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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계속 잘나가고, 한국에선 손 뗀다"는 지정학 전략가

미국 캘리포니아 몬트레이 셰일 생산 기지 위로 해가 뜨는 모습. [AFP=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 몬트레이 셰일 생산 기지 위로 해가 뜨는 모습. [AFP=연합뉴스]

 
“한국이 앞으로 겪게 될 난관을 극복하려면 결연한 의지와 두둑한 배짱이 절실히 필요하다. 한국 전쟁 이후 한국의 성공을 가능케 한 모든 조건들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중략) 미국이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계속할지 모른다는 헛된 생각을 떨쳐버리도록 하는 게 이 책의 목적이다. 미국은 분명히 세계에서 손을 떼게 된다. 그리고 한국을 비롯해 모두가 새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
 

미국 국무부를 거쳐 민간 정보기업 ‘스트랫포’ 부사장을 지낸 지정학 전략가인 피터 자이한이 쓴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The Absent Superpower)』의 한국어판 서문 내용이다.
 
자이한은 책에서 ^셰일 혁명으로 에너지 자급을 이룬 미국이 세계질서를 유지하는데 신물이 나, 손을 떼고 있고 ^이로 인해 유럽·중동·동북아에서 상당 기간 혼란이 불가피하며 ^해외 시장으로의 수출과 원자재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은 중국·일본의 사이에 끼어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동북아 국가 중 “경제적으로, 인구 구조적으로 군사적으로 가장 큰 걱정거리를 안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라고도 말했다. 
 
적지 않은 이가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 논쟁적 주장이다. 전략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미국이 계속해서 힘을 행사하는 게 전지구적 무정부 상태를 피하는 동시에 새로운 강국의 출현을 효과적으로 저지하는데 매우 긴요한 것”이라고 설파한 게 불과 20년 전이기도 하다.
 

지구의를 끼고 있는 지정학 전략가 피터 자이한 [Barton Wilder Custom Images]

지구의를 끼고 있는 지정학 전략가 피터 자이한 [Barton Wilder Custom Images]

그런데도 자이한의 책이 주목받는 건, “미국이 계속 잘 나가며 한국에서 손을 뗄 수 있다”는 주장의 충격성 때문일 것이다. 특히 한·미 관계를 중시하는 보수 진영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 중 주변에 일독(一讀)을 권하기도 한다. 
 
책엔 그러나 조언이랄만한 내용이 없다. 저자 스스로 한국어판 서문에 “해법은 고사하고 한국에 헛된 희망도 제시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지난달 말 미국에 있는 그에게 전화를 건 까닭이다. 그는 몇 가지 제안을 했다. 하지만 한국엔 하나같이 쉽지 않은 것들이었다. 
 
주한미군의 미래 두곤 “전략적 유연성 큰 주일미군과 달라…현재로선 불확실"
미국이 세계에서 발을 빼고 있다고 진단했다. 
“두 가지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우선 버락 오바마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보이는, 특정 지역에서 서서히 관심을 잃어가는 현상으로 상대적으로 저속이다. 뚜렷해지는데 10년 또는 20년까지 걸릴 수 있다. 미국인들이 의식한 채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뭔가 미국인의 심리를 자극하는 게 있는 경우 순식간에 발을 뺄 수도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시리아 불개입 결정이 그 예다. 한국이 급격한 변화의 순간을 맞이한 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이 가능한 개입하도록 비상한 노력을 하고 있고 지금까진 그게 통하고 있다고 본다.”
최근 한·미 간 연합훈련을 하지 않기로 한 걸 두고 부분철수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더라. 전면철수도 가능하다고 보나. 
“임박한 건 아니다. 현재 미국의 누구도 (전면철수란) 그 옵션을 말하고 있진 않다. 그러나 그게 최종 결과일 수 있다. 미국인들은 카터 행정부 이래 한국에의 안보 공약(commitment)에 대해 덜 열렬해지고 있다. 미국이 관여하고 있는 냉전 체제의 군사공약으로 한국은 유일한 곳이지만 영원히 지속할 만큼 중요한 곳은 아니다.”
 
