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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금 대출 갚으려 e메일로 글 연재해 수만 팬덤 얻은 작가

[장은수의 퍼스펙티브] 출판의 ‘파괴적 혁신’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당신의 e메일로 매일 글을 보내드립니다.”
 

월 1만원에 e메일 글 보낸 이슬아
연재 글로 엮은 책 베스트셀러 돼
‘연결의 힘’이 ‘콘텐트의 힘’ 압도
‘연결’이 출판을 변혁시키고 있어

2018년 2월 7일, 한 청년이 세상에 제안을 던졌다. 자신이 쓰는 나날의 글을 e메일로 보낼 테니, 한 달 1만원에 구독해 달라는 것이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주일에 5회, 한 달 20회니까 편당 500원꼴이었다. 청년은 막 학자금 대출 2500만원을 상환하라는 문자를 받은 참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잡지사 기자, 글쓰기 교사, 누드모델 등 이런저런 일을 해왔지만, 대출금을 갚을 길이 없어 수를 낸 것이다.
 
페이스북에 처음 글이 올라왔을 때를 선명하게 기억한다. “아무도 안 청탁했지만 쓴다!” “태산 같은 학자금 대출! 티끌 모아 갚는다, 아자!” “재미도, 감동도 없을 수 있습니다.” 절실하나 촌스러운 문구들에 둘러싸여, 오토바이를 탄 여성이 앉아 있었다.시도 자체가 신선했다. 곧바로 구독을 신청한 후 “플랫폼이 무슨 필요? 응원하는 마음으로 일단 구독!!!” 하고 공유도 했다.
 
얼마 후 “스물일곱 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혼자 자는 게 무섭다”로 시작되는 첫 번째 글이 e메일로 배달되었다. ‘일간 이슬아’의 출발이었다. 이슬아의 글에는 피부로 느끼지만 차마 혀로 옮기지 못한 것들에 입술을 들이대는 무서운 감성이 있었다. 사회의 금도 너머에 존재하는 것에 언어를 부여하는 ‘자유의 실천’이었다. ‘일간 이슬아’를 구독하는 독자들이라면 분명히 어떤 해방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슬아는 여섯 달 동안 연재를 계속했는데, 구독자가 수천 명에 이르렀다. 학자금 대출을 모두 갚은 것은 물론이고, “출판사나 언론의 간택만 기다리는” 무명작가에서 수만 명의 팬덤을 거느린 인기 작가로 거듭났다. 헤엄이라는 출판사를 차린 후, 연재 글을 모아 펴낸 『일간 이슬아 수필집』은 1만 부가 팔렸다. 지난해 독립서점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자 가장 추천하는 책이 되기도 했다.
 
사회를 바꾸는 거대한 움직임도 ‘한 사람 혁명’에서 시작된다. 세계의 축이 과거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때, 누군가는 본능적 또는 의도적으로 그 기척을 읽고, 재주와 힘을 다해 작은 실천을 기획한 후 사람들 사이로 들이민다. 그다음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면서 낡은 사회적 관행을 순식간에 무너뜨린다. 처음엔 너무나 시시하고 하찮아 보여, 사람들 대부분은 이 일의 진정한 의미를 좀처럼 눈치채지 못한다. 하지만 ‘일간 이슬아’는 오늘날 출판 같은 콘텐트 산업에서 일어나는 ‘파괴적 혁신’ 운동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구독’이 출판을 바꾸고 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 ‘연결’이 출판을 바꾸고 있다. 구독은 초연결 사회에 맞추어 출판 같은 콘텐트 비즈니스의 본질을 다시 정의한 것뿐이다. 콘텐트 생산자들이 아직도 걸려드는 덫이 있다. 가령, 좋은 콘텐트를 발굴해 잘 편집해 서점에 내놓으면 독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독자가 누군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제품을 일단 내보낸 후, 광고나 이벤트 같은 판매 활동을 통해 독자를 찾으려 한다. 대부분은 실패해서 손익 분기점에 이르지 못하지만, 좋은 책을 냈다는 문화적 자부심과 함께 가끔 터지는 눈부신 베스트셀러가 전체 비즈니스를 구원할 것을 기대한다. 출판을 ‘9대 1 비즈니스’라고 부르는 이유다. 똑똑한 책 하나가 집안 전체의 살림을 유지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바라트 아난드 하버드대 교수는 『콘텐트의 미래』에서 이러한 선입견을 ‘콘텐트 함정’이라고 불렀다. 작가나 편집자는 콘텐트 자체만으로 자신을 알리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많은 콘텐트가 독자들의 주의력을 빼앗는 오늘날 같은 환경에서는 ‘연결의 힘’이 ‘콘텐트의 힘’을 압도한다. 콘텐트의 바다에 무작정 물방울을 더하는 대신, 독자와 연결을 먼저 만들고 ‘적절한 콘텐트’로 그들을 만족하게 하는 쪽이 더 낫다.
 
