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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북한, 막말과 협박으로 대화의 판 깨선 곤란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대한민국에 대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촉진자’ 행세를 할 게 아니라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돼야 한다”고 했다. ‘오지랖 넓다’ 는 ‘무슨 일이든 앞장서 간섭·참견하고 다니는 것’을 뜻하는 모욕적인 언사다. ‘우리 민족끼리’ 등 북한 매체들도 연일 정부에 “북남관계 발전을 위한 의지와 노력은 꼬물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미국에 겁먹고 기눌린 줏대 없는 처사”등 원색적인 비방을 쏟아내고 있다.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미국의 ‘비핵화 빅딜’ 요구를 일축하면서 올해 말까지 버티기로 나갈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에겐 “‘고난의 행군’을 감당할 수 있도록 제재 해제와 경제 지원에 나서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과 북한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면서 자신들 입맛에 맞게 길들이겠다는 속내를 노골화한 것이나 다름없다. 보수·진보 간 ‘남남갈등’을 부채질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북 저자세’ 논란과 외교적 갈등까지 감수하면서 그간 북한을 배려해 왔다. 김정은이 미국의 ‘화염과 분노’식 군사행동을 모면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대화할 기회를 잡은 데엔 문 대통령의 노력이 큰 역할을 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북한은 문 정부에 막말을 퍼부으며 제재 전선에서 이탈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문 정부가 1년 앞으로 다가온 총선을 의식해 무슨 모욕을 당해도 자신들과 대화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할 것이란 계산도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손해 보는 건 북한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북한이 얄팍한 꼼수를 부릴수록 국민의 여론이 나빠져 문 정부의 대북 정책은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또 북한의 핵에 가장 큰 위협을 받는 당사자도 한국이다. 책임 있는 유엔 가입국이자 미국의 ‘린치핀’ 동맹인 한국은 북한이 핵을 머리에 이고 있는 한 국제규범을 무시하고 ‘민족 공조’에 나설 수 없다. 북한은 이런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핵을 포기하지 않고, 한국의 도움을 받아 체제를 지탱하겠다는 미혹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안 그러면 문 정부의 입지만 좁혀 제재의 고통과 고립만 심화할 뿐이다.
 
정부의 절도있는 대응도 중요하다. 북한과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지만, 국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도를 넘은 언행엔 엄정한 대응이 필요하다. 지난 2년간 북한은 우리를 향해 수없이 많은 비난을 쏟아냈지만 정부는 말 한마디 못하고 지나가기 일쑤였다. 지난해 9월 평양을 찾은 우리 대기업 총수들에게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냉면이 목구멍에 넘어가느냐”는 막말을 했을때조차 쉬쉬하기 바빴다. 이런 행태가 북한이 우리를 ‘봉’으로 여기게 한 것 아니냐는 성찰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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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