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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폭발점에 다가서는 갈등 이슈들…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자 배상 문제는 손대지 말고 시간에 맡겨야
대북 공조, 안보 협력, 경제 협력, 문화 교류 등 기능적 관계 강화하자

한·일 관계 특별기획 | 김영희 대기자의 ‘한반도 워치’
“양국 지도자들 사태 악화시키는 언행 자제할 때”

 
사진 : gettyimagesbank

사진 : gettyimagesbank

동해안에서 손을 뻗으면 일본 서해안의 야마구치현이나 시마네현, 돗토리현에 닿을 것만 같은 게 한국과 일본의 지리적 관계다. 일의대수(一衣帶手, 냇물 하나를 사이에 둔 가까운 이웃)의 이웃이다. 국민국가 개념은 고사하고 국경 개념조차 없던 삼국시대의 백제 수도 부여에서는 백제인들이 구드레 나루에서 목선을 타고 세토 내해를 거쳐 지금의 오사카 외항 상업도시 사카이에 상륙했다. 거기서 그들은 물물교환의 무역도 하고 백제인들이 세운 야마토정부의 도읍 아스카까지 진출해 일가친척들과 오랜만의 상봉을 하기도 했다. 일본인들의 백제 나들이도 그렇게 단순했다. 5~7세기의 야마토 일본인들에게는 그들이 구다라라고 부른 백제는 모국이었고 백제인이 야마토로 건너간 것도 이 시절이었다. 국왕의 왕비는 거의 백제의 여인들이었다.
 
옛날 금송아지 기르고 살던 시절 그리워해 봐야 소용없다. 17~18세기의 세월이 흐른 지금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총칼만 안 들었을 뿐 분위기는 교전국 간의 그것 같다. [산케이신문]처럼 보수우익을 대변하는 월간잡지 [분게이슌주(文藝春秋)]는 4월호를 한·일 단교의 시나리오를 특집으로 꾸몄다.
 
한·일 관계가 결정적으로 악화되는 첫 번째 전기를 맞은 것은 2012년 8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느닷없이 독도에 상륙하고, 일본 왕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지위가 과거와 같지 못하다는 민감한 언행을 한 것이다. 한국 대통령의 그런 언행은 치명적 외교 실책이었다. 독도에 대한 한국의 입장은 “독도는 한국 고유의 영토다. 독도에 관한 영토분쟁 따위 없다”로 끝이다. 반면 일본은 일본 영토인 다케시마(독도)를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는 분쟁지역이라는 입장을 세계를 상대로 선전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스스로 독도를 방문함으로써 일본의 논리에 힘을 보탠 격이다.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위상이 떨어졌다는 말은 중국의 급부상과 한국의 급성장으로 초조감과 상실감에 빠진 일본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그러나 일본인들을 격앙시킨 것은 일왕에 관한 발언이다. 일본인들에게 일왕은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존엄한 존재다. 좌우익 가리지 않고 모든 일본인들이 그를 무조건 숭상한다. 그는 정치 위에 군림하는 존재여서 세속정치와 거리를 둔 구름 위의 존재다. 일왕 아키히토가 쇼와의 아들인 건 사실이지만 세속정치인들이 비판하는 것은 철저한 금기로 여겨진다. 그런 일왕에게 사죄 운운의 발언을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아무 결함이 없지만 일본인들의 정서적 민감성(sensibility)을 이해하지 못한 어리석은 실언이다. 더군다나 일왕 아키히토는 한국에 대한 이해와 동정심이 깊고 실제로 식민지 지배에 대해서 사과를 했다.
 
한 세대 안에는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널 건가
지난 3월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서 2019 영암왕인문화축제를 홍보하는 ‘왕인박사 일본 가오’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왕인은 5세기 초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을 전하고 일본 태자의 스승인 된 백제의 학자다.

지난 3월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서 2019 영암왕인문화축제를 홍보하는 ‘왕인박사 일본 가오’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왕인은 5세기 초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을 전하고 일본 태자의 스승인 된 백제의 학자다.

이런 사실을 외면하고, 국제 감각을 잃은 이명박의 발언으로 그때까지 과거사 문제에서 한국의 입장을 동정하던 일본의 한국 친구들, 중도의 일본인들이 태생적으로 국수주의적인 아베 신조 같은 우정치인들의 진영으로 전향하는 계기를 만들어 줬다.
 
