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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왕회장 손녀 정남이 “한국판 페이팔 마피아 만들어낼 것”

정남이 아산나눔재단 상임이사 단독인터뷰 
개관 5주년을 앞두고 정남이 아산나눔재단 상임이사가 22일 서울시 강남구 역삼로 ‘마루180'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김상선 기자

개관 5주년을 앞두고 정남이 아산나눔재단 상임이사가 22일 서울시 강남구 역삼로 ‘마루180'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김상선 기자

 
“남이님~. 여기요.”
지난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스타트업 창업지원센터 '마루180'. 직원이 부르자 사원증을 목에 걸고 로비를 지나가던 한 여성이 씨익 웃으며 다가왔다. 이곳에서 ‘남이님’으로 통하는 이 사람은 아산나눔재단 정남이(36) 상임이사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녀이자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녀인 그는 글로벌 컨설팅 회사 베인앤컴퍼니에서 일하다 2013년 아산나눔재단에 합류했다.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아산나눔재단의 창업지원센터 마루180.  [사진 아산나눔재단]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아산나눔재단의 창업지원센터 마루180. [사진 아산나눔재단]

 정 이사가 땅보러 다니는 일부터 시작해 국내 대표적 스타트업 창업지원센터로 성장시킨 마루180은 2014년 4월 문을 열었다. 이후 5년간 182개 스타트업이 이곳에 머물며 미래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스타트업)의 꿈을 키워 갔다. ‘정주영 창업경진대회’를 통해 새로 발굴한 스타트업만 61팀. 지금은 네이버에 인수된 명함관리 앱 ‘리멤버’를 만든 드라마앤컴퍼니, 자유여행 플랫폼 마이리얼트립, 스마트벨트를 만드는 웰트 등 쟁쟁한 스타트업들이 마루180 출신이다. 22일 만난 정 이사는 “제가 재미 없는 사람인데 걱정이네요”라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가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승계) 큰 그림 없다, 스타트업 생태계 매력적일뿐 
아버지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현대중공업)에 합류하는 대신 스타트업 육성에 나선 이유가 뭔가요. 
   

“아산나눔재단 왔을 때부터 많은 분들이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정말 남들이 생각하는 (가업 상속이나 후계 구도)의 큰 그림은 아무것도 없어요. 재단에 온 건 스타트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에 매력을 느껴서예요. 저희 할아버지는 대한민국 최고 창업가셨잖아요. 그런 창업가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제가 왔을 때 사회 분위기가 ‘88만원 세대’등 젊은 세대의 어려움이 부각되던 시기였어요. 비관적 사회분위기 속 힘들어 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직원들이 ‘남이님’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재단은 대학생 인턴부터 모든 직원들이 서로를 ‘님’이라 불러요. 제가 인턴을 부를 때도 님으로 부릅니다. 자율적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수평적 조직문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무실 제 자리도 이사라고 특별한 위치에 있지 않아요.”
 
 한국에도 '페이팔 마피아' 만들고 싶다
마루180 1층에 위치한 카페. 누구나 들어와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   [사진 아산나눔재단]

마루180 1층에 위치한 카페. 누구나 들어와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 [사진 아산나눔재단]

 
마루180은 어떤 공간인가요.
 
“창업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자문을 해 줄 엑셀러레이터가 모두 한 곳에 모여 교류하고 성장하는 창업 생태계예요.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졌지만 2013년만 해도 창업지원센터에 가보면 공짜 사무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거든요. ‘닭장’처럼 벽으로 가로 막힌 공간에서 옆 사무실에선 뭐하는지 서로 모르는 채 자기 일만 하는 구조였죠. 그런 환경에선 창업 효율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어요. 창업과 관련된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교류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마루180에는 스타트업부터 스파크랩, 퓨처플레이 등 엑셀러레이터, 캡스톤파트너스 등 벤처캐피털까지 다 들어와 있습니다.”
 
스타트업 생태계에 왜 교류가 중요하죠.  
“서로 아이디어를 나누고 의견을 교환해야 혁신적 사업, 좋은 서비스가 나올 수 있어요. 미국 실리콘 밸리가 혁신적 기업을 배출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는 ‘페이팔 마피아’로 불리는 문화예요. 초창기에 성공한 페이팔 출신 기업인들이 나와서 창업하면서 서로 교류하고 도와줘 링크드인, 유튜브 등이 탄생했잖아요.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는 없어요. 서로 공유하고 조언해줘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전 마루180을 거친 스타트업들이 그런 문화를 업계 전반에 퍼뜨렸으면 해요. 개인의 성취로 끝나지 않고 후배를 도와주고 이끌어서 사회를 위해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를 갖추는 첫 단계가 마루180입니다.”
 
고민없는 쉬운 해법 '규제'가 혁신 막아 
 
개관 5주년을 앞두고 정남이 아산나눔재단 상임이사가 22일 서울시 강남구 역삼로 ‘마루180'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김상선 기자

개관 5주년을 앞두고 정남이 아산나눔재단 상임이사가 22일 서울시 강남구 역삼로 ‘마루180'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김상선 기자

스타트업 지원이 많아졌지만 생각만큼 성공한 기업이 많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규제 문제가 큽니다. 저희 재단에서 세계 유니콘 기업 중 누적 투자액 상위 100개 업체의 사업 모델을 한국 시장에 적용했을 때 규제 저촉 가능성을 분석했는데 40.9%가 한국에서 불법이었어요. 30.4%가 조건부로 가능한 사업 모델이었구요. 70%가 한국에서 사업을 하기 어렵단 얘기예요. 혁신이 나올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척박한거죠.”
 
스타트업들이 규제 관련 어떤 고충을 토로하나요.
“우리 사회가 무슨 문제가 생기면 쉬운 해법을 택하는 경향이 있어요. 예컨대 악플이 문제된다고 게시판형 서비스를 하는 사업자에게 악플 지우는 인력을 고용하도록 했어요. 그럼 인력 고용할 돈이 없는 스타트업은 게시판형 서비스를 못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악플이 줄지도 않았구요. 불법촬영 막는다고 스마트폰에 카메라 촬영음 무조건 들어가게 만든 것도 그렇죠. 모든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는겁니다. 불법 촬영이 줄지도 않았고요. 근본적 해결책을 찾는 대신 규제로 풀어나가다 보니 스타트업은 사업 기회를 잡기 어렵습니다.”
 
어릴때부터 창업 어려움 직접 봤다 
 
본인이 창업할 생각은 없나요.
“전 어렸을 때부터 창업, 기업 경영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고 배웠어요. 현대중공업이 큰 기업이지만 그렇다고 미래가 보장돼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사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독한 마음으로 해야하는 건지 알고 있어요. 제 스스로 준비가 됐다고 생각해야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1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 말미 정 이사에게 재벌가 3세로서의 삶이 어떤지 물었다. 그는 “철 모르던 어렸을 땐 주목받는 삶이 정말 싫었다”며 “지금은 내가 받은 혜택에 대해 사회적으로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위치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대답을 마친 정 이사는 자신의 차 베라크루즈 조수석에 직원을 태우고 직접 운전해 사무실로 돌아갔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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