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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척 칼치기하는 당신에게

[문희철의 졸음쉼터] 차차설(借車說) 
 
 
내가 집이 가난해서 차가 없으므로 가끔 공유차를 빌려서 타는데, 여위고 둔하여 느린 한국GM의 스파크를 타면 비록 급한 일이 있어서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도 속도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칼치기(무리한 차선변경)하는 아반떼스포츠나 2개 차선을 물고 다니는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를 만나면 조용히 맨 끝으로 차선 변경하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해서 후회하는 일이 적었다.
 
하지만 발이 높고 귀가 날카로운 제네시스의 스포츠세단 G70에 올라타서 의기양양하게 마음대로 채찍질하면 언덕과 골짜기가 평지처럼 보이니 심히 장쾌하였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과속으로 충돌할까봐 근심을 면치 못하였다.
 
아! 운전자의 마음이 바뀌는 것이 이와 같을까? 하루아침 스티어링휠을 바꿔 잡는 것도 이와 같은데, 하물며 자신의 차량을 소유한 오너드라이버라면 오죽하겠는가.
 
심야에 번호판을 떼고 과속질주하다 경찰에게 적발된 차량. [중앙포토]

심야에 번호판을 떼고 과속질주하다 경찰에게 적발된 차량. [중앙포토]

 
그러나 운전자가 가진 것은 하나도 빌리지 않은 게 없다. 부품사는 물론 자동차 할부금융사, 자동차보험사, 그리고 카카오내비의 힘을 빌려서 높고 부귀한 차량을 소유했다. 당장 대출 없이 본인 명의로 신차를 뽑았다고 해도, 언젠가 중고차로 팔게 된다면 미래의 중고차로부터 권세를 빌려온 셈이다. 또 중고차가 렌터카가 되고, 렌터카가 대포차가 된다면 신차 차주도 이들로부터 잠깐 자동차를 빌려온 것이다.
 
그 빌린 곳이 많은데도 자동차등록증상 자신이 차주라는 점만 생각하고 사회간접자본이나 도로기반시설을 함부로 다루니, 어찌 미혹(迷惑·홀려서 정신을 차리지 못함)한 일이 아니겠는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7일 백화원에 입장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내린 차의 휠에 롤스로이스의 R(원 안)이 보인다. [사진 미 국무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7일 백화원에 입장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내린 차의 휠에 롤스로이스의 R(원 안)이 보인다. [사진 미 국무부]

가수 박유천 씨가 삼성동에서 롤스로이스에 황하나 씨를 태워보내고 있다. [사진 보배드림]

가수 박유천 씨가 삼성동에서 롤스로이스에 황하나 씨를 태워보내고 있다. [사진 보배드림]

 
그러다가도 잠깐 사이에 할부금을 체납했다거나 구설수에 오르면 빌린 차량이 도로 돌아가게 된다. 만방(萬邦)의 롤스로이스 고스트를 타고 데이트하던 황하나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도 외톨이가 됐다. 롤스로이스팬텀·벤츠리무진·렉서스LX570 등 백승(百乘·100대의 자동차)을 가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유엔(UN) 안전보장위원회 조사를 받는다. 하물며 그보다 더 미약한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운전자는 두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문희철 산업팀 기자

문희철 산업팀 기자

맹자가 일컫기를 ‘남의 것을 장기렌트하고 있으면서 돌려주지 않는다면, 자신의 것이라고 오인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였다. 여기에 느낀 바가 있어서 차차설(借車說)을 지어 그 뜻을 넓히노라. (※이곡 ‘차마설’ 패러디)
문희철 산업1팀 기자 reporter@joongang.co.kr
 
 
졸음쉼터
[원문] 이곡의 '차마설(借馬說)'
『차마설(借馬說), 가정집(稼亭集) 제7권』 
 
余(여)는 家貧無馬(가빈무마)하여 或借以乘之(혹차이승지)한데 得駑且者(득노차유자)면 事雖急(사수급)이라도 不敢加策(불감가책)하고 兢兢然(긍긍연)하여 若將蹶(약장궐질)하다가 値溝塹(치구참)이면 則下(즉하)라. 
故鮮有悔(고선유회)하나 得蹄高耳銳駿且者(득제고이예준차사자)면 陽陽然(양양연)하여 肆志着鞭(자지착편)하여 縱(종피)면 平時稜谷(평시능곡)하니 甚可快也(심가쾌야)라. 然(연)이나 或未免危墮之患(혹미면위추지환)이라. 
噫(희)라, 人情之移易(인정지이역)이 一至此邪(일지차사)아. 借物以備一朝之用(차물이비일조지용)이 尙猶如此(상유여차)어든 況其眞有者乎(황기진유자호)아. 
然(연)이나 人之所有(인지소유)가 孰爲不借者(숙위불차자)리오. 君(군)은 借力於民而尊富(차력어민이존부)하고 臣(신)은 借勢於君(차세어군)하여 而寵貴(이총귀)라. 子之於父(자지어부)하고 婦之於夫(부지어부)하며 婢僕之於主(비복지어주)라 其所借亦深且多(기소차역심차다)하여 率以爲己有(솔이위기유)하고 而終莫之省(이종막지성)하니 豈非惑也(기비혹야)리오. 
苟或須臾之頃(구혹수유지경)이라도 還其所借(환기소차)면 則萬邦之君(만방지군)이라도 爲獨夫(위독부)요 百乘之家(백승지가)라도 爲孤臣(위고신)이리니 況微者邪(황미자사)아. 
孟子曰(맹자왈), 久假而不歸(구가이불귀)하면 惡知其非有也(오지기비유야)인저. 余(여)가 於此有感焉(어차유감언)이라 作借馬說(작차마설)하여 以廣其意云(이광기의운)이라.
 
내가 집이 가난해서 말이 없으므로 혹 빌려서 타는데, 여위고 둔하여 걸음이 느린 말이면 비록 급한 일이 있어도 감히 채찍질을 가하지 못하고 조심조심하여 곧 넘어질 것같이 여기다가, 개울이나 구렁을 만나면 내려서 걸어가므로 후회하였으나, 발이 높고 귀가 날카로운 준마로서 골짜기가 평지처럼 보이니 심히 장쾌하였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위태로워서 떨어지는 근심을 면치 못하였다.
아! 사람의 마음이 옮겨지고 바뀌는 것이 이와 같을까? 남의 물건을 빌려서 하루 아침 소용에 대비하는 것도 이와 같거든, 하물며 참으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랴.
그러나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어느 것이나 빌리지 아니한 것이 없다. 임금은 백성으로부터 힘을 빌려서 높고 부귀한 자리를 가졌고, 신하는 임금으로부터 권세를 빌려 은총과 귀함을 누리며, 아들은 아비로부터, 지어미는 지아비로부터, 비복(婢僕)은 상전으로부터 힘과 권세를 빌려서 가지고 있다. 그 빌린 바가 깊고 많아서 대개는 자기 소유로 하고 끝내 반성할 줄 모르고 있으니, 어찌 미혹(迷惑)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다가도 혹 잠깐 사이에 그 빌린 것이 도로 돌아가게 되면, 만방(萬邦)의 임금도 외톨이가 되고, 백승(百乘)을 가졌던 집도 외로운 신하가 되니, 하물며 그보다 더 미약한 자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맹자가 일컫기를 “남의 것을 오랫동안 빌려 쓰고 있으면서 돌려 주지 아니하면, 어찌 그것이 자기의 소유가 아닌 줄 알겠는가?" 하였다. 내가 여기에 느낀 바가 있어서 차마설을 지어 그 뜻을 넓히노라
 
이곡(李穀·1298~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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