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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더 나은 공동체 만들려는 노력의 표현

사람과 사람 잇는 연결고리 역할… 인사를 잘 해서 손해 본 사람 없어
 
사진:ⓒ gettyimagesbank

사진:ⓒ gettyimagesbank

1963년 7월 모스크바 영화제가 끝나던 날, 파리행 특급열차가 영화제에 참석한 귀빈들을 태우고 모스크바를 출발하고 있었다. 당시 아르헨티나에서 온 여배우 로리타 토레는 떠나는 열차에서 플랫폼에 있는 모스크바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헤어질 때 흔히 하던 것처럼 손을 좌우로 흔들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본 시민들과 TV를 보던 수많은 러시아인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저러지?” 러시아인들은 이별을 할 때 손을 위에서 아래로 흔드는데, 그녀는 좌우로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알고 있던 이들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당시 많은 러시아인은 그들과 다른 인사법이 있다는 걸 잘 몰랐다.
 
문화권마다 다른 언어가 있듯 인사도 그렇다. 지금도 수렵 채집으로 살아가는 아마존 지역의 몇몇 전통부족은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이 다가오면 그를 향해 화살을 쏜다. 처음 본 이들은 기겁을 하지만 맞추려는 게 아니다. 예포가 그렇듯 그들 앞에 떨어지도록 쏘는 ‘화살 인사’일 뿐이다.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은 만나면 서로 코를 비빈다. 아프리카의 닐로토하미트족은 상대의 얼굴이나 발 앞에 침을 뱉는 인사를 하고, 파푸아뉴기니섬에 사는 파푸아족은 방문자를 환영할 때 부족장의 부인이 가슴을 내미는데, 방문자는 그 가슴에 살짝 키스를 한다.
 
코를 비비거나 침을 뱉는 인사도
문화권마다 다른 언어가 있듯 인사도 그렇다.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은 만나면 서로 코를 비빈다. / 사진:ⓒ gettyimagesbank

문화권마다 다른 언어가 있듯 인사도 그렇다.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은 만나면 서로 코를 비빈다. / 사진:ⓒ gettyimagesbank

인사법은 천차만별이지만 인사 자체가 없는 곳은 없다. 세상 어느 곳에나 인사가 있다는 건 그만큼 필요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너무 흔해 그 중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산소처럼 인사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인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중요하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권력거리가 큰 문화권은 인사를 중시한다. 인사를 하지 않으면 당사자에게 상당한 손해가 가해진다. 권력거리란 사회적 지위 간의 거리를 말한다. 예를 들어 거의 반말투로 친근하게 지내는 아빠와 딸은 권력거리가 가까운 것이고, 반대라면 권력거리가 먼 것이다. 다가가기 어려울수록 거리가 멀다. 대체로 가족 사이는 권력거리가 가깝고, 층층시하 지위로 가득 찬 조직은 멀다. 명령과 지시로 상징되는 군대는 권력거리가 아주 멀기에 인사는 필수다. 상관을 만났는데 경례를 하지 않는 군인은 당장 처벌감이다. 그러나 같은 군대라도 문화권에 따라 인사 사용방식이 다르다.
 
2차 대전 중 일본군에 포로로 잡힌 미군은, 미군에 잡힌 일본군 포로보다 훨씬 많은 고통을 겪었다. 포로들에게 우호적이지 않는 문화도 한몫했지만, 더 큰 이유는 인사에서 비롯됐다. 일본군은 미군 포로들보다 자신들의 지위가 높으니 당연히 합당한 예우, 그러니까 공손한 인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미군 포로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요구해도 거절했다. 일본군은 미군들이 저항 이상의 행동을 하고 있다고 여겨 혹독하게 대했다. 하지만 미군들이 생각하기에 일본군의 요구는 자신들의 존엄성을 해치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이 말했던 것처럼, 상대방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알았다면 하지 않았을 불필요한 고통을 주고 받아야 했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비슷한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권력거리가 가까운 곳에서 살았던 미군 포로들이 권력거리가 먼 일본군 휘하에서 고통을 겪었듯, 권력거리가 가까운 곳에서 성장한 젊은 세대들이 권력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회사라는 조직에서 예상치 못한 애로를 겪고 있다. 문화의 차이가 세대 간의 마찰과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꼰대’라는 신조어도 그중 하나다. 젊은 세대들은 대부분 ‘민주화 되어’ 권력거리가 가까운 가정에서 자랐지만 회사는 여전히 권력거리가 먼 곳인 까닭이다.
 
