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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만화도 있어요" 방 예약 손님에게 알려준 건 오지랖?

기자
송미옥 사진 송미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85)
언젠가 처음으로 동호회 모임을 나갔다. 한 사람씩 자기소개를 했다. 한 남자가 자기 소개를 했는데 나는 마음 한구석 짠한 마음이 들었다. [사진 Freepik Designed by Pressfoto]

언젠가 처음으로 동호회 모임을 나갔다. 한 사람씩 자기소개를 했다. 한 남자가 자기 소개를 했는데 나는 마음 한구석 짠한 마음이 들었다. [사진 Freepik Designed by Pressfoto]

 
언젠가 서울 살 적 처음으로 동호회 모임을 나갔다. 첫 오프라인 모임 때였다. 한 사람 한 사람 자기소개를 했다. 키가 크고 까칠한 카리스마에 인물까지 잘생긴 중년의 한 남자 차례가 되었다. “저는 이름은 ***이고 나이는 **살입니다. 건물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경비라고 하면 좀 낮게 보여서요. 하하하.”
 
모두 크게 웃었지만 나는 마음 한구석 짠한 마음이 들었다. 나도 막노동을 하는 사람인데 동병상련이랄까, 측은지심이랄까, 암튼 50살이 넘어서면 동네 이장이라도 돼야 성공했다고 큰소리치는 나이인데 멀쑥한 인물로 가장 낮은 자리에서 건물 상인들의 온갖 잔소리를 들으며 경비실 한 귀퉁이에서 일해야 하는 처지가 마음이 짠했다. ‘에고, 인물 아깝다…’ 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밥 먹고 노래방까지 갔다가 헤어지면서 나는 그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하며 말했다. “기운 내셔요~ 곧 좋은 날이 있을 거예요. 인물이 더는 고생 안 할 상이에요. 호호호.” 내 말에 진심이 느껴졌는가 기운이 난다며 크게 웃었다. 그날 술판이 끝난 후 숙취 해소용으로 함께 마시려고 준비해간 매실액을 불쌍한(?) 그분 손에 들려주었다. 15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그 모임은 변함없이 지속하여 40대이던 나도 어느새 60이 넘었으니 세월이 유수 같다.
 
아~! 그런데 그날의 인사는 오지랖 중에서도 웃기는 오지랖이 되었다. 알고 보니 그분은 서울의 고층빌딩을 가진 조물주 위에 계신다는 건물주였다. 그날 그렇게 소개한 것은 본인을 최대한 낮추어 소개한 겸손한 마음이었다.
 
 
나는 그 한 번의 만남 이후 시골로 내려왔으나 이후에 그분은 회원들과 번개팅 때마다 밥값을 많이 내셨다고 한다. 내가 시골에 내려가게 되었을 때 친히 전화를 주셔서 기운 내라며 염소 한 쌍, 흑돼지 한 쌍을 사 보내주셨다. 지금도 해가 바뀌면 가끔 연하장을 써서 감사 인사를 드린다. 그러나 그때의 실수와 민망함이 얼마나 컸던지 말을 조심 또 조심하게 되었지만 이놈의 오지랖은 늘 앞서갈 때가 많다.
 
며칠 전 고택에 남자 한 분이 숙박 예약을 했다. 고택의 특성상 비싼 요금이지만 오시는 손님들이 한옥에 대한 불편함을 즐거이 공유하는 걸 보면 문화와 역사, 지식을 겸비한 수준 있는 분들이시다. 보통 가족이 함께 오는데 중년의 남자가 혼자서 여행한다는 것은 보나 마나 가출 아니겠는가. 하하하.
 
나는 전화로 우리 고택에서 마음을 내려놓고 잘 쉬다가 가실 수 있게 조곤조곤 설명을 해드렸다. 다락방에 비치된 성인 만화방의 ‘원피스’ 완판도 구비되어 있다고 전했다(40대가 넘는 분들이 오시면 학창시절 읽다가 만 원피스라는 만화를 정말 좋아하셨다).
 
다락방에 비치된 만화책 '원피스'. 40대가 넘는 분들이 오시면 학창시절 읽다가 만 이 만화를 정말 좋아하신다. [사진 송미옥]

다락방에 비치된 만화책 '원피스'. 40대가 넘는 분들이 오시면 학창시절 읽다가 만 이 만화를 정말 좋아하신다. [사진 송미옥]

 
터미널에 내려 택시를 타고 오신다는 말에 시내버스로 오시면 안동 시내 관광도 겸하실 수 있고 택시비 2만원도 벌 수 있다며 길 찾기 앱도 복사해서 찍어 보냈다. 허락 얻은 가출이라도 부인에게 택시비까지 얻어 나오셨을 리가 만무하니까…. 아~ 이 넘치는 오지랖이여!
 
오늘 아침에 배웅하러 나가니 손님은 일찍 나가시고 방안에 명함과 함께 적어놓고 가신 메시지가 있다. 잘 쉬었다 가노라고,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따뜻한 메모였다. 마음 가득 행복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침에 배웅하러 나가니 손님은 일찍 나가시고 방안에 명함과 함께 적어 놓고 가신 메시지가 있었다. [사진 송미옥]

아침에 배웅하러 나가니 손님은 일찍 나가시고 방안에 명함과 함께 적어 놓고 가신 메시지가 있었다. [사진 송미옥]

 
앗, 그런데 명함을 보니 유명대학에서 생명공학을 연구하는 교수님이셨다. 그렇다면 학술회의에 참여하시거나 그런 방문이실 텐데 만화방에서 넋 놓고 ‘원피스’를 보라고 소개한 내가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그래도 ‘그래요? 정말요?’ 하며 웃으며 맞장구를 쳐주셨는데…. 히힝.
 
어느 책에서 본 웃음 나던 한 구절이 생각난다. 프로야구 중계를 보시다가 마침 감독이 온갖 손짓 몸짓으로 사인을 보내는 장면을 보신 오지랖 넓은 어머님께서 아들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 저렇게 말 못하는 사람들도 열심히 사는데 말이여.” 무기력해지는 마음에 힘과 웃음을 주더라는 어느 분의 말씀처럼 진심으로 말하면 무식한 오지랖도 괜찮은 거다. 살아보니 남의 인생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이 문제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 웃음 주는 푼수 오지랖은 그래도 필요한 세상이 아닐는지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본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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