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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포털에 '시원한 술' 쳤더니···'1시간 내 집앞 (마약) 택배' 글이 떴다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유엔 범죄마약국(ODC)은 인구 10만명당 마약사범이 20명을 넘지 않으면 '마약 청정국'으로 분류한다. 인구 5000만명인 대한민국은 기준선(1만명)을 2015년부터 4년간 넘었고 올해도 또 넘을 전망이다. 마약 청정국 지위를 상실한 '마약 오염국' 신세다. 이계한 인천지검 강력부장은 "한국이 마약 청정국일 때는 한국을 경유해 일본·미국으로 가는 경유 마약 거래가 많았지만, 한국은 이제 사실상 마약 소비국이 됐다"고 진단했다. 마약 소비가 전방위로 넘쳐나고 있다는 의미다.

 요즘 대한민국에 온통 마약이 난무하고 있다. 스타 연예인과 재벌 3세는 물론 대기업 임원, 일용직 노동자, 미취업 청년과 주부까지 마약에 손을 댄다. 서울 강남의 클럽 버닝썬에서는 신종 마약인 '물뽕'(GHB)을 이용한 여성 고객 성폭행과 'VIP 룸 마약 파티' 의혹까지 제기됐다. 1626만명이 관람했다는 영화 '극한직업'을 비롯해 최근 마약 소재 오락영화가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영화 '극한직업' 속 경찰관들은 집에도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고 오랜 잠복근무 끝에 마약밀매조직을 소탕한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수사계 형사들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영화'극한직업' 스틸컷]

영화 '극한직업' 속 경찰관들은 집에도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고 오랜 잠복근무 끝에 마약밀매조직을 소탕한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수사계 형사들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영화'극한직업' 스틸컷]

 마약 확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다급해진 정부는 지난 18일 국무조정실 주재로 관세청·경찰청·검찰청 등 12개 관계 기관이 참여하는 긴급 마약류 대책협의회를 열었다. 이제 '마약과의 전쟁'이라도 벌어야 할 판이다. 마약 청정국 지위를 상실한 대한민국의 '마약 생태계'를 들여다봤다.
 마약을 소재로 한 국내 영화들을 보면 낡은 공장이나 농가·염전에서 마약을 제조하는 장면을 보여주지만, 시나리오 작가들의 상상일 뿐이다. 국내에서 대마나 양귀비를 재배하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필로폰 등의 상업적인 제조는 사실상 없다고 한다. 최주원 경찰청 형사과장은 "합법적으로 수입·생산하는 의료용 마약류를 제외하면 필로폰·대마 등 국내 유통 마약은 거의 100% 해외에서 불법으로 밀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지난해 10월 서울경찰청은 관세청·국정원과 공조해 필로폰 112kg을 밀수한 일당을 검거하고 90kg을 압수했다. 1회 0.03g 투약 기준으로 10만원을 받는다고 보면 약 300만명이 동시에 사용 가능한 3000억 원어치다. 역대 최대 규모다. 마약범들은 태국 방콕항에서 나사 제조기에 필로폰을 숨겨 부산항으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려다 체포됐다. 이 사건을 처리한 서울청 광수대 마약 3팀 이영권 팀장(경감)은 "대만인·일본인·한국인이 연계된 다국적 피의자들을 검거하기 위해 수사반원들이 지난 추석 때는 한 달에 4~5일만 집에 들어갔다. 영화 '극한직업'보다 잠복근무가 배 이상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마약 범죄 관련 통계