특히 갓 입사한 신입사원들이 애를 먹는다. 그렇지 않아도 낯선 일, 낯선 사람이 많아 어색하고 쑥스러운데 인사까지 하려니 죽을 맛이라 아예 사람을 피해 다닌다. 그들에게 인사는 해야 한다고 하기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고, ‘도대체 왜 이런 걸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하게 하는 애물단지다. 잘 모르는 사이인데도 해야 하는 게 의아스럽고, 아침에 한 번 했는데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나면 또 인사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하지 않아도 되는지 헷갈린다.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곳도 없고, 그런 사람도 없다. 머리로 아는 건 많은데 정작 직장생활에 꼭 필요한 무형의 지식은 거의 없다시피 하니 이래저래 직장생활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온라인 세상에 더 익숙한 신입사원들
더구나 이들은 어릴 적부터 온라인 세상에서 살아왔기에 오프라인에서의 만남과 경험은 낯설고 두려울 수밖에 없다. ‘방가’ 같은 글자나 이모티콘으로 간단하게 인사하다 온몸으로 하려니 그럴 수밖에. 그냥 고개만 숙이면 되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표현해야 하기에 더 그렇다. 온라인에서 이들 세대는 ‘좋아요’ ‘싫어요’를 마음대로 표현하는 등 호불호가 강하지만 오프라인에서는 그럴 수도 없다. 더 큰 문제는 이걸 윗사람들이 인사성 없고 무례한 태도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입사한 지 몇 개월 됐다는 한 젊은 사원이 이런 말을 했다. “이렇게 불편하고 어색한 인사라는 게 왜 생겼을까요? 안 하면 안 되는 건가요?” 정말이지 인사는 왜 생겨났을까? 모든 문화권에 있는 필수적인 것이라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인데 말이다. 일을 해야 할 이유를 알면 마음의 부담이 훨씬 덜하듯 인사를 해야 하는 이유를 알면 마음의 저항이 줄 수 있다(고개와 허리가 좀 더 가볍게(?) 굽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사는 사람들이 만나거나 헤어질 때 하는 말이나 행동이다. 인사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상하 간 지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인사와 친하거나 애정이 있는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인사다. 앞의 것은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고, 뒤의 것은 친구나 가족 같은 이들에게 한다. 두 인사는 기원이 다르다.
 
먼저, 친구나 친한 동료, 가족 같은 가까운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인사는 엄마와 아기 사이의 관계에서 생겨났다는 게 학자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지금도 그러하듯 엄마와 아기 사이에는 끊임없는 소통이 필요하고 또 이루어진다. 엄마가 “까꿍!”하며 ‘인사’를 건네면, 아기는 방글방글 웃는 미소로 답한다. 좀 더 지나면 까르르 웃기도 한다. 그러면 엄마는 눈웃음을 치고, 쓰다듬어 주고, 안아 주고 뽀뽀를 하며 사랑하는 감정을 표현한다. 아기도 크면서 똑같이 한다(늦게 들어오는 아빠는 뽀뽀라는 인사를 요구한다). 서로 더 가까워지려 하거나 친한 사이임을 확인하는 행동이다.
 
이런 ‘인사’가 없다면 어떨까? 엄마와 아기가 무표정하게, 이래도 시큰둥하고, 저래도 시큰둥한다면 이상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아기는 엄마의 모습에 불안해 할 것이고, 엄마는 그렇지 않아도 힘든데 아기 키울 맛이 뚝 떨어질 것이다. 이렇듯 사이를 도탑게 하는 행동을 통해 감정적으로 서로를 연결하는 게 인사다.
 
