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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치즈, 산양 두 마리로 시작···거부감에 "우유 두부"

"산양유 판매가 부진하자 남은 거로 치즈를 만들어 판매했다. 벨기에에서 챙겨온 응고제와 산양유를 섞은 뒤 굳혀서 만든 게 최초다. 치즈의 독특한 향에 거부감을 갖자 '우유로 만든 두부'라고 설명하기도 했다."(임실 치즈&식품연구소 연혁 중에서)
 
한국 치즈 역사의 '산 증인'인 지정환 신부가 지난 13일 타계했다. 지 신부가 영면하기 하루 전인 12일은 임실 치즈 농협 50주년과 제2공장의 준공식이 열린 날이기도 했다. 1964년 성당에 부임한 지정환 신부가 산양 두 마리로 시작해 마중물이 된 국내 치즈 시장은 성장을 거듭했다.  

[주말PICK]반세기 한국 치즈 성장기
여전히 국내 유통 치즈 97%는 수입

임실치즈의 산 증인인 지정환 신부(왼쪽) [중앙포토]

임실치즈의 산 증인인 지정환 신부(왼쪽) [중앙포토]

처음엔 사람들이 좀처럼 먹지 않자 지정환 신부가 "우유로 만든 두부"라며 애써 권하던 치즈는 반세기 역사를 거치며 국민 먹거리가 됐다. 
 
산양 두 마리로 시작한 것을 기념해 만들어진 임실 산양유 요구르트 캐릭터[중앙포토]

산양 두 마리로 시작한 것을 기념해 만들어진 임실 산양유 요구르트 캐릭터[중앙포토]

농식품부의 '2018년 발효유·치즈·버터 세분 시장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국민 1인당 치즈 소비량은 연평균 12%씩 늘어났다. 2017년 기준 한국인 1인당 연간 치즈 소비량은 2.5㎏으로 2013년(1.7㎏)에 비해 크게 늘었다. 치즈 1㎏을 만드는 데 11.1㎏의 원유가 필요한 점을 고려하면 1인당 우유를 약 28㎏ 마신 것과 같다.  
[지정환 신부, 임실 치즈 클러스터 이정소 사무국장 제공]

[지정환 신부, 임실 치즈 클러스터 이정소 사무국장 제공]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영아·청소년은 물론, 맥주·와인 등의 술안주·간식으로 성인들의 치즈 소비도 늘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보고서에서 "국내 치즈 제조사들이 경쟁적으로 구워 먹는 치즈, 안주·간식용 치즈 등 다양한 치즈를 내놨다"고 설명했다.  
낙농진흥회 제공

낙농진흥회 제공

20일 시장조사기관인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치즈 시장 매출액은 2004년 1589억원에서 2018년 3284억원으로 늘었다. 이 기간 성장률(107%)은 같은 기간 세계 치즈 시장 성장률(79%)을 웃돌았다. 
 
국산 치즈 제조업체는 11곳이고 동원·임실·서울·매일 4사의 생산 비중이 89%에 달한다. 지정환 신부가 세운 임실 치즈의 점유율은 26.5%다. 임실 치즈는 연 매출 270억원을 벌어들이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2005년부터 조성된 임실 치즈&식품연구소는 2009년 본격적으로 문을 열어 올해 10년째를 맞이했다. 유로모니터 문경선 식품&영양 부문 수석연구원은 "임실 치즈의 경우 프리미엄 치즈로 인식돼 임실 치즈를 쓰는 피자집 등 외식산업 및 사업자 간 거래 (B2B)에서 주로 거래된다"고 말했다.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국내 소비뿐 아니라 우리가 가공한 치즈를 중국 등에 수출하는 경우도 늘었다. 중국으로 수출되는 한국의 치즈는 2013년 27만3000달러에서 2017년 119만 달러로 4.4배 증가했다. 서구인 입맛에 맞는 독일·호주산 치즈와 달리 아시아인에게 잘 맞는 한국산 유제품이 중국 등에서 인기라는 분석이다.  
 
농식품부 축산경영과 임지헌 사무관은 "외국은 장기간 숙성된 치즈를 선호하는데 우리는 숙성을 덜 시킨 걸 선호한다"고 말했다. 편의점 등에서 판매되는 스트링 치즈 등 짜지 않은 치즈가 대표적이다. 매운 한국 음식의 맛을 중화하는 보조재료로 치즈가 쓰인 것도 포인트다. 떡볶이·불닭·김밥 등이 치즈와 결합하면서 수요를 높였다는 것이다. 
 
치즈의 존재감은 유제품 전체 시장에서 드러난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원유(原乳·치즈의 원료) 환산기준으로 본 연간 국내 유제품(치즈·우유·버터·아이스크림·분유 등) 소비량은 409만2000t(2017년)이며 이 중에서 142만7000t은 치즈로 소비된다. 
 
그런데 이렇게 국내에서 우리가 접하는 치즈의 97%는 수입산이다. 한국에 치즈를 주로 수출하는 국가는 미국(39%)·뉴질랜드(14.9%)·독일(11.6%) 등이다. 이들 낙농 강국들은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뒤 낮아진 관세를 등에 업고 우리 치즈 시장을 파고들었다.    
 
문제는 치즈의 원료가 되는 원윳값이 국산의 경우 외국산보다 많게는 3배 비싸다는 점이다. 따라서 가공업체 입장에서는 수입 원유를 쓰려는 경향이 강하다. 수입산에 밀리면서 국산 원유 자급률은 50%대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박완주 의원(더불어민주당)실은 2008년 71.8%에 달하던 원유자급률이 2017년 50.3%로 떨어지며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지적했다. 
[중앙포토]

[중앙포토]

전문가들은 국내산의 안정적인 생산과 경쟁력 확보가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지정환 신부가 꿈꿨던 '치즈 자급'과도 맥을 같이 한다. 
 
낙농업은 농축산물 가운데 생산주기가 가장 긴 품목 중 하나다. 생산 과잉·부족 등으로 원유 수급 안정화를 하는데 2~3년까지 걸린다. 이 때문에 안정적인 생산이 관건이다. 생산을 안정화해야 가격도 적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우리 낙농업에서 ‘규모의 경제’가 생기지 않은 것이 문제"라며 "전체 젖소의 숫자는 유지하되, 생산자들 간 통합을 해서 효율성을 높이고 원유 가격이 내려가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순 낙농진흥회 상무는 "생산비 절감, 생산성 향상을 위해 시설 현대화·자동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정부 재정의 효율적 투입을 통해 국산 치즈의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올해 240억원을 유제품 시설·운영자금으로 우선 지원키로 했다"고 밝혔다.  
 
또 박 상무는 "조사료(粗飼料, 목초·건초 등으로 된 사료) 생산 활성화로 국내 사료 자급기반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우리 낙농업 생산비의 50~60%는 사료비다. 그런데 국내 사료 생산기반이 선진국보다 열악해 해외 사료에 의존하고 있다. 그는 "국산 치즈는 유통기간이 짧은 신선 치즈 위주로 시장을 만들어가야 수입 제품과 차별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오카야마 저지랜드 페이스북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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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성장 중인 치즈 산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임지헌 사무관은 "현재는 네덜란드산 홀스타인종(얼룩소) 위주로 생산 중인데 최근에는 1마리당 생산량은 적지만 단백질 함량이 높고 고품질 치즈 생산이 가능한 저지종 육성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소개했다. 일본 오카야마(岡山) 현의 경우, 저지 품종의 소에 특화된 '저지 밀크랜드'가 관광지 및 유제품 소비 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세종=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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