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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 낭인 없애겠다” 로스쿨 ‘오탈자’ 덫 441명이 울었습니다

로스쿨 삽화

로스쿨 삽화

오탈(五脫)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 후 5년 내 5회 안에 변호사시험(변시)에 합격하지 못한 사람들을 묶어 부르는 말입니다. 이들은 앞으로 영원히 변시에 응시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무슨 사정으로 5년의 시험에서 계속 고배를 마셔야만 했을까요. ‘오탈’들의 지나간 시계태엽을 되감아 봤습니다.
 
A씨(49): 제 인생은 무탈한 편이었습니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도중 우연히 교육 분야에서 꽤 좋은 일자리를 얻게 됐지요. 잊고 있던 법조인의 꿈이 다시 마음을 흔든 건 로스쿨 제도가 들어오면서입니다. 마흔 살이었고 가정도 있었지만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 경험을 쌓은 법조인을 배출한다는 게 원래 로스쿨의 취지였으니까요.  
 
2011년 로스쿨 입학 후 6개월 만에 불행이 덮쳤습니다. 둘째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숨을 못 쉬는 겁니다. 3년 동안 총 일곱 번의 심장수술을 받았어요. 아들을 간신히 회복 단계로 올려놓고 한숨 돌리려는 순간 이번엔 아내가 암에 걸렸습니다. 안정을 찾을 때까지 변시 응시 기간을 늦춰보려고 해도 사정을 봐주지 않더군요. 과외 아르바이트를 뛰며 치료비를 마련하느라 시험은 늘 뒷전이었고 그 결과는 오탈이었습니다. 왜 저는 하필이면 인생에서 가장 정신없고 힘든 시기에 시험을 준비하게 됐을까요.
 
B씨(41): 공공기관에 취업한 지금도 매일 한숨을 쉽니다. 8년간 변시를 준비하며 진 빚을 아직도 갚고 있거든요. 로스쿨에 ‘금수저’만 들어간다는 오해가 제일 황당합니다. 전남대 로스쿨을 다닌 저는 한 학기당 500만원의 학비를 스스로 충당해야 했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장학금을 받을 수 없는 어중간한 처지였거든요. 변시 학원은 다닐 엄두도 못 냈죠. 학비 대출로 3600만원이란 큰 빚을 지게 됐습니다. 그나마 국립대라서 이 정도지요. 문제는 로스쿨을 졸업하고 나서였습니다. 원금과 이자, 생활비까지 한 달에 150만원가량의 돈이 나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생활의 중심은 늘 아르바이트였습니다. 다섯 번째 불합격 통지서를 받아든 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만일 중간에 돈을 좀 모아놓고 제대로 공부에 임할 공백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좀 더 무리해서라도 서울에 있는 변시 학원에 다녔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변호사 시험 응시 기회를 모두 놓친 후 유튜브에서 ‘오탈 누나’로 활동하고 있는 탁지혜씨. [탁지혜씨 유튜브 캡처]

변호사 시험 응시 기회를 모두 놓친 후 유튜브에서 ‘오탈 누나’로 활동하고 있는 탁지혜씨. [탁지혜씨 유튜브 캡처]

탁지혜(37)씨: 연세대 법대 졸업 후 부산대 로스쿨에 들어갔습니다. 모의고사 점수가 상위권이어서 처음 낙방 땐 꽤나 충격을 받았어요. 졸업 후엔 혼자 고립돼 공부하다 보니 정보를 얻을 수 없었어요. 저는 부족한 과목은 기초부터 다져야 하는 스타일인데, 5년 안에 합격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땜질’식으로 공부했습니다. 마지막 시험 때가 돼서야 원래 내 식대로 공부했는데, 오히려 성적이 올랐지만 이미 때는 늦었죠. 공부에도 다 각자의 리듬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오탈제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에게만 유리하게 만들어진 측면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저처럼 실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시작한 유튜브가 어느덧 구독자 1700명을 넘었습니다. 응원하는 댓글도 있지만 ‘오탈 주제에 불만만 많다’는 조롱성 악플도 달리더군요. 그분들에게 묻고 싶어요. 수능을 다섯 번만 보게 해도 괜찮은지. 로스쿨생들만 왜 개인이 시험 볼 자유와 권리를 마음대로 행사할 수 없나요.
 
올해로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째입니다. 처음 로스쿨을 국내에 들여오면서 설명한 취지는 이랬습니다. ‘고시 낭인 양산에 따른 부작용을 막고 사법부의 획일화에서 벗어나 법조인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변호사 수 증가를 통해 법률 비용을 절감한다.’ 그 취지는 제대로 지켜지고 있을까요.
 
◆“로스쿨이 고시학원 변모” 지적=10년간 1만 명이 넘는 법조인이 배출됐지만 동시에 법조인이 될 기회를 영원히 박탈당한 오탈자 441명(법무부 추산)도 그림자처럼 남았습니다. 변시 합격률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지면서 그 수는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사시 낭인의 자리를 오탈자들이 채운 셈입니다. 이들은 질병이나 출산·생업을 이유로 시험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5년 제한을 둔 것은 위헌이라며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에 관련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입니다.
 
로스쿨이 ‘고시 학원’처럼 변모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최상원 법학전문대학원원우협의회 회장은 “과거 사법시험 합격에만 몰두해 사회적 감수성이 부족한 채 법조인이 되는 걸 막기 위해 로스쿨을 들인 건데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법조계의 해결책은 각각입니다. 로스쿨 단체는 변호사도 절대평가를 바탕으로 한 자격시험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에 대한변협 측은 지금도 시장 포화 상태인데 변호사 수를 더욱 늘리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로스쿨을 통폐합하면 변시 낭인 문제도 해결될 거라는 겁니다. 법무부는 “해결책을 강구하겠다”는 입장만 반복합니다. 이런 가운데 26일 제8회 변시 합격자가 발표됩니다. 응시생 3617명 중 절반은 변호사로, 일부는 변시 낭인으로, 나머지는 ‘오탈’의 대열로 들어서게 됩니다. 
 
박사라·백희연 기자 park.sara@joongang.co.kr
 
※이 기사는 법조계의 각종 이슈와 트렌드를 중앙일보 법조팀 기자들의 시각으로 재조명한 것입니다. 중앙일보 온라인판 ‘야단법석(야단法석)’ 코너에서 볼 수 있으며 경어체를 그대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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