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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프랜시스 베이컨과 고통의 보편성

오민석 문학평론가 단국대 교수·영문학

오민석 문학평론가 단국대 교수·영문학

20세기의 가장 일탈적이고 급진적인 화가 중의 한 명인 프랜시스 베이컨은 인물화를 많이 그렸다. 그의 인물화에는 대체로 배경이 없다. 그는 배경을 지움으로써 인물 자체에 집중하게 한다. 그의 화폭에서 우리가 만나는 인물들은 온전한 형체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들은 뭉개지고 찢어지고 부풀어 올라 있다. 화폭에서 사라진 어떤 ‘폭력’의 손이 인물들을 절단하고 비틀고 왜곡한다. 인물들은 대부분 빨간색과 검은색 그리고 파란색의 거친 혼합으로 칠해져 있는데, 그것들은 그 자체 피멍이고 상처이며, 피 흘리고 있는 어떤 ‘덩어리’들이다. 그의 인물들을 들여다보면 안으로 숨죽이고 있는 비명이 들린다.
 
그것들은 얻어맞고 채찍질 당하고 무작위로 훼손된 짐승들 혹은 ‘고기’ 덩어리 같다. 존엄한 인간의 몸에 ‘고기’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매우 불경한 일이지만, 베이컨은 “고통받는 인간은 고깃덩어리 같다”고 스스로 말한 바 있다. 『프랜시스 베이컨: 감각의 논리』를 쓴 들뢰즈는 베이컨이 인간의 “동물-되기(becoming-animal)”를 그리고 있다고 설명한다. 들뢰즈가 볼 때, 베이컨의 슬로건은 “고기를 연민하라(Pity the meat)!”이다. 들뢰즈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기야말로 베이컨이 가지고 있는 연민의 주요 대상이다. 고기는 죽은 살(flesh)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살의 모든 고통을 보유하고 있으며 모든 색깔을 띠고 있다. 그것은 살의 발작적인 고통과 취약성(상처받기 쉬움)을 분명히 나타낸다.”
 
베이컨의 ‘사도마조히즘(가학피학증)’적인 고통은 그의 성적 취향과 연관이 있다. 그의 그림의 지워진 배경 속에는 어려서 어머니의 치마와 속옷을 입고 놀다가 아버지에게 혼찌검이 났던 베이컨의 ‘어린아이’가 있다. 그는 동성애자였으며, 그의 오랜 애인이었던 조오지 다이어는 베이컨이 (화가로서의 명성이 정점에 올라) 1971년 10월 파리에서 첫 번째 회고전을 열기 전날 밤 호텔에서 자살을 한다. 그가 죽은 후 베이컨은 강박적으로 다이어의 초상화들을 그렸는데, 그것들에 등장하는 다이어의 모습은 뭉개지고 지워져서, 사람인지, 동물인지 아니면 고깃덩어리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들뢰즈의 말대로 그 그림들 속의 조오지는 “발작적인 고통과 취약성”을 보여준다.
 
베이컨은 자기 그림의 내러티브에서 왜 모든 배경을 지워버렸을까. 그는 왜 모든 맥락을 지워버리고 고깃덩어리 같은 고통의 오브제만 재현했을까. 그리고 사람들은 (성적 취향과 무관하게) 왜 베이컨의 그림에 깊이 공감하며 열광할까. 베이컨은 자신의 성적 취향에 대해 오히려 당당했으며 공개적이었다. 그가 자기 그림의 배경에 숨기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베이컨의 <두 형상>이라는 제목의 그림은 침대 위에서 벌거벗은 채 사랑인지 싸움인지 모를 거친 동작을 하고 있는 두 남성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그가 배경을 지운 것은 자신을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고통의 ‘보편성’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가 지운 맥락 안에는 인간 삶의 모든 내러티브들이 들어갈 수 있다. 그것은 (칼 융의 표현을 빌면) ‘페르소나(가면)’에 의해 가려진 어두운 ‘그림자’의 세계일 수도 있고, 복잡하고 다난한 폭력적 현실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폭력과 위험에 직면해있으며, 그것들에 의해 두들겨 맞고 일그러지며 왜곡된다. 그의 그림은 배경을 지움으로써 거꾸로 인간의 품격을 훼손하는 모든 폭력을 자신의 그림 안으로 끌어 들인다. 그의 그림이 보여주는 파격(폭력성)은 베이컨 자신의 말대로 “현실 자체의 폭력을 리메이크하기 위한 시도”이다.
 
몸은 이런 점에서 상처의 가장 노골적인 지도이다. 말라르메의 싯구대로 “육체는 슬프다.” 베이컨의 그림에 나오는 다이어는, 죽기 전 벗은 채 변기 위에 앉아 있다가 변기에 고통스럽게 구토를 한 후 쓰러진다. 검고 어두운 그의 그림자도 그 앞에 널브러진다.  
 
상처투성이 그의 몸은 ‘동물-되기’로 전이되고 있는 사람의 슬픈 결말을 보여준다. 몸은 고통의 마지막 신호가 기록되는 장소이다. 고통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가령, 늙은 몸은 경외의 대상이면서 곡절 많은 슬픔의 기록이다. 전쟁과 가난과 병마가 스쳐간 육체가 몸 져 누울 때, 마침내 한 우주가 사라진다.  
 
무슨 죽음이든 죽음 앞에서 경망스러워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지상의 모든 장밋빛 뺨들은 수많은 고통 속에서 뭉개지고 지워지고 형체를 잃어간다. 맥락이 필요 없다. 고통의 보편성이 맥락이다.
 
오민석 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 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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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