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김기찬 기자 사진
김기찬 중앙일보 논설위원, 고용노동전문기자

ILO 협약 비준 즉시 이행 의무 발생…미이행 시 경제 제재 대상

◈ ILO 협약 논란 뜯어보기 <下> 
 
17일 고용노동부가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했다.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과 관련해서다. 일각에서 '선(先)비준, 후 법 정비'를 주장하는 데 대한 설명이다. 결론은 "국회의 동의 없이 협약 비준은 불가능하다"이다.
 
비준된 협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 또 협약을 비준하는 순간, 국제사회에서 이행 의무를 지닌다. 이행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의 제재가 따른다는 얘기다. 이러니 정부로선 협약과 상충하는 국내의 법과 제도를 협약에 맞춰 정비한 뒤 비준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동계뿐 아니라 정부 기구에서조차 이런 현실과 반대되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지난 4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먼저 (ILO 협약을) 비준하고 국내법을 정비해도 된다"고 말했다.
 
고용부가 17일 브리핑에 나선 건 이런 선(先)비준 논란에 쐐기를 박기 위해서다. 이를 둘러싼 불필요한 소모적 갈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뜻이 담긴 셈이다.
선(先) 비준은 입법 형성기 국가에서 가능
사실 협약을 먼저 비준하고 제도를 정비하는 건 입법 형성기에 있는 국가나 가능하다. 유럽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노동 관련법을 제정하고 정비할 때 ILO 기준을 입법 형성의 지침으로 활용했다. 2000년 이후 ILO 협약을 비준한 대부분의 국가가 ILO의 기술적 지원을 받아 입법 체계를 다듬은 것도 같은 이치다. 남수단이나 잠비아, 아르메니아, 바누아투 등이 그런 국가다.
 
우리나라는 입법 완성기 국가다. 법·제도가 이미 형성돼 있다. 따라서 국내 제도가 협약에 저촉되는지를 먼저 따지고, 협약을 고칠 수는 없으니 협약에 맞춰 법령이나 지침을 고쳐야 한다. 정부가 선(先)입법 후(後) 비준을 추진하는 이유다.
 
◇미비준 시 국제사회 제재 논란 
ILO 협약 비준을 둘러싸고 비준 절차뿐 아니라 미비준 시 경제제재 여부도 논란거리다. 이 논쟁은 ILO 협약 비준을 위한 노사정 협상을 이끈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 공익위원이 불을 붙였다.
"현대·기아차 괴멸적 피해" vs "비준 뒤 이행 않으면 경제제재"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사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던 지난달 28일 경사노위에서 "(EU가) 반드시 우리나라에 피해가 되는 행동을 할 가능성이 많다"며 제재 불가피론을 폈다. 그는 "피해는 경제단체가 아니라 개별 기업체에 집중될 것이고 유럽에 진출한 현대·기아차에 대해서는 괴멸적인 효력이 발생할 것"이라도 했다. 그러면서 "라트비아, 스리랑카, 미얀마가 노동권 문제로 유럽연합(EU)과 ILO로부터 제재를 당했다"고 소개했다.
 
고용부 고위관계자의 얘기는 좀 달랐다. "비준하면 이행 의무가 생기기 때문에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국제적인 제재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비준하지 않은 상태에선 비준을 권고하는 압박이 계속되고, 국가 체면의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이행 의무가 발생하지 않아 무역분쟁으로 이어지거나 경제 제재 같은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비준하는 즉시 국내법의 상충 여부를 떠나 협약 불이행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고, 경제 제재를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9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세실리아 말스트롬 EU 통상집행위원과 면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9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세실리아 말스트롬 EU 통상집행위원과 면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EU가 3개 나라에 가한 제재도 한국과는 사실관계가 다르다.
벨라루스, 스리랑카, 미얀마는 EU의 자체 개도국 특혜관세 조건을 이행하지 않아 제재
우선 라트비아는 이 교수의 주장과 달리 EU로부터 경제 재재를 받은 적이 없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고용부 관계자는 "라트비아는 EU 회원국으로서 EU의 지침을 이행하고 있으며, 제재 이력이 없다"고 말했다.
 
클라라 폴텔라 싱가포르 경영대학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EU의 제재를 받은 국가는 동유럽의 벨라루스와 아시아의 미얀마, 스리랑카 3개국이다. 한데 이들 국가에 가해진 경제제재는 일반특혜관세제도(GSP)의 혜택을 박탈하는 것이다. GSP는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한다. 선진국이 개도국의 경제발전을 돕기 위해 해당 국가의 상품에 관세를 매기지 않거나 저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특혜다. 한국과는 관련이 없는 제도다.
 
EU는 GSP 혜택을 원하는 개도국에 몇 가지 조건을 내건다. 이 조건 가운데 ILO 협약과 관련된 노동조건 이행과 국내법 정비, 이행 여부에 대한 정기적인 모니터링 등이 포함돼 있다. 이를 수용한 국가에만 GSP 혜택을 준다.
 
EU의 제재를 받은 3개국은 이 조건을 어겼다. EU가 취한 제재 조치는 GSP 혜택을 철회하는 것이었다. ILO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고 제재를 당한 것이 아니다.
협약 비준한 뒤 지키지 않은 미얀마는 UN 제재도 받아
미얀마는 ILO로부터도 제재를 당했다, 2000년 6월이다. 강제노동 협약을 어겼다는 이유다. 미얀마는 ILO의 핵심 협약 중 3개의 협약을 비준하고 있다. 이 중 하나가 강제노동금지(제29호) 협약이다. 비준을 해 놓고 이행하지 않자 ILO가 제재한 것이다. 아직 이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한국과 단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셈이다.
 
국내법을 정비하지 않고 비준했을 경우 위반 문제가 제기되면 한국도 미얀마와 같은 국제연합(UN) 차원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에 따른 무역분쟁도 불가피하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관련기사
 
※이 기사 작성을 위해 유럽 집행위원회(EC) 무역총국의 자료, 클라라 폴텔라 교수의 2016년 EU 경제제재 관련 논문, 한국노동연구원의 ILO 가입에 대한 연구논문과 저서, 한국경영자총협회의 ILO 관련 세미나 자료, ILO의 정책 자료 등을 참조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김기찬의 인(人)프라

이메일 받기를 하시면
기사 업데이트 시 메일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다른 기자들의 연재 기사 보기

뉴스레터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