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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읽기]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장강명 소설가

장강명 소설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은 이제 유행어의 단계를 지나 관용어의 영역에 이른 것 아닌가 한다. 이 표현이 10대 일간지에 지난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몇 번이나 나왔는지 검색해보니 704회나 된다. 같은 기간 결자해지(241건), 작심삼일(124건), 개과천선(118건), 감언이설(111건), 토사구팽(77건), 조삼모사(72건), 대기만성(63건)보다 훨씬 자주 등장했다.
 
이렇게 많이 쓰이다 보니 젊은 세대 중에는 내로남불을 사자성어라고 오해하는 이도 더러 있는 모양이다. 하긴, 한자어가 아닐 뿐 네(四) 글자(字)로 이뤄진(成) 단어(語)인 건 맞으니 고사성어라고 할 순 없어도 사자성어라고 부를 순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앞으로도 이 표현이 애용(?)되며 결국엔 표준국어대사전에 오르리라 예상한다. 일단 이 단어를 대체할 다른 사자성어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아전인수? 견강부회? 내로남불과는 뜻이 조금 다르다.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의미인 아시타비(我是他非)라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처음 듣는다.  
 
인간의 자기 중심주의가 근시일 내에 사라질 리도 없다. 기실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이 내로남불이 아닌 경우가 드물다. 내 운전과 남의 운전에 대한 판단이 다르다. 우리 선조가 한 일은 진출이고, 다른 민족이 한 일은 침략이다. 이런 인지편향을 꼬집는 고사성어가 왜 없는지 의아할 정도다.
 
무엇보다 정치권에서 내로남불이라는 단어를 포기할 것 같지가 않다. 쉽고 유머러스한 조어라 쓰는 사람 입에는 착착 감기고 듣는 사람 머리에는 명확한 프레임이 생긴다. 당하는 사람 처지에서는 짧게 받아치기 어려운 강력한 일격이다. 고작해야 “그거랑 이거랑 같냐”라든가 “너는 더했어” 정도인데, 그렇게 답하는 순간 비판을 반쯤 인정하는 셈이 된다.
 
다만 내로남불이라는 표현이 요즘처럼 자주 쓰이는 데에는 정국의 특수성도 있다고 본다. 한쪽이 적폐청산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정국 주도권을 잡았다. 다른 쪽은 그 명분에 반대하기 어려웠고, ‘얼마나 제대로 실천하는지 보자’고 별렀다. 간판에 거창한 대의명분이 적혀 있는데 그 적용이 피아를 구분하는 모양새라면 당연히 반발하게 된다. ‘과거에는 더 심했다’는 말도 설득력이 없다.
 
정치는 덕성과 분리될 수 없는 분야인 데다, 특히 한국의 진보 진영은 자신들의 도덕적 우월성을 주장하며 그걸 무기로 삼곤 했다. 이 경우 운동가의 사적인 삶이 그가 공적으로 주장한 내용과 일치하지 않으면 비판 대상이 된다. ‘내 아들이 외고에 가고 싶어 해서 그 선택을 존중했다’고 주장하는 이에게는 ‘다른 아이들의 선택도 마찬가지로 존중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그가 어떤 교육정책을 내세우든.
 
현재 정치판에서 상대편을 공격하는 데 내로남불보다 더 강력한 도구는 없는 것 같다. 양 진영이 서로 세계관 자체가 달라서, 내가 뭐라고 공격하건 반대 진영 지지자들이 거기에 흔들리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내로남불만큼은 상대편 지지자들도 입을 다물게 만들 수 있다. 내용을 이해하기 쉽고, 보편성과 일관성은 윤리와 덕성의 핵심 요소이므로.
 
덕분에 우리는 국민의 대표들이 나라의 나아갈 바를 논하는 대신 초등학생처럼 ‘반사! 무지개 반사!’를 외치며 싸우는 모습을 매일 TV로 본다. 의미 있는 문제 제기가 미래를 향하는 논의가 되지 못하고 ‘그 말을 한 너는 예전에……’로 흘러간다. 블랙홀이다. 그 와중에 정적을 공격하는 기준만 가혹해진다. 논문 자기 표절 같은 문제가 솔직히 얼마나 큰 흠결인지 잘 모르겠다. 소득이 많은데 재산이 늘지 않았다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한 거라고 몰아붙이기도 했다. 표절·사치라는 단어가 주는 강한 느낌 때문에 공격은 정서적으로 먹혀들지만, 당한 사람은 억울하다. 자신에게 기회가 오면 보복하고 싶어진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공론장이 현실에서 멀어진다. 남는 건 누구도 지킬 수 없는 도그마들뿐.
 
내로남불 설전을 보는 심경은 복잡하다. 우리 사회의 생산적인 토론을 모두 집어삼키는 수렁인 것도 같고, 진영논리가 선민사상으로 빠지는 걸 막아주는 최소한의 방어 장치인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사회가 발전하니까 예전엔 틀린 것이 지금은 옳을 수도 있다. 소수자·약자의 말과 행동을 사회적 강자와 같은 잣대로 판정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그런 맥락을 강조하며 자신의 편향과 이중 잣대를 교묘히 감추는 이들을 볼 때면 어쩔 수 없이 불편한 마음이 인다.
 
장강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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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