두 번째 한·일 관계 악화의 계기는 2017년 10월 일본 기업들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밀린 임금을 포함한 배상을 하라는 한국 법원의 판결이다. 일본은 한국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제를 흔들고 있다고 반발한다. 한국 정부는 과거사와 현안 분리의 투 트랙 정책으로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이 촉발한 사태는 한국 정부의 투 트랙 노선의 통제를 훨씬 벗어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가 서둘러 아베 정부와 체결한 위안부 합의까지 겹쳐 문재인 정부는 속수무책으로 허공만 쳐다보고 있다. 일본은 북핵문제에 몰입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 우선순위에서 누가 봐도 변두리로 밀려나 있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돈 10억 엔으로 만든 위안부 관련 사죄 기금을 관리할 재단도 해체했다. 그 10억 엔(110억원)을 어떻게 하겠다는 대안도 없다.
 
지금의 한·일 관계는 내리막을 굴러 내리는 수레처럼 나락(abyss)으로 떨어지고 있다. 일본 기업이 징용 피해자 배상을 거부하면 한국의 피해자들은 정부의 등을 떠밀어 한국에 있는 일본 기업의 재산을 압류할 것이다. 일본도 일본에 있는 한국 기업들을 상대로 다양한 보복을 취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은 상대국의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이라는 극약처방을 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인 징용자들을 고용했던 탄광주의 손자인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은 한국인들에 대한 비자 발급 거부까지 언급하고 있다. 한국인 착취의 유전자를 타고난 정치인의 교만한 발언으로 실현가능성은 없어도 일본 여론을 흥분시켜 우익으로 뭉치게 하는 마력은 있다.
 
이대로 두면 한·일 관계는 한 세대 안에는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널지도 모른다. 지금 동북아시아 질서 개편의 소용돌이는 한·일 관계의 조속한 복원을 요구한다. 북·미 관계 개선과 북한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는 한·미·일 공조 위에서만 마무리된다. 일본은 지금 북한에 독자적인 제재를 가하고 있다. 일본은 그 제재의 해제를 지렛대로 지금 북한과 관계 개선을 위한 물밑접촉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한·일 관계가 최악이니 일본의 대북 협상자산이 남북, 북·미 협상에 편입되지 못하고 겉돌면서 김정은이 한·일 갈등의 이득을 챙기고 있다. 경기도의회는 일본 전범 기업 제품에 ‘전범’ 기업 딱지를 붙이는 조례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백해무익한 처사다. 그것은 일본 우익들, 아베 정권에 한국 때리기의 강력한 무기를 쥐여주게 된다. 한·일 중앙정부 간에 큰 갈등이 있으면 오히려 지자체들이 나서서 풀뿌리 교류를 확대해 우호적인 하부구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경기도 의회의 움직임은 시대의 요구에 역행하는 것이다. 한국의 다른 지자체들은 경기도의 조치를 반면교사로 삼아 각 지자체의 자매관계 상대와의 친선관계를 더 강화해 나가야 한다.
 
한국의 풀뿌리 민심을 탐방하는 전직 일본 총리
2017년 10월 일본 기업들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밀린 임금을 포함한 배상을 하라는 한국 법원의 판결로 한·일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2017년 10월 일본 기업들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밀린 임금을 포함한 배상을 하라는 한국 법원의 판결로 한·일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일왕은 전범의 아들이니 식민지 지배 피해자들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말하여 불에 기름을 부었다. 일왕이 전범의 아들인 것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 그러나 국회의장이 지금 그런 말을 해서 일부 반일 감정에 충만한 사람들의 기분을 잠시 후련하게 풀어주는 것 말고 우리가 얻는 게 무엇인가. 한·일 관계 개선에 무슨 보탬이 되는가. 문희상 스스로 국제음치라는 사실을 폭로하고 한국에 반격의 기회를 노리는 일본 우익들에게 좋은 명분만 갖다 바쳤다.
 
일본에도 한국의 친구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다. 전후 2대 총리 하토야마 이치로를 할아버지로 둔 정치 명문가 출신인 그는 두 개의 키워드를 가지고 한국을 대한다. 하나는 유아이(友愛)다. 개인관계서와 마찬가지로 국가관계서도 서로가 상대의 주체성을 존중하는 데서 선린관계가 성립된다는 생각이다. 자국의 주체성도 중요한 만큼 상대국의 주체성도 존중해 줘야 한다. 한·일 간의 유아이를 확장하면 동북아시아공동체의 기반이 되고, 동북아공동체 기반 위에서 지역평화가 시현될 수 있다는 큰 비전이다. 한반도 평화도 궁극적으로는 동북아공동체의 틀 안에서 안정적으로 관리될 수 있음을 생각하면 하토야마는 벌써 한반도 비핵·평화 이후를 내다 본 동양평화의 ‘있을 바(Sollen)’ 성격과 구조를 제시한 것이다. 이것은 바로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과 중첩되고 맞닿는 비전이다.
 
