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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에 화난 국민들 ‘부패 청소부’ 연기한 배우에 73% 몰표

젤렌스키가 주연을 맡은 ‘국민의 종’은 2015년 첫 방영 이래 높을 시청률을 기록하며 2차례의 시즌을 마쳤다. 코미디언 출신인 젤렌스키는 시즌1에서 현실정치에 무모하게 부딪치는 교사를 연기했다. [유튜브 캡처]

젤렌스키가 주연을 맡은 ‘국민의 종’은 2015년 첫 방영 이래 높을 시청률을 기록하며 2차례의 시즌을 마쳤다. 코미디언 출신인 젤렌스키는 시즌1에서 현실정치에 무모하게 부딪치는 교사를 연기했다. [유튜브 캡처]

대통령을 연기한 배우가 진짜 대통령이 됐다. 러시아와 유럽 사이에 있는 인구 4400만의 국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일이다. TV 드라마를 현실로 만든 주인공은 정치 경험이 전무한 배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41). 21일(현지시간) 실시된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잠정 개표 결과에서 젤렌스키가 73.17%를 얻어 페트로 포로셴코(53) 현 대통령(24.5%)을 3배 가까운 득표율 차이로 꺾었다고 뉴욕타임스 등이 보도했다. 포로셴코는 패배를 인정했고,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젤렌스키에게 잇따라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젤렌스키는 소비에트연방 시절인 1978년 우크라이나 중부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주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경제연구소 교수, 어머니는 공학자였다. 엘리트 교육을 받은 젤렌스키는 키예프 국립 경제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어려서부터 예능 쪽 재능이 두드러졌다고 한다. 17세 때 러시아 TV 코미디쇼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린 이후 ‘러브 인 더 빅 시티’ 등 TV 코미디 영화에 출연하거나 프로듀서로 활약했다.  
 
젤렌스키가 주연을 맡은 ‘국민의 종’은 2015년 첫 방영 이래 높을 시청률을 기록하며 2차례의 시즌을 마쳤다. 코미디언 출신인 젤렌스키는 시즌 2에서 현실정치에 무모하게 부딪치는 교사를 연기했다. [유튜브 캡처]

젤렌스키가 주연을 맡은 ‘국민의 종’은 2015년 첫 방영 이래 높을 시청률을 기록하며 2차례의 시즌을 마쳤다. 코미디언 출신인 젤렌스키는 시즌 2에서 현실정치에 무모하게 부딪치는 교사를 연기했다. [유튜브 캡처]

그를 ‘국민 배우’로 만든 작품은 우크라이나에서 2015년부터 방송 중인 정치 풍자 드라마 ‘국민의 종’. 이 드라마에서 젤렌스키는 부패한 정권을 비판하는 영상으로 SNS 스타가 된 뒤 대통령 자리까지 오른 고교 교사 역할을 맡았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부패한 정치인을 척결하고 재벌을 개혁하는 ‘활약상’에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2013년부터 친서방 운동인 ‘유로마이단(Euromaidan) 운동’을 지지하며 정치적 입지를 굳힌 젤렌스키는 2017년 드라마 제목과 이름이 같은 당 ‘국민의 종’을 창당한 뒤 대선에 뛰어들었다. 지난달 31일 1차 투표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젤렌스키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정치 신인임을 특히 강조했다. 그의 대선 승리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기성 정치인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아웃사이더 정치 신인에게 절호의 기회가 됐다고 분석한다. 뉴욕타임스(NYT)는 “(현 대통령은) 러시아와 5년간 전쟁을 벌였지만 유권자들은 그보다 부패·빈곤 등 국내 문제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젤렌스키는 드라마에서처럼 부패와 빈곤 척결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포로셴코와 젤렌스키 모두 친서방주의자이지만 대(對)러시아 정책에선 젤렌스키가 상대적으로 온건하다.
 
지난 18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한 뮤지엄 단원들이 사탕으로 만든 젤렌스키의 초상화 옆에서 셀카를 촬영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8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한 뮤지엄 단원들이 사탕으로 만든 젤렌스키의 초상화 옆에서 셀카를 촬영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유럽 대륙의 최빈국=워싱턴포스트(WP)는 2014년 우크라이나에 친서방·친유럽연합(EU) 정권이 들어서며 변화에 대한 갈망이 크게 일었으나 포로셴코가 이에 부응하지 못하고 실정을 거듭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정권 교체 후 5년이 지났지만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유럽 대륙의 최빈국 중 하나다. 한때 ‘형제국가’였던 러시아와 크림 사태 등으로 심각한 갈등을 빚으며 정치권은 친러냐, 친서방이냐를 두고 첨예하게 갈려 있다. 1만3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의 정부군과 친러 반군 간 교전은 5년째 진행형이고,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은 안갯속이다.
 
젤렌스키는 돈바스 지역의 무력분쟁을 종식하겠다고 공약했다. 대통령이 되면 반군을 지원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담판을 벌이겠다고도 했다. 이날 출구 조사 발표 뒤 젤렌스키는 “실망시키지 않겠다. 우크라이나인으로서 모든 옛 소련 국가를 향해 ‘우리를 보라.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독재국 옆에서 성공, 한국은 본보기”=탄탄한 지지 기반 없이 불어닥친 ‘젤렌스키 돌풍’을 두고 서방 언론은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젤렌스키에게는 강력한 정치적 견해나 공약이 없었다”(BBC), “새 대통령의 경제 공약은 불확실하며 금융계의 걱정은 여전하다”(로이터) 등이다. “포로셴코의 실정으로 인한 반사이익에 기댄 무공약 당선” “국민의 기대는 크지만 정치 및 외교에서의 무경험은 큰 약점이 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그의 ‘재벌 후원자’에 해당하는 콜로모이스키와의 긴밀한 관계를 우려하는 여론도 적지 않다. 그가 재벌의 영향력을 극복하고 푸틴에게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BBC는 분석했다.
 
앞서 1차 투표가 끝난 뒤 젤렌스키는 연합뉴스 등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선되면 어느 나라를 먼저 방문할 계획인가’라는 질문에 “국내 문제가 산적해 지방을 먼저 찾을 것”이라고 답했다. 또 “야권 인사들을 기용하는 문제도 논의할 생각이다. 그들도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대해선 “한국은 이웃에 독재국가(북한)가 있더라도 큰 성공을 거둘 수 있고 발전할 수 있으며 강하고 자유로운 나라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면서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아주 좋은 본보기”라고 강조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홍지유 기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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