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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리디노미네이션 괴담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해괴한 일이다. 난데없는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 괴담 말이다. 몇 년 만에 퇴직 선배 A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대뜸 “화폐 개혁을 진짜 하느냐. 달러를 사야 하나”고 물었다. “부동산값이 폭등하면 어쩌냐”며 걱정했다. 다음날 만난 지인 B는 “50만 달러를 씨티은행에 넣어놨다”고 했다. 같이 있던 지인 C는 “금을 사두라”며 조언하기도 했다. “북한과 화폐 통일, 총선·대선 자금 마련용 화폐개혁 임박”이란 괴담도 전했다.
 

17년 된 해묵은 이슈가
터무니없는 괴담으로 번진 건
불통 리더십 때문 아닌가

지인 A·B·C는 이런 괴담을 유튜브에서 들었다고 했다. 유튜브를 검색해봤다. 각종 화폐개혁 괴담이 횡행했다. 큰 줄기는 이런 것이다. ‘정부가 북한과 화폐 통일부터 하려고 한다. 화폐 개혁을 하면 부동산값이 오른다. 그러니 미리 부동산을 사둬라. 그럴 돈이 없다면 장롱 속 돈을 모두 꺼내 달러나 금으로 바꿔라.’ 더 지독한 음모론도 있다. 대통령 긴급명령→화폐개혁→주가 급락→(미리 사둔) 공매도로 차익 실현→수십조원의 정치자금 마련 시나리오다. 약 300조원의 지하자금 양성화용이란 주장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다 헛소리다.
 
일일이 따져봤다. 5억 원짜리 집이 50만원이 되면 싸다고 느껴 수요가 늘면서 가격이 오른다는 부동산값 폭등설은 기우일 뿐이다. 자기 소득도 1000분의 1로 준다. 그걸 계산 못 할 아둔한 국민이 아니다. 대통령이 어느 날 뚝딱 해치울 수도 없다. 1953년과 1962년엔 대통령이 긴급명령을 통해서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지하자금을 몰수하고 인출을 제한했다. 긴급통화조치법으로 가능했다. 지금은 그럴 수 없다. 화폐 단위를 변경하려면 한국은행법을 고쳐야 한다. 2012년 관련 조항이 모두 한은법으로 통합됐다. 한은법 47조의 2는 ‘대한민국의 화폐 단위는 원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철통 보안을 유지해 대통령이 설령 긴급명령으로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한들 결국 국회를 거쳐야 한다는 얘기다. 국민 재산을 몰수·제한하는 화폐개혁이라면 국회에서 통과될 리 없다.
 
지하자금 300조원 양성화도 말이 안 된다. 3월 말 현재 시중에 풀린 5만 원짜리는 모두 97조원이다. 이중 불법 자금은 10%도 안 될 것이란 게 한은의 시각이다. 지하자금을 끌어낸다며 장롱 속 돈의 환전 한도·기간을 제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게다가 리디노미네이션은 진짜 화폐개혁도 아니다. 1000원을 1원으로 단위만 바꾸는 것이다. 거칠게 말하면 좌측→우측통행이나 구주소→새도로명주소 도입과 다를 게 없다. 한은은 아예 화폐개혁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화폐 단위 변경이라고 한다.
 
사실 화폐단위 변경은 한물간 주제다. 2002년 7월 박승 당시 한국은행 총재가 비밀팀을 꾸려 추진하다 미완에 그친 지 벌써 17년이 흘렀다. 이젠 한은 국정감사의 단골 메뉴려니 한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지난달 25일 “화폐단위 변경을 논의할 때가 됐다.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한 것도 그냥 원론적인 답변이었을 것이다. 당시 대부분의 신문은 이 총재의 발언을 아예 다루지도 않았다. 뉴스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4년 전 국감 때도 이 총재는 똑같이 말했다. 그때도 잠깐 소동이 있었지만 한은이 “절대 아님”이라며 해명자료를 내고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이 정부 내계획 없다”고 하면서 잠잠해졌다. 이후 해마다 이런 일이 반복됐다. 그런데 왜 유독 올해만 큰 논란이 됐을까.
 
괴담은 어둡고 음습한 곳에서 자란다. 불통을 자양분 삼고 내로남불로 꽃을 피운다. 친북 올인, 근거 없는 탈원전, 기승전 최저임금 인상 같은 불통의 리더십이 화폐개혁 괴담의 토양이 된 것은 아닌가. 이게 자라면 박근혜의 7시간→ ‘히로뽕 주사’, 이명박의 쇠고기 재협상→ ‘뇌송송 구멍탁’ 같은 대형 괴물이 되는 것 아닌가. 괴담이야말로 민심의 전단지다. 화폐개혁 괴담도 다르지 않다. 제대로 읽고 처방하지 않으면 권력과 정권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 처방전은 알려진 대로다. 햇빛과 청결, 화합과 소통이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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