하토야마 유키오의 두 번째 키워드는 식민지 지배의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에서 가해자는 피해자 쪽에서 “인제 그만하면 됐다”고 할 때까지 사죄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토야마는 이 명제를 일본 사회사상가 우치다 다쓰루(內田樹)의 말에서 차용했다고 말했다. 하토야마는 그 말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하토야마는 2015년 서대문 형무소 자리를 방문하여 유관순 열사가 투옥됐던 여자옥사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를 했다. 그는 일본의 잔악한 한국 지배에 비판적인 양심적인 일본인들과 함께 한국의 지식인들과 대화를 계속한다. 하토야마는 3월 30일에는 부인과 함께 한국의 두메산골 경남 거창군 웅양면 동호리를 찾았다. 거기서 그는 ‘연구공간 파랗게날’(대표 이이화)의 주관으로 거창군 내 고등학생들을 포함한 지역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는 파격행동을 했다. 동호리 사과밭 언덕에 흰 텐트를 치고 바닥에 왕골 방석을 깔고 불편하게 앉은 그는 건너편 성기산성(聖基山城)이 임진왜란 때 왜장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가 지휘하는 제3부대 1100명의 왜병을 맞아 조선의 의병들이 혈전을 벌이던 전쟁터였다는 설명을 듣고는 임진왜란에 대해서도 사죄를 했다. 한국인에 대한 그의 사죄 목록이 하나 더 늘었다. 그는 정치인이 공익을 위해 할 일 안 하고 장수하는 것은 자기가 바라는 정치인의 모습이 아니라고 말했다. 한국의 정치인 중에 일본의 지역사회를 방문하여 한국에 대한 풀뿌리 민심을 살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과 대조되는 에피소드가 아닌가.
 
그러나 우리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에 발을 딛고 산다. 일본의 모든 정치인이 하토야마 같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하토야마 같을 수도 없다. 국제 감각 제로인 한국의 국회의원들이 갑자기 배낭 메고 일본의 지방으로 떠나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일본이 잘하는 건 경제뿐
지난 3월 ‘연구공간 파랗게날’ 행사 참석차 경남 거창을 찾은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맨 오른쪽). / 사진 : 김현동 기자

지난 3월 ‘연구공간 파랗게날’ 행사 참석차 경남 거창을 찾은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맨 오른쪽). / 사진 : 김현동 기자

한·일 관계의 단기적, 중기적인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아베 신조는 일본밖에 모르는 국수주의자다. 그의 달러외교는 전쟁을 할 수 있는 스트롱 저팬 만들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성격상으로도 그는 오만방자하고 무례하다. 그의 재무상 아소 다로와 외상 고노 타로도 오만하고 치유불능의 민족주의자라는 데서 아베에 뒤지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한·일 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설상가상,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한·일 관계 개선은 급한 외교과제로 생각지 않는다. 일본 외교를 담당할 외교관 인사도 아프리카나 중동 주재 외교관 인사하듯 한다.
 
하토야마 유키오가 거창서의 토론을 마치고 만찬을 하는 자리에서 한 설명에 따르면 일본의 민주주의가 성숙되지 않은 것이 문제다. 민주주의가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익 정권의 민족주의적인 선동정치에 대한 지지층이 넓다. 하토야마의 말은 아니지만 일본인들은 들쥐(leming)처럼 아베 뒤를 따라 한국 때리기를 즐긴다. 하토야마는 아베가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는 집권을 하지만 그 이후도 자민당이 계속 집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하토야마 같은 리버럴할 정권으로 교체되는 것은 먼 미래의 일이라는 말이 된다. 한·일 관계 개선의 전망도 그만큼 멀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한·일 두 나라에 어떤 정책 옵션이 있는가.
 
두 나라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언행을 자제하여서 사태를 더 악화시키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일본 여론이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상륙과 일왕 관련 발언으로 급속히 우경화한 이래 일본 정치인들은 경쟁적으로 혐한(嫌韓) 발언을 쏟아낸다. 한국의 경우는 정치인이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이나 행동을 해도 지지율 상승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여론에 기름을 붓는 일에서는 일본 정치인들이 문제다.
 
