만하고 우월하다는 자의식을 ‘휴브리스’라고 부른다. 작가는 알량한 ‘휴브리스’마저 덜어내야 진정한 인간이 된다는 교훈을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특별한 나에서 아무도 아닌 나가 되는 체험을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30년간 해외여행자 수 24배 폭증
여행은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를 준다. 또, 과거와 미래를 벗어나 현재에 충실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먼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우리는 매일 보는 지하철, 한강의 모습이 정겹게 느껴지는데 바로 그럴 때 상처를 보듬을 마음의 힘이 생긴다. [사진 unsplash]

여행은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를 준다. 또, 과거와 미래를 벗어나 현재에 충실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먼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우리는 매일 보는 지하철, 한강의 모습이 정겹게 느껴지는데 바로 그럴 때 상처를 보듬을 마음의 힘이 생긴다. [사진 unsplash]

 
한때 미래학자들은 인터넷 발달과 검색능력이 발전할수록 해외여행이 줄어들지 모른다고 예견했었다. 직접 몸을 움직이지 않고도 유명 관광지와 박물관 등을 접속하여 구경할 수 있을 거라 생각 했었다. 그러나 그 예상은 빗나갔다. 1995년에 전 세계 항공수요가 13억 명이었는데 2017년에는 39억 명으로 세 배나 폭증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미래 사회에 아무리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발달하더라도 여행 관련 사업은 계속 확장할 것이라고 한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여행 자유화가 시작된 1989년에 해외로 여행을 나간 국민의 숫자가 121만 명이었는데 2018년에는 2870만 명이었다고 한다. 30년 간 무려 24배 가까이 늘은 셈이었다.
 
또한 한국이 세계에서 9번째로 해외여행 비용을 많이 쓰는 나라라고 한다. 그로인해 해마다 관광수지 적자가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다. 한중일 세 나라 중 오직 한국만 큰 적자를 내고 있다. 그럼에도 여행은 더 권장되어야 한다고 본다. 아직은 배워야 할 게 많다. 여행의 필수 조건인 안전, 친절과 신뢰를 더 배우고 생활화해야 여행객이 방문하고 싶은 나라가 될 수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4차 정보혁명시대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여행은 직접체험이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모든 게 현재로 다가온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련, 미래에 다가올 불안과 걱정은 희미해진다. 옭죄는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숨겨진 모습을 대면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을 벗어나 초월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라틴어 ‘솔비투르 암불란도(solvitur ambulando)’는 걸으면 해결된다는 뜻이다. 수많은 선각자들과 명상가들이 우리에게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에서 벗어나 현재를 살라고 충고하는데 여행은 그런 것을 체험해 연습해볼 좋은 기회가 된다.
 
늘 함께 사는 가까운 사람이나 가족 간에서 상처가 더 쉽게 생긴다. 집안 곳곳에 아픈 기억이 배어 있다. 그래서 가끔은 그런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는 길을 꿈꿔보곤 한다. 그러나 함께 살아온 집안을 그저 도배나 하고 칠을 다시 하는 데서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 다시 그 집으로 돌아오고 싶은 향수를 느껴야 한다.
 
먼 해외여행에서 돌아 왔을 때 낯설게 느껴지는 올림픽대로, 빽빽한 자동차들의 흐름들, 혼잡한 전철의 사람들이 어색하면서도 정겹게 느껴질 때 우리는 지나간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사실 우리는 그때부터 일상이라는 또 다른 배낭여행을 시작할 준비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윤경재 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