2017년 평택 험프리스 미군기지 인근에 상인들이 미8군 사령부의 평택이전을 환영하며 내건 플래카드. 오종택 기자

2017년 평택 험프리스 미군기지 인근에 상인들이 미8군 사령부의 평택이전을 환영하며 내건 플래카드. 오종택 기자

평택 험프리스 미군 기지는 미국 밖에 있는 최대의 미군 기지다. 이런 전략적 중요성을 들어 미군이 계속 한국에 주둔할 것이란 주장도 있다.
“동의하지 않는다.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는 유일한 전략적 목적은 남한의 방어다. 추가적 이득은 없다. (미군이 한때 주둔했던) 필리핀의 수빅 만의 경우 태평양에도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었다. 한·미 양자 관계에 혹은 북한에 어떤 일이 생긴다면 그에 따라 미군도 진화하게 된다. 트럼프가 북한과 이행 가능한 핵 합의를 했다고 가정해 보자. 미군기지의 필요성을 사라진다. 중국이 더는 미국의 전략적 우려 대상이 아니게 되면 남한의 중요성은 급감한다. 워싱턴과 평양의 적대적 관계가 재연되지 않는 한 주한미군의 미래는 불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 내일 문을 닫는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오랜 세월(test of time) 주둔할 것 같지 않다. 사실 이렇게까지 있던 게 놀랍다. 다른 곳은 모두 닫았다.”
일본에 주둔한 미군은 어떻게 보나. 
“일본은 한국보다 동맹으로서 전략적 유연성이 훨씬 크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막강한 해군을 가지고 있다. 미국이 일본에 ‘우리는 필리핀과 얽히고 싶지 않은데 당신들은 어떤가. 필리핀에 개입할 수 있나’라고 말을 건넬 수 있다. 일본은 그럴 힘도, 옵션도 있다. 대단히 유능한 동맹이다. 일본의 능력에 대해 미국은 대단히 높게 평가한다. 이런 점이 한국엔 일련의 복잡미묘함을 야기할 것이다.”
 

미국의 친구로 남으려면 “지지자돼야…교황보다 더 가톨릭일 정도로”
새로운 시대에 한국이 미국의 친구로 남을지 불확실하다고 했다.
“셰일 혁명으로 미국은 완전히 에너지를 자급하게 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로, 상당수 산업이 생산 라인을 다시 미국으로 옮기고 공급 체인을 단순화하고 있다. 미국은 이제 캐나다도 파트너가 아닌 경쟁자로 본다.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이 한국을 어떻게 볼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한국에 지속적으로 관여하게 하려면.
“많은 나라가 그 답을 얻기 위해 애쓰고 있다. 좋은 답을 구한 곳은 아무 데도 없다. 아마도 가장 근접한 답을 얻었다면 호주일 게다. 알다시피 호주는 누구나 사랑한다. 미국인이 계속 관여하도록 하기 위해선 두 가지의 일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첫째 한국이 미국에 경제적 위협이 아니란 걸 확신시킬 필요가 있다. 교역에서 많은 걸 양보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둘째 미국이 한국 내 기지를 이용, 동북아시아에서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도록 하는 걸 용인해야 한다. 일본 오키나와와 비슷한 딜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서울이 그걸 원할 것 같진 않다. 미국과의 군사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한·중 간 교역 관계는 희생시킬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라기엔 너무 어려운 주문(tall order)이긴 하다.”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군사전략에 동참해야 한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기본적으로 미국의 군사력 투사를 위한 플랫폼의 지지자(cheerleader)가 될 필요가 있다. 대만의 독립 인정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교황보다 더 가톨릭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more catholic than the pope·강력한 옹호자가 돼야 한다는 의미).”
우리로선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쉽지 않다. 더욱이 그리했는데도 먹히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한·중 관계가 어려워졌는데도 미국인을 불러오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럴 리스크가 있다고 본다.”
 

미국이 손 뗀 후 “새 파트너는 일본이 유일한 옵션, 독자적 길 가려면…”
그는 미국이 세계질서에서 철수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말했다. 페르시아 만(걸프 만) 등의 정세 불안으로 석유 공급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한국과 중국·일본·대만이 석유 수입 확보를 위해 자본과 군사력을 동원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이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취약한 중국이 경제적·정치적 응집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한국은, 바닷길을 확보할 역량이 되는 일본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새 파트너로서 유일한 옵션은 일본”이라고 말했다.
 