마약 범죄 관련 통계

 검·경에 따르면 4~5년 전까지 중국산 마약이 국내에 대거 유입됐지만, 중국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자 제조책들이 동남아로 대거 근거지를 옮겼다. 천기홍 대검 마약과장은 "태국·미얀마·라오스 일대 동남아에서 생산된 필로폰은 공장도 가격이 kg당 500만원, 도매는 5000만원, 한국 소매는 5억원에 거래가 이뤄지다 보니 100배 폭리를 노린 마약 거래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는 범죄자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에서 유통하려다 압수된 마약류는 2017년 258.9kg에서 2018년 517.2kg으로 급증했다.  
 최근에는 밀수 유입 경로가 다양해지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대마류는 2017년 98건이 적발됐는데 지난해엔 275건으로 180% 증가했다. 지난해 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대마를 합법화했고, 10월에는 캐나다의 전면 합법화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범진 아주대 약학대학장은 "지금 추세라면 3년 후엔 미국·캐나다가 포함된 북미 지역에서 대마류와 대마 중독자 유입이 더 급증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3팀 소속 멤버들이 '마약 범죄 소탕' 결의를 다지고 있다. 이들은 국내 마약 범죄 사상 최대인 90kg의 필로폰을 압수하는 실적을 거뒀다. 왼쪽 네번째가 이영권 팀장. 장세정 기자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3팀 소속 멤버들이 '마약 범죄 소탕' 결의를 다지고 있다. 이들은 국내 마약 범죄 사상 최대인 90kg의 필로폰을 압수하는 실적을 거뒀다. 왼쪽 네번째가 이영권 팀장. 장세정 기자

 국내외 포털 사이트와 SNS는 마약 거래 네트워크로 악용되고 있다. 마약 전문 채의준 변호사는 "요즘엔 직업·연령 제한 없이 마약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대면 거래는 거의 없고 대부분 온라인을 통해 클릭 몇번으로 거래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기자가 포털 검색 창에 필로폰을 의미하는 은어('시원한 술' '크리스털' '아이스 작대기')를 입력해봤다. 마약 판매범이 올린 "아이스 안전거래 작대기 팝니다. 크리스털 보안 확실합니다. 서울·경기 1시간 내로 신속하게"라는 글이 떴다. 판매범은 텔레그램 아이디(ID)로 가격을 흥정한다. 1g에 30만원을 부른다. 거래가 성사되면 판매범이 '대포통장' 계좌를 알려주고 무통장입금을 유도한다. 최근엔 추적하기 어려운 암호화폐로 주로 결제한다. 계약이 성사된 마약은 '상선'(판매책)이 알바 구하는 사이트에서 '선수'(배달책)를 고용해 특정 장소에 물건을 몰래 갖다놓는 '던지기' 수법으로 소비자와의 최종 거래가 이뤄진다.
 해외 직구를 통해 손쉽게 마약을 배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 경우 세관이나 검·경이 추적해 검거하는 '통제배달'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 최근엔 마약 택배 대행업자도 생겨났다고 한다. 표동삼 인천세관 마약조사과장은 마약의 국내 유입 경로에 대해 ^여행자 휴대 ^특송화물과 일반 수입화물 ^국제우편 등 크게 세 가지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마약 밀수를 단속하는 한국 정부의 그물은 얼마나 촘촘할까. 표동삼 과장은 "밀수 시도를 모두 잡는다고는 말 못해도 외국보다 검거율이 배는 높다"고 강조했다.  
표동삼 인천세관 마약조사과장이 밀수범들의 은닉 수법을 설명하고 있다. 항문이나 음부에 마약을 숨겨오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인천세관은 X-레이는 물론 보디 스캐너까지 갖추고 있다. 장세정 기자

표동삼 인천세관 마약조사과장이 밀수범들의 은닉 수법을 설명하고 있다. 항문이나 음부에 마약을 숨겨오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인천세관은 X-레이는 물론 보디 스캐너까지 갖추고 있다. 장세정 기자

