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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미안해, 괜찮다는 말 100% 믿어서 정말 미안해

기자
김성희 사진 김성희
[더,오래] 김성희의 천일서화(33)
고운 말, 멋진 표현 하나 없어도 두고두고 읽고 싶은 글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맑은 뜻, 깊은 도가 없어도 고개를 주억거리게 하는 글도 드물지만 있긴 하다. 그런데 이런 미덕을 갖춘 데다, 코끝이 시큰하다가도 흐뭇한 미소를 짓다 못해 대굴대굴 구르며 웃을 정도인, 요즘 말로 ‘웃픈’ 글을 만나는 건 정말 복이라 할 수 있다. 전북 정읍 출신의 방송작가가 자기 엄마에 관해 쓴 ‘에세이’ 『친정엄마』(고혜정 지음, 나남)이 바로 그런 책이다.
 
전북 정읍 출신의 방송작가 고혜정(좌)이 자기 엄마에 관해 쓴 에세이 『친정엄마』(우). [중앙포토]

전북 정읍 출신의 방송작가 고혜정(좌)이 자기 엄마에 관해 쓴 에세이 『친정엄마』(우). [중앙포토]

 
처음 나온 지 15년이나 된 책을 떠올린 계기는 며칠 전 동네 산책길에서 본 연극 포스터였다. 거기엔 ‘친정엄마’ 10주년 기념 공연이라 적혀 있었다. 독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연극으로까지 만들어졌으니 소문이 안 나서 그렇지 많이 읽혔으리라. 그래도 새삼 이 책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 손찌검을 당한 뒤 소리 죽여 우는 엄마에게 지은이가 묻는다. 왜 맨날 맞고 사냐고? 서울로 도망가서 식모살이라도 하라고.
“너 땜시…너 땜시 이러고 산다. 내가 없으믄 니가 젤로 고생이여. 밥 허고 빨래 허고 동생들 치다꺼리 허고…핵교도 지대로 다닐랑가도 모르고…나 고생 안 헐라고 내 새끼 똥구덩이에 밀어 넣것냐? 나 없어지믄 니 인생 불 보듯 뻔한디 우리 새끼 인생 조져버리는 일을 내가 왜 혀. 나 하나 참으믄 될 것을” ‘희생’이 미덕이었던 한국 엄마다운, 가슴 뭉클한 답이다.
 
딸 덕에 드라마에 상추 씻는 엑스트라로 출연하라는 제의를 받자 “출연료 십만 원 벌라믄 얼마나 많은 상추를 씻어야 것소. 나 허리 디스크 있어 힘든 일은 못 허요”라고 거절해 PD를 뒤로 넘어가게 만드는 대목에선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다. 그런가 하면 엄마 이름이 촌스러워 방송국 사람들에게 창피하다는 딸의 한 마디에, 서류에 침 발라서 싹싹 지우기 쉽게 이름에서 받침 하나만 뺐다며 서울 올라가 서류 고치라 채근하는 모습에선 미소가 지어진다.
 
사위가 사업실패로 힘들어하자 성당에 다니던 친정엄마는 답답한 마음에 점을 보고 와서는 바로 성당에 가 고해성사를 한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신부가 타박을 하는데 엄마는 “내가 (안 가기로) 약속은 했는데 자식 일이 걸리다 본께…아따, 성모님도 예수님 아들 두셨응께 내 맘 알 것이요”라고 받아넘긴다.
 
사실 '친정엄마'라는 말이 갖는 애틋함, 미안함, 고마움 또는 원망 등 복잡다단한 감정은 남자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사진은 연극 '친정엄마와 2박 3일' 중 한 장면. [중앙포토]

사실 '친정엄마'라는 말이 갖는 애틋함, 미안함, 고마움 또는 원망 등 복잡다단한 감정은 남자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사진은 연극 '친정엄마와 2박 3일' 중 한 장면. [중앙포토]

 
그래도 신부의 타박이 이어지자 “지옥 불에 떨어지는 것 무섭다고 자식 일 소홀히 할 부모는 세상천지에 없을 것이요. 아하, 신부님은 자식 없제. 근게 에미 맘 모르겄고만. 자식 있으믄 그런 소리 못하지 암”이라고 당당하게 받아친다. 예비시댁 부모들과의 상견례 자리에서 자기 딸을 며느릿감으로 못마땅해 하자 당차면서도 조리 있게 대거리를 하는 모습을 보면 후련하면서도 재산이며 교양이란 것 역시 자식 사랑 앞에는 별로 힘을 못 쓴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사실 ‘친정엄마’라는 말이 갖는 애틋함, 미안함, 고마움 또는 원망 등 복잡다단한 감정은, 남자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엄마! 힘들 때 왜 날 낳았느냐고 원망해서 미안해…늘 나 힘든 것만 말해서 미안해…괜찮다는 엄마 말 100% 믿어서 미안해…엄마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건 엄마가 아니어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이런 딸의 마음 이해가 간다.
 
“너는 모를 것이다. 엄마 맘을. 너도 나중에 새끼 나서 키워봐. 그때 엄마 생각 날 것인게. …나, 너 서울로 올라간 후로는 한 번도 니가 좋아허는 반찬은 안 히먹었어야. 내 새끼 좋아허는 거 차마, 내 새끼 빼놓고 못 먹겄데. 나, 너 서울 올라간 후로는 내 손으로 한 번도 과일 안 사먹었어야, 너랑 같이 먹을라고. 새끼는 다 그런 것이다.” 이런 엄마 맘 실감한다.
 
주부라면, 누구나 이런 이야기 한 자락씩은 할 수 있을 터다. 또 세상의 아들, 아버지는 이런 이야기가 덜 와 닿을 수도 있다. 그래도 이런 책이 좀 더 널리, 오래 읽혔으면 싶다. 세상이 그만큼 아름다워질 것이라 믿어서다. 사심 가득하다 해도, 오판이라 해도 말이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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