당신이 적절한 콘텐트를 가지고 있고, 독자와 연결을 구축할 힘이 있다면, 눈 밝은 편집자의 간택을 기다리지 말고 이슬아처럼 주변 친구를 향해 날개를 젓는 쪽을 택해야 한다. 『구독과 ‘좋아요’의 경제학』의 저자 티엔 추오는 ‘구독 경제’에선 연결이 먼저고 콘텐트는 다음이라고 말한다. 소수라 할지라도 독자와 연결이 이루어진 뒤엔 “날마다 뭐라도 써서 보내면 된다.” 이로써 취향이 맞는 열광적 구독자 네트워크가 형성되면, 연결에 연결이 이어지면서 당신의 작은 날갯짓이 세상을 뒤엎을 폭풍으로 변한다. 사례는 이미 넘친다.
 
2017년 5월, 수신지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만화 ‘며느라기’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가부장제 아래에서 불편한 일상을 견디는 며느리들의 감각이 이로써 솔직한 표현을 얻었다. 공유의 폭풍이 일어났고,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받았다. 6개월 만에 구독자 수가 인스타그램 42만 명, 페이스북 22만5000명에 이르렀다. 귤프레스라는 출판사를 등록한 후 연재물을 묶어 출판한 단행본은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2018년에 가장 많이 팔린 책 중 하나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다. 지난해 2월, 이 책은 텀블벅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처음 세상에 나왔다. 일회성이지만, 독자를 먼저 모은 후, 책은 나중에 출판했다는 점에서 본질적 차이는 없다. 이 책은 독립서점을 통해 인기를 끌다가, 편집자 한 사람이 세련되게 다듬은 후 정식 출판과정을 밟았다. 편집의 힘이 연결의 힘에 촉매 작용을 하면서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물론, 에세이 같은 가벼운 책만 구독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학술서 출판은 독자의 외면 속에서 서서히 침몰하고 있다. 하지만 서양철학 공부 모임인 전기가오리가 새로운 모델을 실험 중이다. 전기가오리는 월 1만원 이상 후원한 회원을 대상으로 자신들이 연구하고 번역해서 출판한 도서를 집으로 배송해 준다. 운영자의 집에서 일요일마다 출판 도서에 대한 해설을 강의하고, 목요일에는 후원 회원을 직접 방문해 해설하는 질의응답 서비스도 제공한다. 구독을 바탕으로 출판과 교육을 병행하는 셈이다. 현재 후원자만 1700명에 달하는 등 서점 판매보다 구독 수입이 더 많다. ‘플라톤 전집’과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을 번역하는 정암학당도 책은 출판사와 제휴해 펴내지만, 운영은 비슷하게 이루어진다. 구독이 위기에 빠진 학술 출판에 새로운 길을 열고 있다.
 
구독을 작동시키는 원리는 세 가지인 듯하다. 첫째, 연결을 작동시키는 방아쇠 역할을 하는 가치. 2016년 화제가 되었던 『우리에게 언어가 필요하다』의 이민경은 무명의 대학원생이었지만, 가부장제 사회에서 일상화된 여혐(여성 혐오)에 대항하는 대화 매뉴얼을 기획한 후,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단숨에 4000만 원의 제작비를 모았다.
 
둘째, 지속적 관계를 생산할 수 있는 콘텐트 생산구조. 친구 사이는 매일 만나 비슷한 이야기를 해도 즐겁다. 유행을 좇아 다양한 콘텐트를 제공할 것이 아니라 독자 취향을 노리는 새로운 콘텐트를 반복 생산하는 쪽이 낫다. 전기가오리는 ‘스탠퍼드 철학 백과’의 항목들을 번역 출판해서 정기적으로 배송한다.
 
셋째, 공동체 의식을 만들어주는 다양한 서비스. 저자 만남, 공부 모임, 강의 및 강연, 별책이나 관련 상품 등 고객 체험을 증진하는 갖가지 기획을 통해 독자 충성도를 높임으로써 이탈률을 낮추어 준다. 세계 문학 전집에 기반을 둔 민음북클럽은 자체 쇼핑몰 등에서 다양한 고객 가치를 충족함으로써 해마다 패밀리데이에 수천 명 독자를 모으는 데 10년 가까이 성공 중이다.
 
콘텐트 생산자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살 수만 있다면 분명히 행복할 것이다. ‘일간 이슬아’나 전기가오리는 구독을 통해 조금씩 그 꿈을 실현했으며, 이러한 일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기성 출판 역시 여기에서 미래를 배워야 할 것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리셋 코리아 문화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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