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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 채취해 전투기 날렸다···패배 인정 못한 日의 발악

Fcous 인사이트 
 
전북 남원 왈길마을숲의 송진 채취 피해목 [사진 산림청]

전북 남원 왈길마을숲의 송진 채취 피해목 [사진 산림청]

 
1943년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일본은 극심한 물자 부족에 시달렸다. 지도상으로는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유전, 영국령 말라야의 주석 광산과 고무농장,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곡창지대처럼 엄청난 보고를 점령하고 있었으나 정작 그림의 떡이었다. 일본은 태평양 전쟁 초기에 엄청난 속도로 점령지를 늘려나갔지만, 그것이 어떤 후속 조치를 강요하는 일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수많은 점령 지역을 이어주던 연결망이 연합군에게 철저할 정도로 차단당하자 정작 차지하고 있는 물자를 본토에서 사용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었다. 전쟁을 일으켜 승승장구했음에도 이로 인해 혜택은커녕 이전보다 더욱 극심한 물자 부족에 시달렸다. 이러한 고통의 대부분은 보통 사람들이 겪었는데 그중에서도 전쟁과 아무 관련도 없는 우리가 당한 고통은 그야말로 혹독할 정도였다.
 
1942년 1월 14일, 쿠알라룸푸르에서 싱가포르로 가는 중간에 위치한 게마스 점령에 나선 일본군. 태평양 전쟁 초기에 일본은 급속도로 점령지를 늘려갔다. [사진 wikimedia]

1942년 1월 14일, 쿠알라룸푸르에서 싱가포르로 가는 중간에 위치한 게마스 점령에 나선 일본군. 태평양 전쟁 초기에 일본은 급속도로 점령지를 늘려갔다. [사진 wikimedia]

 
일제는 열도와 가깝고 연합군의 공습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한 한반도에서 물자를 확보하는데 광분했다. 일단 오래전부터 조달해온 곡물, 광물의 수탈 물량을 늘려갔다. 그러다가 전쟁이 격화되고 갈수록 어려움이 커지자 일제는 마구잡이로 수탈의 대상을 늘려갔다. 철강재가 부족하자 경북선, 안성선처럼 운송량이 적은 선로의 일부를 폐선시켜 철로를 뜯어서 갔고 사찰에 있는 종과 집에 있는 숟가락마저도 공출이라는 명분을 씌어 강탈해 갔다.
 
이처럼 마른 수건을 짜듯이 전쟁 말기로 갈수록 일제의 수탈은 도를 넘었는데 그중 송진 채취처럼 어이없었던 행위도 있었다. 태평양 전쟁 전 일본은 비누 같은 화공품 제조에 사용되는 송진을 대부분 미국에서 수입해서 연 4만 톤가량 소비했다. 전쟁으로 금수가 단행되자 대안으로 일제는 한반도에서 송진 채취를 시작했으나 이때만 해도 수요 대체가 목적이었고 그다지 강제적인 수준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2차세계대전 중 급유하는 일본군 전투기 [중앙포토]

2차세계대전 중 급유하는 일본군 전투기 [중앙포토]

 
그러다가 1944년에 이르러 지역별로 불가능할 정도의 엄청난 할당량을 내려 채취를 강요하기 시작했다. 어이없게도 석유의 공급이 어렵게 되자 전투기를 비롯한 각종 무기의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독일에서 도입한 석탄 액화 기술로 생산한 인조 석유도 여러 이유로 생산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궁리 끝에 내린 해결책이었다. 송진을 가공해서 얻는 테레빈유는 정제하면 내연 기관의 연료로 사용할 수는 있다.
 
문제는 송진에서 얻을 수 있는 양이 그다지 많지 않아 효율적인 연료 조달 방법이 아니었을뿐더러 전투기 같은 무기의 고성능 엔진을 가동하기에는 아무리 정제를 해도 품질이 좋지 않았다. 미국의 석유 금수 조치를 명분으로 일본은 전쟁을 시작했지만 정작 더 큰 고통을 겪었다. 송진을 채취해서 전투기를 날려야 할 정도라면 이미 패한 것과 다름없으므로 전쟁을 포기하는 것이 옳다.
 
안성시 죽산면 청미천에 남아 있는 철교 교각. 일제는 안성에서 장호원에 이르는 철도를 폐선시키고 철재를 수거해 갔다. [사진 카카오맵 캡쳐]

안성시 죽산면 청미천에 남아 있는 철교 교각. 일제는 안성에서 장호원에 이르는 철도를 폐선시키고 철재를 수거해 갔다. [사진 카카오맵 캡쳐]

 
하지만 일제는 종전 순간까지 도시건 농촌이건 주민을 마구 동원해 소나무가 있는 곳이면 무조건 찾아가 송진을 채취하도록 강압했다. 한마디로 최후의 발악이었으나 문제는 그로 인하여 고통을 받았던 이들은 전쟁의 주체도 아니었던 이 땅의 민중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전쟁을 시작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승리할 가능성이 없음을 잘 알았지만, 그 고통을 철저히 남에게 전가한 것이었다.
 
현재 곳곳에 남아 있는 송진 채취의 흔적은 한마디로 수탈의 생생한 증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수탈도 징용이나 위안부 동원 같은 범죄 행위에 비한다면 그리 크다고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사람은 물자나 자원보다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했던 범죄 행위를 현재의 일본은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위정자들이 나서서 오히려 정당화하는 데 혈안이다. 하나도 바뀌지 않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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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