우리는 크면서 이런 행동을 다른 사람에게로 확대, 적용한다. 친하거나 친해지고 싶을 때 우리는 ‘안녕’이라고 말하고, 웃어주고(무표정한 건 인사가 아니다), 윙크 같은 눈웃음을 보내기도 한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라면 쓰다듬어 주고, 안아 주고 키스한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는데 조용히 눈길만 건넨다면 어떨까? 이 또한 이상할 것이다. 하이파이브를 하고 소리 높여 ‘잘 있었느냐’고 묻고, 어깨도 한 번 치고 해야 소원했던 친근함을 복원시킬 수 있다. 우리는 이렇듯 엄마와 아기 사이에 행해진 행위를 유대감을 높이는 장치로 쓰고 있다. 먹을 것을 주거나 선물을 교환하는 인사도 여기에 기반한다.
 
유대감을 높이는 인사는 친한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게 아니다. 유대감을 높일 수 있는 매개체가 있으면 잘 모르는 사이에서도 가능하다. 버스를 운전하는 운전기사들은 운행 중 반대편에서 자신과 같은 회사에 소속된 버스가 지나가면 서로 손을 들어 인사한다. 엄청나게 비싼 모터사이클 할리 데이비슨을 타는 이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도 길에서 만나면 손을 흔든다. 이들이 하는 인사는 세상에 흔치 않은 멋진 물건을 갖고 있는 ‘우리’라는 연대의식에서 나온다. 어마어마하게 비싸고 희귀한 자동차를 타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또 다른 인사는 지위 간의 차이에 바탕을 두고 있다. 모든 동물에게서 볼 수 있듯 집단생활을 하면 지위 차이가 생긴다. 우두머리와 부하가 생기고, 넘버2와 넘버3가 생긴다. 짝짓기를 위한 경쟁에서 생기는 차이일 수도 있고, 생존 자체를 위해 집단생활을 하다 보니 생겨난 차이일 수도 있다. 지위가 높을수록 권한이 많아지고 그러면 더 잘 살 수 있으니 지위 간의 경쟁 또한 당연히 생겨난다.
 
그런데 허구 헌 날 누가 더 센가를 두고 대결을 벌인다면 어떻게 될까? 개체는 물론 집단에게도 손해다. 외부에서 공격이 가해지면 힘을 모을 수 없다. 평소 힘을 소모하지 않을 질서가 필요하다. 그래서 생긴 게 사다리 구조의 위계서열이고 이 서열을 표면화한 게 인사라는 의례다. 이 인사는 보통 지위가 낮은 쪽이 높은 쪽에게 하는데, 한마디로 ‘당신이 나보다 높다는 걸 인정한다’는 걸 뜻한다. 대체로 고개와 허리를 숙이는데, 왜 그 많은 행동 중 하필 이런 행동이 인사가 되었을까?
 
경쟁 상황에서 상대를 공격하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게 눈으로 상대를 관찰하는 것이다. 상대의 움직임을 잘 알아야 하기에 생사가 걸린 일일수록 눈은 강렬하게 불타 오른다. 고개를 숙인다는 건 이렇게 중요한 시선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공격과 방어에 필요한 탐색을 하지 않겠으며 상대에게 모든 걸 맡긴다는 뜻이다. 흔히 말하는 존대행동(또는 복종행동)이다. 이런 행동은 시선을 중시하면서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들에게 흔하다. 개와 고양이들도 마찬가지다.
 
권력거리가 멀수록 존대행동은 강화된다. 무릎을 꿇거나 몸을 완전히 땅바닥에 대는 절이 대표적이다. 시각 포기는 물론이고 ‘내가 너보다 더 덩치가 크다’고 과시하는 공격행위와 반대되는, 몸을 작게 보이는 행위다. 공격 의사가 ‘1’도 없다는 몸짓이다. 왕에게 다가갈 때 특히 이런 행동을 많이 했다. 1636년 조선의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나와 청나라 황제에게 항복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인조는 그 추운 겨울날, 세 번 절하고 차디 찬 땅바닥에 머리를 부딪칠 정도로 아홉 번을 조아리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를 했다.
 
