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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의 나공⑤] 딱딱한 KDI가 달라졌다!… ‘책상물림’ 박사님들의 유튜버 도전

사회자가 없다. 발표대가 사라졌다. ‘텍스트’는 줄었다. 질의응답이 스마트해졌다. 
 
지난 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한국개발연구원(KDI) 정책토론회 얘기다. 이날 토론회는 ‘선진국형 서비스산업 발전 방향’이란 주제로 열렸다. 그런데 기존처럼 일방적이고, 딱딱한 토론회 분위기와 사뭇 달랐다. 한 발표를 들어봤다.
 
‘사회자 소개 멘트 없이 40초 분량 동영상부터 흘러간다. 어두운 무대 가운데 홀로 조명을 비춘 공간으로 발표자인 김인경 KDI 연구위원이 등장한다. 발표대나 강연자료 없이 자료 화면과 청중만 바라보며 발표를 이어간다. 무엇보다 자료 내용에 ‘글’이 거의 없다. 사진과 인포그래픽, 동영상으로 채운 강연 내용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21분이 흘렀다. 토론회마다 ‘박사님’ 하고 싶은 얘기로 가득 채우다 훌쩍 넘기기 일쑤인 20분 강연 시간을 거의 맞췄다.’
 
이날 진행한 토론회가 모두 같은 식이었다. 발표자들은 토론회 준비를 위해 지상파 방송사 PD와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에게 2시간씩 리허설 ‘특훈’을 받았다. 손발 짓부터 억양ㆍ발음ㆍ눈매까지 1대1 교정받는 식이었다. 김인경 연구위원은 “예전엔 발표 자료를 죽 읽어내려가기만 하면 됐는데 기본 대사를 외워야 하고, 청중 반응까지 챙겨가며 발표하려니 어려웠다”고 말했다.
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KDI 정책토론회에서 청중이 스마트폰을 통해 올린 질문을 바탕으로 질의응답이 이어지고 있다. [KDI]

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KDI 정책토론회에서 청중이 스마트폰을 통해 올린 질문을 바탕으로 질의응답이 이어지고 있다. [KDI]

어수선하기 쉬운 질의응답 시간은 오히려 조용했다. 300여명의 청중이 스마트폰을 들고 저마다 토론회 웹페이지에 질문을 쏟아냈다. 해당 질문 중 청중에게 ‘좋아요’를 많이 받은 질문이 발표 화면에 노출되는 식이었다. 한 참석자는 “한정된 시간에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하는데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질문에 실시간으로 답해줘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토론회를 준비한 김용성 KDI 선임연구위원은 “세계 최대 지식 콘퍼런스인 ‘TED’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세계은행(WB)이나 브루킹스연구소 같은 곳에서 여는 최신 토론회와 영상 보고서를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KDI는 ‘국가대표’ 국책연구기관으로 꼽힌다. 정부출연금(국민 세금) 과 자체 수입으로 운영한다. 1971년 설립해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같이 한국 경제의 큰 밑그림을 짜는 데 기여해왔다. 수준급 보고서와 정책 제안으로 인정받았지만, 수백장에 이르는 딱딱한 연구 보고서나 일방적인 세미나가 상징하는 것처럼 ‘책상물림’ 연구기관이란 인식도 강했다.
이기영 KDI 연구위원이 올 1월 발간한 영상 보고서에서 보고서 내용을 설멍하고 있다. [KDI]

이기영 KDI 연구위원이 올 1월 발간한 영상 보고서에서 보고서 내용을 설멍하고 있다. [KDI]

그런 KDI가 영상 시대를 맞아 확 달라졌다. 대표적인 게 ‘유튜브 보고서’ 제작 실험이다. KDI는 2017년부터 보고서 중 일부를 영상 보고서로 동시 제작해왔다. 지난해에만 20여건 이상 만들었다. 자체 영상 스튜디오에서 제작하기도 하고 연구진이 직접 현장 취재에 나서거나 대담을 하는 등 다양한 형식이다. 캐주얼 차림의 연구진이 설명하는 동안 예능 프로그램에서나 나올법한 자막이 흐르기도 한다. 미디어ㆍ연극영화학ㆍ웹디자인ㆍ문헌정보학 등 전공자 9명으로 구성한 ‘디지털 커뮤니케이션팀’이 이 작업을 전담해 연구원들과 협업한다.
KDI가 영상 보고서 제작에 활용하는 자체 스튜디오. [KDI]

KDI가 영상 보고서 제작에 활용하는 자체 스튜디오. [KDI]

 
처음엔 ‘연구만 하면 되지 영상까지 만들어야 하나’ 싶어 가욋일로 여겼던 연구원도 많았지만, 요즘엔 달라졌다고 한다. 한 KDI 연구위원은 “학계는 물론 네티즌에게 ‘어려운 내용인데 쉽게 이해시켜줘 고맙다’는 반응이 많다”며 “스스로 '연구만 할 줄 알았던 책상물림이었구나'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최정표 KDI 원장은 “우리끼리만 아는 연구 성과는 의미 없다”며 “연구가 반, 홍보가 반”이라고 강조했다.
나공
[나공]은 “나는 공무원이다”의 준말입니다. 세종시 경제 부처를 중심으로 세금 아깝지 않게 뛰는 공무원·공공기관 이야기를 전합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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