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아내를 성폭행한 남편 친구···죽음으로 응징한 논산부부

판결 다시 보기 
남편 친구로부터 성폭행 당한 여성이 1·2심에서 피해를 인정받지 못하자 부부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5번의 재판 끝에 대법원은 성폭행범의 혐의를 유죄로 확정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

남편 친구로부터 성폭행 당한 여성이 1·2심에서 피해를 인정받지 못하자 부부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5번의 재판 끝에 대법원은 성폭행범의 혐의를 유죄로 확정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

“친구의 아내인 나를 탐하려 모사를 꾸몄다. 죽어서라도 복수하겠다.”
 
지난해 3월. 전북 무주 캠핑장에서 30대 부부가 나란히 숨을 거뒀습니다. 부부가 남긴 13장의 유서에는 남편의 30년지기 친구 박모(38)씨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가득했습니다. 박씨는 친구의 아내인 이모(당시 33세)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절망한 부부는 2심 재판이 열린 지 3일만에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부부가 죽음으로 호소한 성폭행 피해는 왜 인정받지 못한 걸까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2017년 4월 10일, 이씨 남편은 해외로 출장을 갔습니다. 박씨는 이씨에게 긴히 할 말이 있으니 만나자고 하더니 “남편에게 다른 자식이 있다”고 말합니다. 어쩔 줄 몰라하는 이씨에게 정신 차리라며 뺨과 머리를 때리기도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1·2심에서도 폭행으로 인정한 부분입니다. 이후부터 두 사람의 주장이 갈립니다. 이씨는 닷새간 박씨의 협박이 이어졌다고 했습니다. 만나달라는 데 응하지 않으면 남편과 딸들에게 위해를 가할 것처럼 겁을 줬다는 겁니다. 사건이 일어난 15일 새벽에도 박씨가 위협을 가하며 자신을 모텔까지 데려갔고, 거기서 성폭행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반면 박씨는 이씨와 닷새 사이에 연인관계로 발전했다고 주장했습니다. 1·2심은 닷새간의 이씨 행적을 이유로 박씨의 손을 들어줍니다.
 
판결문에 나타난 이씨의 행동은 언뜻 보면 이해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협박 사실을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고, 모텔에 들어가기 전 남편에게 ‘졸려서 먼저 자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모텔 앞 CCTV 영상에 대해 재판부는 “이씨의 모습이 강간 피해자라고 보기에 지나치게 자연스럽다”고 봤습니다.
 
‘상간녀의 거짓 무고’로 끝날 뻔했던 사건의 키를 바꾼 건 대법원입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원심이 박씨를 무죄로 판단한 건 잘못”이라며 사건을 2심 법정으로 되돌려보냈습니다. 그러면서 이씨가 남편에게 닷새간의 협박을 말 못한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습니다.
 
박씨는 논산 지역의 폭력조직 소속이었습니다. 대법원은 이씨가 해외 있는 남편에게 도움을 청한들 일이 잘 해결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걸 고려했습니다. 모텔 앞 CCTV 영상에 대해선 “두 사람이 앞 뒤로 떨어져 걸은 것일 뿐 다정한 모습도 아니었다”고 밝혔습니다. 남편이 귀국하자마자 장례식장에 가 이씨가 문제를 털어놓을 시간이 없었다는 것도 짚었습니다.
 
결국 대법원은 박씨에 대해 유죄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냈습니다. 파기환송심은 강간 피해를 인정해 박씨에게 징역 4년 6월을 선고했고, 지난달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습니다. 2년간 5번의 재판이 이뤄진 끝에 이씨 부부의 호소가 받아들여진 겁니다.
 
대법원은 원심을 비롯해 판사들이 종종 저지르는 중대한 오류를 지적했습니다. “성폭행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알리는 과정에서 오히려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대처 양상이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으며,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진술을 가볍게 배척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이를 가리켜 ‘성인지 감수성’이라 부릅니다.
 
이씨는 유서에 ‘지난 1년간 밤마다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사람들 앞에서 웃고 있어도 살고 있어도, 웃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었다’고 적었습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중앙일보 온라인판 ‘판다(판결 다시 보기)’ 기사의 경어체를 그대로 싣습니다.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다른 기자들의 연재 기사 보기

뉴스레터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