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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첫날 남편 "어무이, 이 여자 일은 날 통해 시키소"

기자
송미옥 사진 송미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84)
남편과 시골에 살 적에 딸아이가 와서 말했다. "우리 신랑이 부상으로 받은 금 열 돈을 장인어른께 반지 해 드리자네". [사진 pxhere]

남편과 시골에 살 적에 딸아이가 와서 말했다. "우리 신랑이 부상으로 받은 금 열 돈을 장인어른께 반지 해 드리자네". [사진 pxhere]

 
언젠가 남편이랑 시골에 살 적에 딸아이가 와서는 흥분해서 말했다. “엄마, 난 우리 신랑이 큰 잘못을 해도 열 번은 용서해 줄 거야. 호호. 글쎄, 장기 근속자 부상으로 금 열 돈이 나왔는데 장인어른 용무늬 넣은 반지 해드리자네. 아, 얼마나 행복한지 눈물 나.”
 
오늘 이웃 지인이 놀러 와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가까이 산다는 이유로 나이든 친정엄마의 별일도 아닌 사위 호출에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전화만 오면 ‘네~ 네~’ 하며 달려가는 모습에 미안해서 밥상 차릴 때 고마움을 조금씩 갚는다오. 호호.”
 
엄마의 사랑은 ‘무조건’이지만 아내의 사랑은 소통과 거래다. 나이 들어 주위를 봐도 긴 세월 잘 살아가는 부부관계는 무언으로라도 거래와 협상을 잘하는 부부다. 실리를 따지자면 남편은 손해 보는 장사, 아내는 남는 장사라야 평화로웠다.
 
사랑의 힘은 세다. 결혼 후 남편이 내게 보여준 기억이 크게 남는 첫 거래가 있다. 시부모, 시조모까지 있는 집에 시집온 첫날, 두려워하는 나를 앉혀놓고 남편이 말했다. “어무이, 이 여자는 몸도 약하고 잠이 많으니 아침밥은 새벽잠 없는 어무이가 책임지소. 그리고 이 여자에게 일을 시킬 때도 날 통해서 시키소.”
 
시집온 첫날 남편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이 여자는 몸도 약하고 잠이 많으니 아침밥은 새벽잠 없는 어무이가 책임지소"라고 말했다. (내용과 연관 없는 사진) [중앙포토]

시집온 첫날 남편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이 여자는 몸도 약하고 잠이 많으니 아침밥은 새벽잠 없는 어무이가 책임지소"라고 말했다. (내용과 연관 없는 사진) [중앙포토]

 
모두의 가슴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어이없는 말에 눈이 똥그래지며 대화 한 마디 없었던 그 날,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내 자식이지만 부모 앞에서 제 아내 감싸는 것도 대견하고 무엇보다 참 부럽더라.” 훗날 어머님이 하신 말씀이다.
 
고백하건대 낯선 곳에서의 첫날, 그 강렬한 한 마디는 파도치는 삶 속에서도 믿음과 신뢰를 주었고 나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었다. 신혼 시절 나는 가족 사이에선 왕따가 되었지만 어차피 내 편은 한사람이면 충분했다.
 
 
또한 독재자의 그늘에 살다 보면 수동적인 삶이 얼마나 편한지 아는 사람만 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이에게 행사하는 오만불손이란 힘이 있는 남편이 그땐 참 좋았다. 나이든 요즘, 가끔 시동생들과 대화에서도 남편의 독불장군 시대 뒷말이 가장 재미있다. 두려운 시집살이에 힘이 된 그 말은 세월이 지나도 잊을 수 없다.
 
오랜 세월을 함께 살면서 가끔 남편이 속 터지게 하고 애간장을 태울 때도 그 첫 거래의 외상값이 크게 남아서 아무리 오래 갚아도 청산이 안 되었다. 기억하기도 좋은 12월 30일이 결혼기념일인데 내겐 기억에 남는 시간이 없다. 신혼 때엔 그걸로 몇 번을 투덕거렸다. 남편은 “귀신이나 강아지나 주인 하는 것 봐가면서 슬슬 기기도하고 이겨 먹으려고도 한다”며 한번 해주기 시작하면 매번 ‘더, 더, 더’를 외치는 여자의 심리에 나사못을 박듯 꽝 박아두었다.
 
남편은 내 생일이 되면 친정으로 전화를 걸어 "장인어른, 딸내미 잘 키워 주셔서 내가 호강하고 잘살고 있심더."라며 감사인사를 했다. [사진 pixabay]

남편은 내 생일이 되면 친정으로 전화를 걸어 "장인어른, 딸내미 잘 키워 주셔서 내가 호강하고 잘살고 있심더."라며 감사인사를 했다. [사진 pixabay]

 
대신 다른 거로 협상 카드를 뺐다. 이것은 나에게 주는 선물보다 수십 배 값어치 있는 선물이었다. 달력에 내 생일을 알리는 동그라미가 그려진 날이 되면 새벽부터 이불 속에서 친정으로 전화를 걸어 안부 인사를 했다. 평소에도 잘 챙기던 처가였지만 그날엔 목소리 톤이 더 높게 올라갔다. “장인어른, 딸내미 잘 키워 주셔서 내가 호강하고 잘살고 있심더. 감사 선물도 보냈으니 곧 도착 할낍니다.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또 말씀 하시소.”
 
가끔은 “임 서방이 또 돈을 보냈네. 너무 고맙데이. 요즘 돈벌이가 좋다고 그러니 참 기쁘다”라며 부모님이 먼저 전화를 주시며 기뻐하셨다. 친정에 분수에 안 맞는 돈을 지출한 날은 당연히 전쟁이 터졌다. 그러나 마음속으론 고맙고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뿐, 그것을 갚는 일은 시댁에 잘하는 것이었다.
 
결혼하고 나이가 드니 친정 부모님은 내 어깨에 걸린 보이지 않는 짐이었다. 두 분은 요즘은 이른 나이인 60대, 70대에 돌아가셨지만 우리가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던 그때 돌아가신 걸 다행스럽고 가장 고마운 일로 생각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내 손을 잡고 “임 서방이 있어서 넌 걱정 안 한다”라고 하신 말씀이 내가 부모에게 드린 최고의 선물이다.
 
황혼이혼이니 졸혼이니 하는, 겨울로 가는 우리 나이에도 협상이 잘 조율되어 사랑 넘치는 친구 같은 부부가 많았으면 참 좋겠다. 아내는 엄마가 아니다. 오래오래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소통과 거래가 해답이다. 거기에 서로 손해 보려고 하다 보면 남는 장사가 되니까.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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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