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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다시 태어납니다] “삶의 중심에 십자가 두면 매일 매일 새로운 날”

‘죽음과 부활, 그리고 삶’ - 새에덴교회 소강석 담임목사에게 묻다
소강석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원리와 실재가 우리 안에 있다. 그러니 부활을 우리의 현세적 삶에 도입하고 적용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삶이 새로워진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조인기

소강석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원리와 실재가 우리 안에 있다. 그러니 부활을 우리의 현세적 삶에 도입하고 적용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삶이 새로워진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조인기

부활절을 맞아 11일 서울 광화문에서 새에덴교회 소강석(57) 담임목사를 만났다. 소 목사는 “어릴 적 동네에서 상여가 나갈 때면, 나는 맨 앞에서 작대기를 들었다. 여름철에 하관할 때는 부패하기 시작하는 송장을 봤다. 그때마다 궁금했다. 망가에서 부르는 황천길은 어디고, 북망산천은 또 어디인지. 인간은 어디에서 왔고, 또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왜 죽어야만 하는지. 그런 물음들이 ‘예수의 부활’을 만나면서 비로소 풀렸다”고 말했다. 그에게 ‘죽음과 부활, 그리고 삶’을 물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에는 성묘교회가 있다. 그 안에 예수의 것이라 전해지는 무덤이 있다. 소 목사는 “그건 히브리대 교수들도 인정하는 바다. 몇 시간 동안 줄을 서서 그 무덤에 들어간 적이 있다. 무덤 안에 서니까 예수의 부활을 기록한 요한복음이 실감나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요한복음의 어떤 대목인가.
“예수님의 시신이 놓인 동굴무덤을 제자들이 찾았을 때다. 예수님의 죽음도 당시 유대인의 장례 풍습을 따랐다. 예수님이 숨을 거두자 시신을 세마포로 감쌌다. 머리 부분과 몸 부분을 감싸며 둘둘 말아서 그대로 두었다. 그런데 베드로가 무덤에서 목격한 건 놀라운 광경이었다.”
 
 
어떤 광경인가.
“예수님의 몸만 빠져나가고, 몸을 쌌던 세마포는 그대로 있었다. 매미가 허물을 벗을 때도 구멍은 있다. 자기 몸이 빠져나온 구멍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몸을 감싼 세마포에는 구멍이 없었다. 감싼 그대로 세마포만 남아 있었다. 요한복음에는 그 장면이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보니까 세마포가 원래 감쌌던 그대로 있었고, 머리를 감쌌던 수건도 처음 있던 장소에 세마포 부분과 분리된 채로 원래 감쌌던 그대로 개켜있더라’(요한복음 20장7절,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신성욱 교수 번역)고 기록돼 있다. 성경은 헬라어(고대 그리스어)로 처음 기록됐다. 우리말 ‘개켜있다’는 헬라어로 ‘엔테튈리그메논(ejntetuligmevnon)’이다.”
 
 
무슨 뜻인가.
“‘싸다’ ‘봉하다’는 뜻인데 수건이나 식탁보가 납작한 형태가 아니라 둥그렇게 말려있는 모양을 뜻한다. 유대인의 장례 풍습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걸 보고 놀랄 수밖에 없다.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던 베드로도 그걸 보고 비로소 믿게 됐다.”
 
 
소강석 목사는 예수의 부활을 ‘첫 열매’라고 불렀다. “곡식이나 과일 나무에서도 첫 열매가 열리면 나중 열매는 따라서 열린다. 첫 열매를 따 먹으면, 나중 열매는 저절로 따먹게 돼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예수 부활에 대한 ‘맛보기’가 중요하다.”
 
예수의 부활에 대한 맛보기, 무슨 말인가.
“내가 어렸을 적에 우리 동네에 엿장수가 왔다. 가위질을 하면 동네 아줌마와 아이들 할 것 없이 나와 집안의 폐품을 내주고 엿을 받았다. 나는 그때 쟁기에 달린 쇳덩이를 떼다가 엿으로 바꾸었다. 쇳덩이가 무거워서 엿을 가락이 아니라 뭉치로 받았다. 물론 나중에 아버지께 다리 몽둥이가 분질러지도록 맞았다.”
 
혼날 줄 뻔히 알면서 왜 그랬나.
“그건 ‘맛보기’ 때문이었다. 엿장수가 먼저 내게 손가락 한 마디 길이의 엿을 잘라 그냥 주었다. 맛보기였다.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내가 ‘맛보기’를 제대로 느꼈다. 진짜배기 엿 맛을 봐버린 거다. 예수의 부활도 그런 거다. 우리에게는 예수 부활에 대한 제대로 된 맛보기가 필요하다.”
 
어떡하면 예수의 부활을 제대로 맛보기 할 수 있나.
“부활이 뭔가. 거듭남이다. 어떡해야 거듭날 수 있나. 십자가를 통과하면 된다. 부활하면 뉴 빙(New being), 즉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때는 새로운 세계관과 새로운 가치관을 갖게 된다. 그 중심이 십자가다. 거듭난 삶의 중심에는 늘 십자가가 있다.”
 
사람들은 ‘자기 십자가’를 두려워한다.
“예수님도 두려워하셨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처음에는 ‘가능하면 이 잔이 저를 비켜가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십자가를 피하고자 했다. 예수님도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셨기에 십자가의 고난을 두려워하신 거다. 그러나 예수님은 육신의 생각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해달라고 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 앞에서 두 가지 삶을 산다. 하나는 십자가를 중심에 두는 삶이고, 또 하나는 십자가를 두려워하는 삶이다. 그렇게 안 산다면 거짓말이다. 누구나 그렇게 산다.”
 
그럼에도 ‘자기 십자가’를 통과해야 하는 이유는.
“매일 매일이 새로워진다. 가령 외나무 다리가 있다. 그걸 건너면 푸른 초원이 있고, 꽃밭이 펼쳐진다. 막상 외나무 다리 앞에 서면 어떤가. 두렵고 겁이 난다. 그러나 그걸 건넌 사람은 꽃밭과 초원의 주인공이 된다. 그런데 겁이 나서 외나무 다리를 건너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나. 그의 삶은 거기서 멈추게 된다. 그런 외나무 다리가 자기 십자가다. 늘 두렵고 겁이 난다. 왜냐하면 십자가를 통해 자기 죽음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십자가를 통과하면 새로운 경지, 새로운 차원이 열린다. 그렇다고 거기가 끝이냐. 아니다. 더 큰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다. 삶은 산 너머 산, 강 건너 강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 전체가 성화(聖化)의 과정이다. 그래서 십자가를 중심에 두면 매일 매일이 새로운 날이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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