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여성의 성적 자율성을 위한 싸움은 지극히 과학적인 현상"

수컷 어깨걸이풍조 한 마리가 자신의 과시용 통나무를 방문한 암컷에서 가슴깃털을 부챗살처럼 펼쳐 특유의 스마일 이모티콘을 보여주며 구애 행동을 하고 있다. [사진 동아시아]

수컷 어깨걸이풍조 한 마리가 자신의 과시용 통나무를 방문한 암컷에서 가슴깃털을 부챗살처럼 펼쳐 특유의 스마일 이모티콘을 보여주며 구애 행동을 하고 있다. [사진 동아시아]

최근 성별 갈등이 뜨겁다. 여성 혐오는 물론, 페미니즘과 관련한 이슈는 연일 전쟁터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최근 나온 리처드 프럼의『아름다움의 진화』(동아시아)는 페미니즘, 특히 여성의 성적 자율성에 대한 과학적으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성적 자율성 위한 싸움은 과학적 현상" 
 
예일대학교 조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는 30년 이상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새들의 행동과 깃털, 모양, 아름다움을 관찰하고 연구해왔다. 그는 새들의 사례들을 통해 "암컷의 양성 간의 평등과 성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싸움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범 동물적이고 과학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책 표지

책 표지

 
그가 제시하는 사례 중 하나가 오리 종이다. 오리 종의 성비는 수컷 쪽으로 크게 치우쳐 있어 암컷이 선택할 신랑감이 넘쳐난다. 언뜻 생각하면 암컷이 매우 행복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선택받지 못한 수컷들이 암컷을 겁탈하는 '강제교미'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리 가운데는 몸길이가 평균 30㎝밖에 되지 않지만, 수컷의 페니스 길이가 암컷의 전체 길이를 훌쩍 뛰어넘어 최장 42㎝에 달하는 것도 있다.
 
강제교미가 이뤄질 때 암컷 오리는 목숨을 걸고 저항한다. 이 과정에서 암컷 오리는 심각한 상처를 입거나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 죽음을 무릅쓰면서도 암컷이 강제교미에 저항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성적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성폭력은 진화론적 이해관계에도 어긋나 
 
암컷이 성적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거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 "자신이 보기에 성적으로 매력적이지 않은 유전자를 가진 자손을 낳을 간접적ㆍ유전적 비용을 회피하기 위해"라고 설명한다. 강제교미로 수정된 암컷은 자신의 미적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형질을 가진 2세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경우 2세 역시 다른 암컷들에게 선택받을 가능성이 떨어지면서 개체 수가 점점 줄게 된다. 
 
이와 달리 자신이 원하는 수컷과 짝짓기한 암컷은 자신이 원하고 모든 암컷이 동경하는 과시 형질을 물려받은 2세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우월한 2세 역시 다른 암컷들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세대를 거듭할수록 개체 수가 점점 늘게 된다. 이처럼 성폭력은 진화론적인 이해관계에 크게 어긋난다. 
 
결국 암컷 오리는 강제교미에 저항하기 위해 특이한 구조로 생식기를 진화시킨다. 실제로 암컷 오리의 질 구조를 관찰한 결과, 생식관에 일련의 구불구불한 통로들이 발견됐는데 이 통로들은 시계방향으로 꼬여 있다. 이는 반시계방향으로 꼬인 수컷 오리의 페니스가 강제로 진입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예일대학교 조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는 30년 이상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새들의 행동과 깃털, 모양, 아름다움을 관찰하고 연구해왔다. [사진 동아시아]

예일대학교 조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는 30년 이상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새들의 행동과 깃털, 모양, 아름다움을 관찰하고 연구해왔다. [사진 동아시아]

 
저자는 "암컷 오리가 성폭력의 위협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진화의 지렛대를 통해 자신의 성적 자율성을 보호하려 애써왔단 사실을 알게 된다"고 설명한다. 강제 교미를 자행하려는 수컷과 이를 어떻게든 막아내려는 암컷의 치열한 저항의 결과가 진화로 나타난 것이다.
 
암컷의 성적 자율성을 지키는 쪽으로 진화 
 
그런데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사실 중 하나는 오리 외의 대부분 조류는 페니스가 아예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암컷들이 페니스 없는 수컷을 명백히 선호했기 때문"이라고 추론한다. "페니스의 주요 기능이 오리처럼 강제교미를 통해 암컷의 배우자 선택을 파괴하는 것이라면, 암컷들은 성적 자율성에 대한 위협을 감소하기 위해 삽입을 거부하는 짝짓기를 선호하는 쪽으로 진화가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되면 수컷은 더는 강압적인 방식으로 교미를 성공시킬 수 없다. 암컷의 성적 자율성이 확보된 개체에서 수컷들은 순수히 '아름다움'만을 두고 경쟁하게 된다. 대표적 예가 바우어새다.
 
수컷 바우어새는 구애를 위해 아주 아름다운 오두막을 짓는다. '바우어(bower·나무그늘 또는 정자)'라 불리는 다양하고 독특한 구조물을 만들어 갖가지 재료로 장식해놓고 암컷에게 구애한다. 바우어의 앞마당과 뒷마당을 장식하는 데 사용하는 수집물도 다양하다. 꽃과 이파리, 깃털을 사용하고 이끼나 밀짚, 자갈로 바닥을 깐다. 이렇게도 열심히 오두막을 짓는 유일한 목적은 암컷의 환심을 얻어 짝짓기하기 위해서다. 
수컷 새틴바우어새는 진입로형 바우어를 지으며, 주변에서 발견한 감청색 물건으로 앞마당을 장식한다. [사진 동아시아]

수컷 새틴바우어새는 진입로형 바우어를 지으며, 주변에서 발견한 감청색 물건으로 앞마당을 장식한다. [사진 동아시아]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아무리 아름답게 만들어진 오두막이라고 해도, 암컷은 '비상 탈출구'가 마련돼 있지 않으면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강압적으로 일어나는 데이트 폭력을 회피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인류는 가부장제도가 성적 자율성 억압
 
이런 과정으로 일어나는 성 선택은 조류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사람에게도 성 선택의 흔적이 있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유인원인 보노보와 침팬지는 암수의 몸집 차이가 25~30%나 된다. 하지만 인간은 남자가 여자보다 평균 16%가량 크다. 다른 영장류에 비해 송곳니도 유난히 작다. 이는 인간이 물리적인 강압과 폭력의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는 증거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자신의 성적 자율성을 존중받지 못한다고 외치는 여자들이 넘쳐난다. 그 이유는 뭘까. 저자는 "여성의 배우자 선택이 성적 자율성을 크게 발달시킨 것은 맞지만, 뒤이어 진화한 인간의 문화가 성별 갈등을 야기하는 새로운 문화적 메커니즘을 등장시켰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어 "현대 여성들이 오랜 세월 진화를 통해 얻은 성적 자율성을 완전히 향유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주범은 '가부장제도'의 진화"라고 말한다. 남성이 사회·경제적 통제권을 장악하게 되면서, 문화 이데올로기를 통해 여성의 성적 자율성을 억압하고 남성의 사회권력을 공고히 할 기회를 새롭게 창출했다는 것이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