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죽음 생각케 한 신용불량에서 해방"…치매남편 간병 70대 “이제 새 삶”

1000만원이 안 되는 빚을 10년 이상 갚지 못한 장기소액연체자들은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159만명(2017년 금융위원회 추산)이나 된다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정부 지원정책에 따라 빚을 탕감 받은 장기소액연체자들을 직접 만났다.

[빚탕감 그후②]

 

IMF로 떠안게 된 감당 못 할 빚

방문을 열자 눅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방 한가운데는 올해로 17년째 뇌경색과 치매로 투병 중인 김명수(77·가명)씨가 TV 앞에 웅크려 앉아 있었다. TV 위쪽 하얀 벽지로는 곰팡이가 까맣게 폈다. 보일러가 돌지 않는 바닥에는 장판이 겹겹이 쌓였다.
 
19일 낮 김명수(가명)씨가 서울시 송파구 자택에서 TV를 보고 있다.

19일 낮 김명수(가명)씨가 서울시 송파구 자택에서 TV를 보고 있다.

 
지난 19일 찾아간 김명수씨와 김영희(73·가명)씨 집에는 습기가 가득했다. 김씨 부부는 서울시 송파구 단독주택 2층에 보증금 200만원, 월세 14만원을 주고 세 들어 살고 있다. 마당에 있는 공용변기를 사용하고 욕실은 따로 없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1m 남짓한 부엌을 거쳐 하나뿐인 방 안이 들여다보였다. “서울에 아직도 이런 집이 있나 싶지?” 김영희씨가 농담처럼 말을 던졌다. 
 
김씨 부부는 한때 광주광역시에서 제법 큰 소갈비전문점을 운영했다. 1997년 외환 위기로 경기가 나빠지면서 가게에서 발행했던 수표를 부도내고 말았다. 사업을 크게 하면서 여기저기 돈을 많이 빌려줬는데, 이를 돌려받지 못한 것이 상황을 악화시켰다. 1998년 당시 김씨 부부가 주변에 빌려준 돈만 8억원이었다.  
 
“그래도 넘(남)의 돈은 갚아야 허니께.” 취업한 자녀들 명의로 6000만 원을 대출받게 했다. 빚은 자식들이 스스로 갚았다. 지금까지 김씨 부부는 “자식들한테 용돈만 받고 암(아무) 소리 못한다”고 했다. 덕분에 김씨는 부정수표 단속 위반 외에 사기 등의 고소,고발에 휘말리진 않았지만, 큰 빚을 떠안았다.  
 
“내가 생각헐 땐 빚이 제일 무서워. 제일 무서운 건 빚이야.” 김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때 날마다 편지로 밤에 온다, 뭣에 온다, 압류시킨다, 뭣(무엇) 헌다 하면서 그 독촉이 말을 할 수가 없어.”   
 

빚쟁이에 쫓겨 상경, 가사도우미로 생계

결국 1999년 김씨 부부는 서울로 도망치듯 이사했다. 갑작스럽게 가세가 기울면서 김씨는 우울증을 겪었다. 생을 마감할 생각까지도 했다. 다행히 주변 도움으로 다시 일어섰다. 가사 도우미 사무실에 나가 온종일 일했다. 2003년 남편이 치매 기운을 보이자 일을 서서히 줄였다. 올해 초까지도 김씨는 두 군데서 가사 도우미 일을 했다.  
 
이번 장기소액연체자 지원 혜택을 받은 건 남편인 김명수씨다. 김영희씨는 6년 전에 변호사 비용 30만원을 내고 개인파산 신청을 이미 마쳤다. 이후 아내 김영희씨가 남편을 대신해 1만2000원씩 매달 6년간 갚아오다가 이번에 남은 금액 430만원을 면제받았다. 20년 전 원금 50만 원짜리 신용카드 대출이 어느새 400만 원대가 돼 있었다.  
 
남편이 통장 하나 만들 수 없는 신용유의자(옛 신용불량자)가 되면서 모든 생활은 김영희씨가 책임져왔다. 한때는 안 좋은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도우미 해서 집세 내고 뭐 내고. 그때는 신용불량자니까 (돈 구할 곳이 없어서) 건강보험을 못 넣잖아. 그럼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서) 한 달 약값이 50만원이 나오는 거야. 그러니까 죽어야 하나 살아야 하나….”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빚 있는 사람도 용기 얻었으면”

이번 채무 탕감 덕분에 김씨 부부는 마침내 모든 채무에서 벗어났다.  
 
“빚이 없어지니까 완전히 새 삶을 만난 것 같아. 과거에 내가 돈 빌려주고 안 갚는 사람을 조르기도 하고 큰소리도 치고 한 것이, 굉장히 내가 참 잘못했구나 (하는 생각을 해).”  
 
김영희 씨는 최근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준비 중이다. 그는 이번 인터뷰에 나선 이유가 “빚 있는 사람들이 행복 그거(국민행복기금)를 이용해서 새 생활을 살았으면, 용기를 얻고 살았으면 좋겠어서”라고 말했다. 끝으로 김씨는 제도 남용이나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시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처럼 서민들은 적은 돈이면 갚고 살려고 하지 그걸 안 갚으려는 사람은 없는 거 같아. 오히려 제도를 몰라서, 이용을 못 해서 어려움 겪는 사람들은 많을 것 같아. 좀 편안한 생활을 살았으면 허는 생각이 돼.”
관련기사
신혜연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