일본·일본인에 대한 일반적인 수수께끼의 하나는 개방적이어야 할 해양국가의 국민들인 그들이 왜 그렇게 폐쇄적인가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일본서는 학자가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따오면 국내 대학의 교수 되기가 힘들다는 사실이다. 마루야마 마사오 같은 정치학자, 니시다 기타로 같이 교토대학에 니시다학파를 만든 철학자, 가라타니 고진 같은 20~21세기 철학자들이 그 실력은 국제 수준인 것에 비하여 세계학계에서 보편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도 역시 일본의 폐쇄성, 언어상으로 일본어에 안주하는 근시안과 무관하지 않다. 독일이 나치독일의 만행에 대해서 유대인·이스라엘에 무한 책임을 지고 지금도 나치에 협력한 사람을 찾아내어 처벌하는 것과 대조적인 것도 일본인들의 좁은 시야, 세계관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런 견해가 아니면 일본은 왜 독일 같지 않으냐는 한국·중국인들의 질문에 답이 없다. 일본이 잘하는 건 경제뿐이다. 그러면서도 일본인들은 잃어버린 20년에 대한 불만을 한국과 중국의 급성장에 터뜨린다. 치졸하다.
 
한·일 과거사 양국 공동 연구한다면
독도문제는 일본은 뭐라고 하든 무시해 버리는 게 상책일 수 있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독도문제는 일본은 뭐라고 하든 무시해 버리는 게 상책일 수 있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우리가 일본 국민성을 개조할 수 없는 한 일본은 그런 나라, 일본인들은 그런 사람들이라는 전제에서 한·일 관계 개선의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단순화해서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1)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언행을 두 나라 정치 지도자들이 자제한다, (2) 대북 공조, 안보 협력, 경제 협력, 문화 교류 같은 기왕의 기능적 관계를 강화한다, (3) 중·장기적인 과제로 한·중·일 역사학자들이 협의기구를 만들어 과거사의 쟁점을 실증적으로 공동 연구한다. 그 결론이 날 때까지 일본은 왜곡된 역사를 초등학생들에게까지 가르치지 않는다. (4) 위안부 피해자 위로 기금과 강제징용자 배상문제는 어느 쪽도 손을 대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에 맡긴다. 독도문제는 일본은 뭐라고 하든 무시해 버린다.
 
1972년 중·일 관계 정상화 때 당시 중국 주석 덩샤오핑은 다나카 에이사쿠 일본 총리에게 센카쿠·댜오위다이 분쟁은 “우리 보다 현명한 다음 세대로 넘기자”고 제안하여 국교정상화의 걸림돌에서 제거됐다. 위안부 문제와 징용자 배상문제도 저렇게 탐욕스럽고 폐쇄적인 사고회로에 갇힌 지금의 일본 지도자들을 상대로는 풀릴 것 같지가 않다. 다음 세대는 우리 세대보다 현명하고, 특히 일본의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남북, 북·미 관계가 잘 풀려 한반도에 비핵·평화가 정착하면 기회 포착에 재빠른 일본이 실리를 좇아 한국에, 어쩌면 남북한에 양보를 할 가능성도 예상할 수 있다.
2012년 촬영된 NASA의 항공 위성사진.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숙명적 관계에 있다.

2012년 촬영된 NASA의 항공 위성사진.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숙명적 관계에 있다.

일본에게 한반도는 대륙 진출의 교두보다. 20세기 초에는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이 교두보를 강탈했지만 21세기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한국도 20세기 초의 조선이 아니다. 한·일 관계의 지금의 위기만 파국 없이 넘긴다면 시간은 한국 편이다. 좋은 친구 되기보다 좋은 이웃되기가 더 어렵다는 말이 실감난다. 한국과 일본이 일의대수의 이웃인 것은 지리적 운명이다. 지리는 바꿀 수가 없다. 집단지성으로 지리적 결정론을 극복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부터는 우리가 우리의 운명의 주인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운명의 주인이 되는 첫 번째 조건이 지리적 조건의 극복임을 알고 대처해야 한다.
 
※ 김영희 중앙일보 명예 대기자 - 1958년 22세 나이로 언론계에 첫발을 디딘 필자는 82세가 된 지금까지 현장을 누비는 영원한 기자의 길을 걷고 있다. 중앙일보 편집국장, 임원 등을 거치고 최근까지도 중앙일보 대기자 및 칼럼리스트로 활동했다. 외교·안보·국제 뉴스의 한 우물을 판 역사의 증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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