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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균은 벌써 알고 있었다, 빈 하늘 가로등의 슬픔을

기자
전새벽 사진 전새벽
[더,오래] 전새벽의 시집읽기(32)
1914년 하면 학창시절 외웠던 몇 가지 역사적 사실들이 떠오를 것이다. 사라예보 사건이라는 게 있었고, 곧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우리나라는 5년째 일제 치하에 있었고, 독립운동가이자 국어학자인 주시경 선생이 타계했다.
 
이처럼 잘 알려진 사실 말고도,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다. 경원선 철도가 완공됐고, 조선은행이 100원권 지폐를 발행했다. 또 여행 비둘기라는 한가한 이름을 가진 비둘기목 비둘깃과의 동물 하나가 안타깝게도 멸종했다. 그리고 하나 더. 1914년에는 김광균이란 인물이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고흐(Vincent Van Gogh)의 '수차가 있는 가교(Water Mill at Gennep)'. [사진 위키미디아커먼(퍼블릭 도메인)]

고흐(Vincent Van Gogh)의 '수차가 있는 가교(Water Mill at Gennep)'. [사진 위키미디아커먼(퍼블릭 도메인)]

 
김광균은 1914년 개성에서 태어나 송도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고무공장에서 근무하며 어린 시절부터 시를 썼다. 스물둘에는 본격적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했는데, 당시 문우였던 김기림을 통해 서양회화를 접하며 큰 충격에 빠졌다. 특히 고흐의 '수차가 있는 가교'를 보고 큰 감동을 한 뒤부터 시집보다 화집을 더 가까이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그는 대상을 이미지화하는 일에 매우 능한데, 김기림은 그를 가리켜 “소리조차 모양으로 번역하는 기이한 재주를 지녔다”고 평하기도 했다. 김광균은 정지용, 김기림과 함께 1930년대 모더니즘 시운동의 주요인물로 꼽히는 한편, 도시적 감수성을 지닌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들이 말하는 도시적 감수성의 시각적 표현이 대관절 무엇인지, 다음 시를 통해 살펴보자.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냐
 
긴-여름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
늘어선 고층 창백한 묘석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클어진 채
사념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고 왔기에
길-게 느린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기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김광균, '와사등' 전문
 
와사등은 가스등을 일본식으로 말한 것이다. 1800년대 후반, 당시 처음 설치되었던 석유 가로등이 가스등이 되었다가 이제는 LED 조명에 센서가 달린 스마트가로등으로 바뀌고 있다. [사진 pxhere]

와사등은 가스등을 일본식으로 말한 것이다. 1800년대 후반, 당시 처음 설치되었던 석유 가로등이 가스등이 되었다가 이제는 LED 조명에 센서가 달린 스마트가로등으로 바뀌고 있다. [사진 pxhere]

 
와사등은 가스등을 일본식으로 말한 것이다. 원문에 실려 있던 한자들은 국어로 대체했다. 1800년대 후반, 종로 거리에 처음 설치되는 가로등을 두고 토론회가 열렸었다고 한다. 찬성파의 주장 중 하나는 가로등을 설치하면 도적들이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에 관한 반발 중 하나, “가로등 무서워서 관리들이 도적질을 멈추겠냐”는 것이다. 도적질의 주체가 ‘관리’라니, 예나 지금이나 사는 모습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아 씁쓸하다.
 
아무튼 당시 처음 설치되었던 석유 가로등이 가스등(위의 와사등)이 되었다가 수은이나 나트륨등으로도 바뀌었다가, 이제는 LED 조명에 센서가 달린 스마트가로등으로 바뀌고 있다. 스마트가로등은 불빛 아래서 스마트폰을 흔들면 경찰에 신고가 된다거나 하는, 치안 강화 기능을 하는 새로운 인프라다. 이런 가로등이 더 많아지면 우리는 더 안전해질 수 있을 거다.
 
살아남은 우리는 더 안전해질 수 있지만, 일찌감치 그 기회를 박탈당한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이 봄볕 환한 4월이 온통 어둠뿐이다. 지난 5년간 그랬고, 앞으로 50년도 더 그럴 것이다.
 
도시에는 쓸쓸한 면이 있다는 걸 일찌감치 알았던 김광균, 그였다면 지금 시절을 어떻게 묘사했을까? 그가 '와사등' 대신 ‘스마트가로등’이란 시를 쓴다고 해도 혹시, 시어들은 거의 그대로 남지 않을까? 늘어선 고층빌딩들은 창백한 묘석 같고, 군중의 행렬은 공허해 보이며, 빈 하늘에 떠 있는 가로등이 슬퍼 보이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니까. 4월에는 괜한 슬픔 일어 그런 생각을 해본다. 그런 생각 하면서, 바다가 있는 쪽을 잠시 응시하기도 한다.
 
전새벽 회사원·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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