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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경유차 폐차보조금 받아 또 경유차 사더라

천권필 환경팀 기자

천권필 환경팀 기자

2007년식 디젤 스포츠 유틸리티 차(SUV)를 타는 A씨. 얼마 전 자신의 차가 자동차 배출가스 5등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난 2월 미세먼지 특별법 시행으로 5등급 노후차는 비상저감 조치 발령 때는 서울 시내를 다닐 수 없다. 6월부터는 운행 제한 지역이 수도권으로 확대된다. 고민 끝에 A씨는 조기폐차를 선택했다. 그는 고철값과 조기폐차 보조금으로 200만 원 정도를 받았다.
 
미세먼지가 사회적 재난 수준으로 심각해지면서 요즘 가장 바쁜 곳이 있다. 바로 폐차장이다. 정부가 미세먼지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노후 경유차를 퇴출하기 위해 조기폐차 보조금 예산을 대폭 늘렸기 때문이다. 조기폐차 보조금은 정상 운행이 가능한 노후차를 조기에 폐차할 때 지원하는 돈이다. 올해 환경부 예산만 1207억원이다. “미세먼지 때문에 그동안 고쳐 쓰던 노후차들이 죄다 폐차장으로 가면서 차량 정비소엔 파리만 날린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환경부는 조기폐차 등을 통해 현재 260여만대 수준인 노후 경유차 가운데 60% 이상을 2022년까지 퇴출하기로 했다. 올해 조기폐차 목표는 15만 대로 지난해보다 20% 이상 늘었다. 환경부 관계자는 “추경 예산에 따라 올해 조기폐차 목표치가 40만 대까지도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렇다면 조기 폐차 정책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까. 지난달 13일 경기도의 한 폐차업체를 찾았다. 조기폐차된 차들이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날도 검사를 마친 80여 대의 조기폐차 차량이 입고됐다. 두 대는 들어오자마자 이집트 딜러에게 팔렸다.
 
폐차업체 직원은 “요즘에는 주로 아프리카 가나나 이집트에서 온 딜러들이 돈다발을 들고 다니면서 폐차된 차량을 산다”며 “엔진 등 부품을 가져간 뒤에 현지에서 재조립해 판매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미세먼지 주범으로 몰려 퇴출당한 차들이 지구 반대편에서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는 셈이다. 폐차 보조금은 아프리카와 중동 딜러의 지갑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는 꼴이다.
 
불편한 진실은 또 있다. 조기폐차가 본격적으로 늘어난 건 2015년부터다. 정부는 최근 4년 동안 막대한 보조금 예산을 투입해 28만 대를 조기 폐차했다. 하지만, 경유차 등록 대수는 862만 대(2015년)에서 993만 대(2018년)로 오히려 131만 대나 증가했다. 정부의 노후 경유차 퇴출 정책이 전체 경유차 감소로는 이어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가장 큰 원인은 경유차를 대체할 만한 수단이 아직 자리 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후 경유차를 폐차한 다음 보조금에 돈을 얹어 중고나 새 경유차를 사는 차주도 적지 않았다. 업무용 승합차를 조기폐차한 장영호(34) 씨는 “큰 차는 디젤밖에 없는 데다가 경유차가 연비도 낫고 기름값도 싸니까 또 경유차를 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새 경유차가 노후차보다는 미세먼지를 덜 배출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조기폐차가 ‘반쪽’ 정책이 되지 않으려면 노후차를 폐차하고 전기차 등 친환경차를 구매하는 차주에게 확실한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벨기에 브뤼셀에서는 노후차를 폐차한 차주들에게 대중교통 바우처를 혜택으로 주고 있는데, 이것도 참고할 만 하다. 조기폐차가 더는 공무원들의 실적 올리기용 정책이 돼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천권필 환경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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