 기자가 찾아간 인천공항 제1 터미널 수하물 벨트에서 마약 탐지견 로드(세 살)가 수화물 주변에서 킁킁거렸다. 로드를 포함해 인천세관 소속 탐지견은 모두 22마리인데 3교대로 활약한다. 1시간 활동하고 2시간 쉬어야 할 정도로 고된 임무다. 세관은 수하물 X-레이 검사는 기본이고, 마약을 만지기만 해도 마약 분자 검출이 가능한 이온 스캔 장비까지 갖추고 있다. 남성이 항문에 마약을 감추거나 여성이 음부에 숨겨 들여오는 경우 보디 스캐너로 잡아낸다. 항문 외과에서 강제로 관장(灌腸)하거나 산부인과 검사도 받게 한다. 그렇지만 하루 10만명이 넘는 인천공항 입국자를 현실적으로 전수조사할 수는 없다고 한다.  
 마약 밀수와 유통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려면 마약을 조직적으로 거래하는 '다크 웹'(Dark Web)을 찾아내 서브를 압수하고 사이트를 폐쇄해야 한다. 기자가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계를 방문했을 때 한 형사가 다크 웹을 집중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다. 직접 확인해보니 다크 웹에는 '대마 사랑' 등 마약 거래 관련 글들이 게시판에 올라와 있었다. 검찰 관계자는 "대규모 마약 판매 조직들이 한국인을 상대로 이용하는 다크 웹을 4개 포착해 그중 하나의 서브 운영자를 검거했고 사이트를 폐쇄했다"면서 "서브를 해외에 두고 한국을 무대로 활동하기에 사이트 폐쇄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다크 웹에 들어가려면 3~4개 나라의 컴퓨터 주소(IP)를 거쳐야 하기에 추적하기 쉽지 않다. 사이트를 폐쇄하려면 전문 인력이 필요한데 현재 서울중앙지검에 전문 인력이 단 2명뿐이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서울 당산동)에서 마약 중독 경험이 있는 박영덕 중독재활지도실장이 ‘교육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수강생들을 상대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장세정 기자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서울 당산동)에서 마약 중독 경험이 있는 박영덕 중독재활지도실장이 ‘교육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수강생들을 상대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장세정 기자

 마약류 사범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때와 2009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1만명을 웃돌았다. 전문가들은 한국경제의 저성장 구조가 계속되면 마약사범도 덩달아 증가할 것으로 우려한다. 현재 국내에는 약 20만~40만명의 마약중독자가 있고 마약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최대 7조원으로 추산된다. 김주은 마약퇴치 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 전문위원은 "필로폰·대마뿐 아니라 최근에는 수면제(졸피뎀)·식욕억제제(디에타민)·프로포폴(우유 주사) 등을 처방받아 합법적으로 복용하다 금단현상이 심해지면서 중독에 빠지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마약 제조와 유통 사범은 더 엄벌하되, 단순 투약자들은 치료와 재활에 집중하는 '투 트랙'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마약으로 열번이나 구속됐던 김모(53)씨는 "출소하면 먹고살 길이 막막해 손쉬운 마약 유통에 다시 손을 댄다. 뇌 질환자인 마약 중독자에게 치료와 일자리가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조현섭 총신대 중독재활상담학과 교수(한국심리학회장)는 "알코올이나 도박 중독과 달리 마약 중독자에 대해서는 국가가 사후 관리를 제대로 못 하고 있다"며 "정부가 중독심리 전문가를 육성하고 중독자에게 교육 및 치료와 취업 재활을 병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획기적인 시스템 개선이 없다면 한국사회의 마약 청정국 지위 회복까지는 길이 멀고도 험난할 것 같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 직원들은 "마약 중독자들은 법을 어겼지만 동시에 치료와 재활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뇌 질환자"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마약 없는 밝은 세계'를 추구한다. 장세정 기자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 직원들은 "마약 중독자들은 법을 어겼지만 동시에 치료와 재활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뇌 질환자"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마약 없는 밝은 세계'를 추구한다. 장세정 기자

 ◇마약류=마약(아편·양귀비·코카인 등), 대마(대마초·대마오일·해쉬쉬 등), 향정신성물질(필로폰·LSD·엑스터시 등 불법 마약류가 대부분이지만 의약품으로 사용 가능한 약물도 여기에 포함)로 크게 분류된다. 중국에서 주로 유입되는 물뽕(GHB), 태국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야바 등 신종 마약도 늘고 있다.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박규민 인턴기자가 이 기사의 디지털 영상 편집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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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