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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나라, 우주피스 공화국

송인한 연세대 교수·빌뉴스의대 객원교수

송인한 연세대 교수·빌뉴스의대 객원교수

지난 4월 1일 만우절은 유럽 북동부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 구도심으로부터 다리 너머 강 저편에 있는 자그마한 자유 공간, 우주피스 공화국의 건국기념일이었다. 소비에트 연방에 강제 합병된 시절 죽음의 거리로 불리며 가난과 절망이 가득하던 공간에 해방 후 자유를 꿈꾸는 일단의 예술가들이 모여든 것이 우주피스의 시작이었다.
 

유토피아 꿈꾸는 예술가 마을
‘공존 = 행복’ 믿는 커뮤니티
새삼 국가의 의미 생각케해

22년 전 만우절에 건국을 선언했기에 진지한 혁명적 주장조차도 독특한 행위예술로 여겨져 기존 권력으로부터 견제나 탄압을 받지 않았다는 재치 있고 유쾌한 이 공동체는 진지함과 재미의 경계, 농담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경계에서 태어났다.
 
1년에 한 번 만우절에만 존재하는 나라라고 국내에 잘못 소개되기도 했지만 이 자유로운 예술가 마을은 계속 존재하며 기념일 전후로 미술·음악·행위예술이 가득한 페스티벌을 열어 자유와 평화 정신을 나눈다. 입국심사관으로 자원봉사하는 주민들이 다리를 건너오는 이들의 여권에 입국 심사 도장을 찍고 그럴듯하게 디자인한 우자스(Uzas)라는 화폐로 환전하는 퍼포먼스도 한다. 1 우자스의 가치는 맥주 한 잔 가격을 기준으로 20년째 고정되어 있다고 한다.
 
동네 단골 술집 탁자 위에서 3시간 만에 만들어 선포한 헌법은 35개 언어로 거울처럼 반사되는 철판 위에 새겨져 있어 헌법 조문을 읽을 때 자신의 모습이 글자 위에 겹쳐 보인다. 이는 국가가 사람의 행복을 위해 함께 연결되어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이라고 한다. 너무 상식적이고 기본적이라 역설적으로 잊고 있던 국가의 역할을 상기시킨다.
 
지난번 칼럼에서 “모든 사람은 행복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16조를 포함한 우주피스 헌법 전문을 소개하고 난 후 우주피스 공화국이 진짜 국가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예술가들이 유토피아를 꿈꾸며 재미로 만든 마을이라고 대답하면서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국가란 무엇인가? 태초부터 존재했던 국가란 없으며 모두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닌가. 인류의 긴 역사 속 지금의 국가 형태가 존재한 건 지극히 짧은 시간에 불과한데 어떻게 이들이 만든 세상은 국가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우주피스의 인기로 한몫 잡아보려는 이들도 없고 이를 기반으로 정치력을 가지려는 이들도 없다.함께 살아가는 공존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믿고 실천하기에 커뮤니티가 계속 지속하여 왔다고 이들은 믿고 있다. 치밀하고 정교하게 조직되고 이론화된 사회운동이나 정치적 마이크로네이션(자의적으로 독립을 주장하는 작은 집단이나 지역)이라기보다는 각자의 행복을 위해 시작한 일상의 커뮤니티인 것이다.
 
그 자유로운 정신에 매료된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어 이 날도 세계 각지의 다양한 사람들이 전 세계적인 연대에 관해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토론 끝에 “인공 지능(AI)도 인류의 선의를 믿을 권리가 있다”는 재밌는 첨단 조항이 추가되기도 했다. AI를 헌법에서 언급한 다른 나라는 결코 없을 게다.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퍼레이드에서 참가자들이 깃발을 들고 올해 주제인 “취급 주의(Handle with Care)” 구호를 흔들며 악대의 음악과 함께 행진했다. 사람의 마음은 부서지기 쉬운 연약한 것이라 서로를 소중하게 조심해서 대하자는 뜻이란다. 동의.
 
퍼레이드 후에 릴레이키스 대통령이 단상에 올라 국기에 가위를 댔다. 아무리 재미로 만든 나라지만 국기를 자르나 하는 생각으로 의아하게 봤는데,국기에 그려진 우주피스 상징인 손바닥 가운데 구멍을 내고 선언했다.그 누구도 우주피스나 혹은 다른 어떤 국가도 소유할 수 없다는 상징이라고. 국가는 모두의 것이지 그 누구도 소유하고 지배할 수 없다는 당연한, 그러나 잊고 있던 생각을 단순한 퍼포먼스로 다시 일깨웠다.
 
공화국 초창기부터 잘 안다는 한 사람이 다가와 “옛날엔 더 멋졌어요. 지금은 관광상품처럼 되어 버렸지만”이라고 아쉬워한다. ‘옛날’에 대한 향수는 세계 공통인가 보다. 화려한 행진이 탐탁지 않은 듯 말을 시작한 그였지만 절망의 거리가 어떻게 살아나고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추억하는데 애정이 가득했다.
 
외부 사람들이 우주피스를 어떻게 생각할지 물었더니 “우리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더 이상하잖아요”라 답한다. 부정할 수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국가가 인간 공동체의 텔로스(목적)이고 최고의 국가는 좋은 삶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면 우주피스가 그쪽에 더 가까울 테니까.
 
송인한 연세대 교수·빌뉴스의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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