권력거리 멀수록 존대행동 강화

사진:ⓒ gettyimagesbank

손을 흔드는 인사나 악수도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둘 다 ‘당신을 해칠 어떤 무기도 들고 있지 않다’는 걸 보이는 행위다. 보통 악수를 서양식 인사로 알고 있지만 세계 각지에 같은 인사법이 있다. 파푸아족도 그렇게 하고, 아프리카의 마사이족, 반투족, 부시먼들도 악수로 인사한다. 서로 인사를 할 때 시선을 상대에게 고정시키지 않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전 세계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이 행동은 동의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대체로 존대인사는 수직적이고, 친근함을 위한 인사는 수평적이다. 존대인사는 신체접촉이 많지 않지만, 친근함을 위한 인사는 신체접촉이 많다. 인류행태학자 아이블 아이베스펠트에 따르면 신체접촉을 통해 “용기와 격려를 주고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시선 접촉도 그렇다. 예를 들어 갑자기 사람들 앞에 나가서 발표를 하게 되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옆에 있는 친한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이 눈길은 엄청나게 떨리고 두려우니 용기와 격려를 달라는 의미다. 그러면 친한 이들이 팔을 들어 ‘화이팅’을 외치거나 어떤 행동으로 ‘힘내’라는 신호를 보낸다. 존대행동에는 이런 게 없긴 하지만, 두 유형의 인사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가장 중요한 본질이 있다. 우호를 증진하는 기능이다. 질서를 높여 집단의 안정을 도모하고, 유대감을 통해 결속을 강화한다.
 
이것이 전 세계 모든 문화권에서 인사가 중시되는 이유다.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려는 노력이 인사에 들어있다. 그래서 존대인사를 소홀하게 하면 질서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버릇 없다’ ‘건방지다’는 말이 당장 나돈다. 친근함을 위한 인사에 무신경하면 ‘무시한다’는 볼멘소리를 듣는다. 함께 ‘우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력을 거부한 것에 대한 반발 작용이다(이 둘 중 굳이 더 중요한 걸 꼽으라면 당연히 존대인사다. 인사권이 상사에게 있는 데다 그들의 눈밖에 벗어나서 좋을 일이 없으니까! 하지만 즐거운 생활을 하려면 후자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어떤 기원을 가졌든, 인사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우리는 인사를 통해 우리 자신과 상대방을 연결하고, 더 나아가 조직 네트워크에 접속한다. 와이파이에 접속해 수많은 네트워크와 연결되듯 그렇게 인사는 우리 자신을 세상과 연결한다. 인사를 했을 때 상대가 즐겁게 받아주면 서로의 마음이 연결된다. 싫은 사람에게는 인사를 하기도 싫고, 받기도 싫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결 자체가 싫은 것이다. 인사담당(HR)을 오래 한 이들에 따르면 사표를 낼 사람은 인사부터 달라진다고 한다. 곧 퇴사할 것이라 연결을 하지 않으려 하고, 있던 연결도 끊으려 한다.
 
사표 낼 사람은 인사부터 달라져
왜 뛰어난 영업사원들이 고객에게 인사하는 걸 최우선으로 할까? 둘을 연결하는 무형의 선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안다. 고객이 인사를 받아 주면 드디어 그 고객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게 관계의 시작이라는 것을.
 
인사에 서투른 것과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인사를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 사람이 ‘우리’라는 네트워크를 거부하거나 곧 빠져 나갈 사람이라고 오해한다. 나는 그저 어색하고 낯설어서 그럴 뿐인데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한다. 성과가 좋아도 인정 받지 못할 수 있다. 인사(人事)는 말 그대로 사람이(라면) 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인사는 만사다. 전 세계 어디서나 인사를 하지 않아서 피해를 본 사람은 많아도, 인사를 잘 해서 손해 본 사람은 없다. 그러니 어색해도 해야 한다. 다행히도 어색함은 하면 할수록 사라진다. 그러면 이렇게 중요한 인사,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다음 회에 알아보자.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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