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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우리는 충분히 울지 않았다

이에스더 복지행정팀 기자

이에스더 복지행정팀 기자

2004년 12월 30일 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나이트클럽 ‘크로마뇽 공화국’에서 록밴드 카예헤로스의 콘서트가 열렸다. 정원(1500명)의 두배인 3000여명이 모여 발 디딜 틈이 없었다. 10~20대가 대부분이었다. 열기가 무르익어가던 도중 누군가 폭죽을 쏘아올렸다. 불꽃은 천장에 옮겨 붙었고 공연장은 삽시간에 불바다가 됐다. 플라스틱 등 가연성 소재로 꾸며진 공연장은 유독가스로 가득 찼다. 사람들이 출입구로 몰려들어 아비규환이 됐다. 6개의 문 중 4개가 바깥에서 잠겨있었다. 비상등이 없어 내부는 암흑 천지가 됐고, 소화기 조차 없었다. 구조 작업은 지체됐다. 194명이 숨지고 700여명이 다쳤다.
 
참사 이후 조사 과정에서 추악한 진실이 드러났다. 업주는 돈벌이에 급급해 소방법을 무시했고 시는 눈을 감았다. 비판이 쏟아졌다. 당시 시장인 아니발 이바라는 구조 작업을 지체시킨 혐의 등으로 탄핵됐다.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을 마련했고 전국을 돌며 유품 전시회를 했다. 그들은 “이런 참사가 또 생기지 않도록 잊지 말아달라”고 외쳤다. 이바라 시장은 “야당이 유가족을 정치 공세에 이용한다”고 주장했다. “몇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슬퍼해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커졌다. 관광객 감소를 우려하는 이들도 나왔다.
 
이런 사람들을 향해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이 도시는 더 울어야 한다. 우리는 충분히 울지 않았다”라고 일갈했다. 사고 직후 현장에 달려가 유가족을 감싸 안았던 그는 2009년 참사 5주년 미사 때도 “돈 벌고 어떻게 놀지 궁리할 뿐, 더는 여기에 없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충분히 울지 않았다”라고 강조했다.
 
추기경은 4년 뒤 프란치스코 교황이 됐다. 2014년 한국을 찾은 그는, 크로마뇽 참사와 닮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만나 손을 잡고 위로했다. 유가족들이 건넨 노란 리본을 가슴에 내내 달고 다녔다. 한국을 떠날 때 교황은 “누군가 내게 ‘중립을 지켜야 하니 그것을 떼는게 어떠냐’고 묻기에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답해줬다”고 밝혔다.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쳐 먹고, 찜 쪄 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 먹고 진짜 징하게 해쳐 먹는다”거나 “세월호 그만 좀 우려먹으라 징글징글하다”는 비인간적인 막말을 쏟아내는 이들에게 다시한번 교황의 일갈을 전하고 싶다. 우리는 충분히 울지 않았다.  
 
이에스더 복지행정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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