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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동석의 이코노믹스] 복지 지출 더 늘리지 않아도 곧 선진국 수준으로 간다

‘정부 예산 500조 시대’ 국가 재정의 진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문재인 정부의 내년 예산이 사상 처음으로 500조원을 넘어선다. 복지 확대와 경기부양을 위한 확장적 재정이다. 보수 진영에선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반면에 좌파적 진보진영의 입장은 다르다. 정부 역할의 축소를 외치는 우파적 보수진영과 달리 정부 역할의 확대를 주장한다. 어떤 신념이 현실의 정책 효과를 더 높일 수 있을까. 역사적 경험에 비춰보면 재정 여력에 따라 성과는 달라진다. 재정 여력이 충분할 때는 진보진영이, 반대로 재정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는 보수진영이 현실적 성과를 얻어낸다.
 
현재 우리 사회는 좌우 이념 대립 속에서 동일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한쪽은 지금보다 더 확장적 재정 정책을 요구하고, 또 다른 한쪽은 긴축적 재정정책을 주문한다. 왜 이러한 인식 차이가 나타날까. 이 의문을 풀지 않고선 우리 내부의 경제적 이념 차이를 쉽게 극복할 수 없다. 국가 재정에 대한 진단과 인식이 통일되지 않고서는 정부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적 인식이 수렴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재정에 대한 관점의 차이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진보진영의 정책적 신념을 뒷받침하는 재정에 대한 인식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한국의 재정 건전성은 OECD 국가 최고 수준이기에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 여력이 충분하다는 인식이다. 둘째,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지출 비율은 OECD 평균보다 약 10%포인트 낮기에 복지 지출을 계속 늘려야 한다는 관점이다. 셋째, 한국의 GDP 대비 정부 규모는 OECD 평균보다 상당히 낮기에 정부와 공공부문을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진보 진영의 이런 인식에 대해 반론의 논거들을 차례로 제기한다.
 
우선 한국의 재정 건전성은 과연 세계 최고 수준인가. 재정 건전성의 국제 비교에서 최근 널리 사용되는 지표는 GDP 대비 정부채무(일반정부 총채무) 비율이다. 2017년 현재 OECD 평균은 80.9%이고 한국은 44.5%로 36개 OECD 국가 중 아홉 번째로 양호하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재정 여력을 뒷받침하는 것은 정부의 조세권과 발권력인데, 기축통화가 아닌 국가의 발권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만약 달러화·유로화·파운드화·엔화 등 기축통화 국가들을 제외한다면 OECD 정부채무 비율의 평균은 54.5%에 불과하다. 비 기축통화 국가인 스웨덴·뉴질랜드·스위스·호주 등은 한국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두 번째 의문은 ‘한국의 현행 복지 지출 규모가 과연 적은가’다. 지난해 GDP 대비 복지 지출 규모는 OECD 평균이 21.5%인데 한국은 11.1%에 불과하다. 그러나 여기에도 유의해야 할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OECD 선진국들은 이미 1950년대부터 인구 고령화를 겪으며 복지국가의 경험이 우리보다 2∼3세대 앞선다. 따라서 우리는 OECD 국가의 현재 상황보다는 이전의 경험과 통계를 비교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지난해 현재 한국의 노인부양률(경제활동인구 대비 노인 비율)은 19.6%인데, OECD 국가들이 이 비율에 도달했던 시기에 복지지출 비율이 얼마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스위스(1980)·일본(1993)·그리스(1980)·포르투갈(1989)은 모두 1980~90년대 초반에 이 비율(19.6%)에 도달했다.
 
복지 지출에 대해서는 이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가 중요하다. 복지정책을 수립할 때는 OECD 국가의 과거뿐만 아니라 우리의 미래 전망도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은 인구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돼 2060년에는 노인부양률이 82.6%까지 치솟아 전 세계 그 어느 국가도 경험하지 않은 비율에 진입한다. 이에 따라 복지 지출 규모는 2060년 27.8%로 급격히 증가한다. 새로운 복지정책을 더는 도입하지 않고 인구구조 변화만을 반영하더라도, 복지 지출 비중은 2060년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처럼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한다는 뜻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이는 필연적으로 2060년의 정부채무 비율을 200% 수준으로 증가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제 세 번째 의문, ‘한국은 정부와 공공부문을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하는가’로 넘어가 보자. 지난해 한국의 GDP 대비 정부 규모는 33.3%에 불과해 OECD 평균치 42.8%에 약 10%포인트 작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우리의 정부 규모가 작은 이유는 복지 지출의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만약 정부 규모에서 복지 지출을 제외한다면, 지난해 한국은 22.2%로 OECD 평균 21.4%보다 0.8%포인트 높다. 복지재정을 제외할 때 정부 규모는 일본(17.0)·호주(18.5)·독일(18.8)·미국(19.1)·영국(19.4)보다 더 크다. 더구나 여타 어느 나라보다 거대한 공기업 비중을 고려하면 정부 규모는 훨씬 더 커진다.
 
지금까지 우리는 OECD 통계를 단순 비교하며 세 가지 의문을 분석했다. 복잡한 학술 분석은 더 복잡한 논의를 불러일으키겠지만, 단순한 분석의 이 같은 결론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 이제 우리는 국가재정의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 세 가지 의문을 중심으로 관련 자료와 통계를 모두 공론의 장에 올려놓아야 한다.
 
국가재정에 대한 진단은 우리의 미래 운명을 좌우하기 때문에 반드시 진영을 불문하고 우리가 모두 공동의 인식을 가져야 한다. 재정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OECD 국가들의 오랜 경험에서 볼 때,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정치 중립적 공론의 장은 재정 건전성의 유지에 대단히 중요하다. 정말 정치이념의 유불리를 따질 때가 아니다.
 
재정 포퓰리즘에 대한 궁극적 해법
타인과 함께 공유하는 자원은 내가 많이 쓸수록 이득이다. 다른 사람의 희생으로 나의 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얘기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국가 재정이 대표적이다. 재정사업의 혜택은 소수에게 집중되지만, 그 부담은 국민 전체로 분산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이를 잘 알기에 선거구의 표밭 관리를 비롯해 당장의 현실에 영합하며 미래를 약탈하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빠져든다. 국민의 투표로 권력이 유지되는 국민주권에서는 이런 포퓰리즘이 본질에서 내재해 있다.
 
‘완전고용을 위한 경기부양을 위해서라면 재정적자는 언제든 용인돼야 한다’는 케인스주의(Keynesian)의 주장은 재정 포퓰리즘에 대한 현란한 가면이다. OECD 국가들은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재정 건전성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일부 국가들은 재정을 슬기롭고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지만, 또 다른 일부 국가들은 재정위기에 노출되고 있다.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재정 총량(재정적자, 정부부채, 정부지출 등)에 대한 엄격한 준칙이 필요하다. 일시적 재정적자는 용인되지만, 3∼5년 단위로 수지균형은 반드시 달성돼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인들의 포퓰리즘 본색이 정치 중립적 공론의 장에서 낱낱이 드러날 수 있어야 한다. OECD 국가들이 오랜 경험에서 엄격한 재정준칙과 이를 감시하는 정치 중립적 재정기구를 함께 운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 서울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장을 지내면서 재정 건전성 연구가 주 관심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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