한·일 관계를 잘 알 터인데.
“(양국 간) 반목과 역사, 문화를 고려치 않은 조언이란 걸 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나 전략적으로나 일본이 ‘똑똑한 선택(smart choice)’이다. 물론 용이하다는 말은 아니다. 이렇든 저렇든 한국은 변해야 한다. 하고 싶지 않더라도 해내야 한다. 문제는 한국에 시간이 있을까다. 내가 보기엔 10년 이내라고 본다. 5년에 가까울 수도 있다. 한국이 지난 60년간 이뤄낸 걸 보면 충분한 시간일 수 있다.”
 
미군과 일본 자위대가 미국령 괌에서 연합훈련하는 모습. [AP=연합뉴스]

미군과 일본 자위대가 미국령 괌에서 연합훈련하는 모습. [AP=연합뉴스]

독자적인 길은 없을까.  
“세 가지 큰 변화가 요구된다. 첫 번째 석유 없이 지내는 길을 찾아야 한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에너지 체계를 갖는다는 의미로, 대규모의 전기화·원자력화가 필요하다. 이 경우 원유보다는 해외공급망을 관리하긴 훨씬 용이할 것이다. 두 번째 국내총생산(GDP)의 대략 5%(현재 2.5%, 한국군 주도할 땐 5%)를 비무장지대(DMZ) 방어에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북한과 잘 지내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 돈을 해군력을 키우는 데 투입해야 한다. 무엇보다 핵연료 함정을 고려해야 한다. 세 번째 사회·문화적 변화다. 한국 국내적으로 상당한 정치 논쟁들이 있다. 특정인이나 주제를 놓고 벌이는데 대단히 뜨겁다. 나로선 남북전쟁 발발 전 수년간의 미국이 떠오를 정도다. 상대적으로 신생 민주주의 국가에겐 정상적인 진화단계일 수 있다. 하지만 당신들은 잘못된 것들을 놓고 싸운다. 세계에서 한국의 위치(South Korea’s place in the world)나 한국이 어떤 종류의 국가가 되어야 할지를 두고 국가적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 지정학 탓에 원치 않는 선택을 강요받는 순간을 맞기 전에 대화를 시작하는 게 좋을 것이다. 어떤 선택에 도달했을 때 다수가 함께하는 게 진짜 중요하다.”
북핵 위기 와중이던 2017년 남한의 미래가 ‘가난하고 친구 없고 지독히도 영리하고 화를 잘 내는(testy) 핵무장 국가’일 수 있다고 주장했던데.
“그런 길로 접어들 수 있다. 미국이 세계에서 흥미를 잃고 있다. 미국이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으면 북한으로선 큰 레버리지를 잃는 것이다. 1992년 이래 북한의 협상 전략은 미국을 협상 테이블에 앉도록 하는 것이었다. 1차 북·미 정상회담의 행간을 읽으면 북한이 서반구를 공격할 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핵 국가로 남는다는 것이다. 핵 문제는 일본과 중국, 한국의 문제이지 미국의 문제는 아니게 된다. 가능한 얘기다. 아마 최종적으로 그리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북한을 군사적·외교적으로 다루는 건 남한이 될 수 있다. 전쟁으로 가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4500만 명의 남한 사람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 가운데 일부인 데 비해 북한의 2000만 명은 정반대에 있다. 남북의 파트너십은 대단히 파워풀할 것이다. 이는 그러나 상당한 개입(engagement) 없이는 불가능하다. 북한과 교류 없이 간다면 남한엔 무거운 짐이 될 것이다. 남한이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비전을 가진 채 존재하길 바란다면 앞으로 나갈 방안을 찾아야 한다.”
 
11일 미국 워싱턴에서의 한·미 정상회담 이후 그에게 다시 e메일로 질문을 던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빅딜을 강조하며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등 제재 해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고 직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국의 중재자·추진자 역할에 냉소적 입장을 밝힌 상태다. 
 
남한이 북한에 상당한 개입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최근 미국·북한의 반응을 보면 제재 위반의 의혹을 사지 않으면서 잘 지내는 길을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명확하면서도 단순한 길은 없다. 모든 길엔 위험이 따른다. 한국이 세계 시장 접근을 유지할 수 있다고 희망하는 선에서 북한과의 외교적 접근을 이뤄내야 한다. 그러나 일단 그런 희망이 흐려진다면 보다 광범위한 선택지가 드러날 것이다. 각각 위험이 있는.”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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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