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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빅딜 수용 없이 더 이상의 북·미 협상 불가능하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 교수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 교수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한·미 정상회담과 김정은 위원장의 시정 연설을 통해 미국과 북한의 입장은 전혀 바뀌지 않았음이 명백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일괄타결식 빅딜을 수용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김정은은 미국의 셈법이 바뀌지 않는 한 협상에 매달리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선포해버렸다. 하노이 회담 결렬 상황 그대로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겠다며 남북 정상회담을 공식 제의했다. 보이는 그대로 보는 게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다. 산 넘고 물 건너 만난 트럼프 대통령과는 단 2분 단독 회담을 했다. 트럼프는 이미 문 대통령 면전에서 기자회견 형식으로 하노이 이후 입장 변화가 없음을 밝혔다. 문 대통령의 중재안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긋 이너프 딜(충분히 만족한 거래)’이 아니었다.
 
김정은도 하노이에서의 미국 요구를 ‘선 무장 해제, 후 체제 전복’으로 규정하고 수용할 수 없음을 명백히 밝혔다. 그것도 신년사처럼 북한 주민이 암송해야 하는 시정 연설이라는 방식을 통해 불퇴전의 의지를 선언했다.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을 ‘오지랖 넓은’ 짓으로 폄훼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트럼프와 김정은 모두 상대의 굴복만을 요구하고 있는 강 대 강 대치 국면인데도 문 대통령은 희망과 기대만을 언급하고 있다. 평행선을 달리는 북·미 입장을 애써 모른 체하는 게 아니라면 심각한 난청이거나 난독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외교·안보는 희망적 사고를 포기하지 않되 희망적 사고에 매몰되면 일을 그르친다. 트럼프의 빅딜 고수는 무시하고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발언만 확대해서 주관적 기대에 빠지면 안 된다. 김정은의 빅딜 거부라는 입장 표명은 보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보겠다는 말에만 잔뜩 기대를 품으면 안 된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을 대통령 혼자서만 모른 체한다면 심각한 일이다.
 
북핵 협상은 회담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남북 정상회담이든 북·미 정상회담이든 북한의 비핵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워싱턴과 평양의 입장차가 분명한데도 무조건 만나보자는 식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하노이에서 김정은이 내놓은 영변 카드는 미국으로서는 도저히 수용하기 힘든 것이다. 제네바 합의에서도, 9·19 공동성명에서도 이미 사용한 카드였다. 같은 말을 두 번 사지 않는다는 미국으로선 영변 카드를 세 번째 또 살 수는 없다. 김정은이 밝힌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믿을 수 있도록 북한은 비핵화의 ‘대상과 범위’를 명백하고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그게 일괄타결식 빅딜이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단어만 반복하지 말고 무엇을, 어떻게, 언제까지 폐기할 건지 분명히 밝히라는 요구다.
 
미래 핵을 넘어 현재 핵과 과거 핵까지, 핵시설과 핵물질을 넘어 핵폭탄과 탄도미사일과 생화학무기까지, 동결을 넘어 신고와 검증과 해체와 반출까지 분명하게 약속을 해달라는 것이 빅딜이다. 북핵 협상의 흑역사를 반추해보면 김정은에게 비핵화의 대상과 범위를 문서나 구두로 약속해 달라는 미국의 요구는 합당하다. 빅딜은 무장 해제가 아니다. 비핵화를 구체적으로 ‘약속’하는 것일 뿐이다. 이후 ‘실천’은 북이 원하는 스몰 딜 합의로 이행하면 된다.
 
하노이 어게인 국면에서 이제 문 대통령은 중재가 아니라 선택을 해야 할 때다. 남북 정상회담도 좋고 특사 파견도 좋다. 그러나 남북 회담은 이제 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분명한 입장을 통보하고 관철하는 자리여야 한다. 빅딜 수용이 아니라면 더 이상의 북·미 협상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김정은에게 단호하게 밝히는 회담이어야 한다. 그런 목적의 회담만이 유용하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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