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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녀 말러 부인과 ‘불륜’이 그로피우스의 성공 원동력

김정운의 바우하우스 이야기 <8>
치명적인 여인 알마 말러 베르펠. 그녀는 음악가 말러의 부인이었고, 작가 베르펠의 부인으로 죽었다.

치명적인 여인 알마 말러 베르펠. 그녀는 음악가 말러의 부인이었고, 작가 베르펠의 부인으로 죽었다.

바우하우스 초대 교장 그로피우스에게 알마 말러(Alma Mahler·1879~1964)는 그야말로 ‘치명적 여인’이었다. 젊은 그로피우스가 왜 바우하우스를 맡아 그토록 엄청난 성취를 이룰 수 있었는가에 대한 그의 지극히 개인적인 심리적 동기를 이해하려면 무엇보다도 알마 말러와의 관계를 살펴봐야 한다. 바이마르의 바우하우스 시절, 신비스러운 카리스마로 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며 끊임없이 그로피우스와 부딪쳤던 바우하우스의 또 다른 스타 요하네스 이텐또한 알마가 그로피우스에게 소개한 인물이다. 그래서 알마 말러의 흥미로운 연애사를 조금은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기말 유럽문화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알마의 결혼 전 이름은 알마 쉰들러(Alma Schindler)다. 그리고 마지막 이름은 알마 말러 베르펠(Alma Mahler-Werfel)이다. 이름이 다 말해준다. 그녀는 당시 오스트리아 빈의 스타 작곡자이자 지휘자였던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1860~1911)의 부인이었다. 마지막 남편은 작가 프란츠 베르펠(Franz Werfel·1890~1945)이다. 그 사이에 발터 그로피우스와의 짧은 결혼생활(1915년 8월~1920년 10월)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이름에서 그로피우스는 뺐다. 잠시 뜨거웠던 그로피우스와의 사랑은 알마의 부끄러운 내면만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끝났기 때문이다(그로피우스는 알마가 평생 미안해 할 정도로 일방적으로 당했다. 그로피우스는 진정한 ‘젠틀맨’이었다).
 
말러, 교향곡 10번 미완성 상태서 숨져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알마는 오스트리아 빈의 풍경화가 에밀 야콥 쉰들러와 가수 출신 안나 소피 쉰들러 사이에서 태어났다. 알마는 아버지의 아틀리에에서 그림을 그리고 엄마의 피아노를 연주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녀가 13세 되던 해 아버지가 사망하자, 그녀의 어머니는 남편의 문하생이었던 칼 몰과 재혼했다. 알마의 어머니 또한 숱한 염문으로 유명했다. 칼 몰과는 쉰들러의 사망 전부터 ‘깊은 관계’였다. 어린 알마는 아버지를 쉽게 버린 어머니를 미워했다. 그러나 그녀의 남자관계는 어머니보다 훨씬 더 복잡해진다.
 
칼 몰은 ‘빈 제세시온(Wiener Secession)’의 멤버였다. 빈 제세시온의 리더였던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는 칼 몰의 집에 자주 드나들었다. 17세의 알마는 의붓아버지의 동료 클림트와 가까워졌다. 첫 키스 상대가 바로 클림트였다고 알마는 후에 고백한다. 클림트의 사생활을 잘 알았던 칼 몰은 두 사람 사이를 떼어 놓는다. 알마는 의붓아버지를 극도로 미워하게 되고, 이때의 경험으로 인해 나이 들면서 더욱 자유로운 사랑을 추구하게 된다.
 
알마의 외도로 괴로워하던 말러가 작곡한 교향곡 10번 악보.

알마의 외도로 괴로워하던 말러가 작곡한 교향곡 10번 악보.

1901년 22살의 알마는 41살의 구스타프 말러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말러는 이미 성공한 음악가였다. 둘은 이듬해 결혼한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조용히 작곡에 몰두하고 싶었던 말러와, 파티와 사교가 삶의 전부였던 알마는 자주 부딪쳤다. 씀씀이가 헤펐던 알마와의 결혼을 유지하기 위해 말러는 더욱 부지런히 일해야 했다. 1907년, 첫째 딸이 사망하자 둘 사이의 관계는 더욱 힘들어졌다. 말러는 신경질적인 젊은 아내를 피해 각국을 돌아다니며 연주활동에 몰두했다. 남겨진 알마는 수시로 외로워했다. 물론 수시로 다른 남자도 만났다.
 
젊은 프로이센 청년 그로피우스.

젊은 프로이센 청년 그로피우스.

1910년 6월, 알마는 오스트리아 티롤지방의 작은 휴양도시 토벨바트로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는 페터 베렌스의 건축사무소를 나와 자신의 건축사무소를 시작한 젊은 그로피우스도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31살의 빈 여인과 젊고 저돌적인 27살의 프로이센 청년은 바로 사랑에 빠진다.
 
몇 주간의 짧고 뜨거웠던 그로피우스와의 사랑을 뒤로 하고 알마는 당시 말러의 여름 별장이 있던 토블라흐로 돌아갔다. 알마는 그로피우스에게 우체국의 지정우편함으로 연락하라고 부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로피우스는 말러에게 직접 편지를 보냈다. 불같이 화를 내는 알마에게는 실수로 보냈다고 했다. 그러나 편지의 수신인은 아주 분명하게 ‘말러 감독님께’로 되어 있었다. 자신과 알마와의 관계를 아주 의도적으로 말러에게 알리려 했던 것이다.
 
당시 말러는 교향곡 10번을 작곡하고 있었다. 악보 곳곳에 말러는 괴로움을 고백하는 낙서를 써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마와의 사랑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결국 ‘너를 위해, 너를 위해 죽으리라, 알름쉬(für dich leben, für dich sterben, Almschi)’라고 썼다. ‘알름쉬’는 알마의 애칭이다.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의 자화상.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의 자화상.

그 다음해인 1911년 5월 18일, 구스타프 말러는 사망했다. 그해 여름 이후 전혀 진전되지 않았던 미완성의 교향곡 10번 자필 악보를 폐기하라는 유언도 남겼다. 그러나 알마 말러는 다른 작곡가에게 미완성의 교향곡 10번을 완성하도록 의뢰했다. 말러가 남긴 막대한 판권을 하나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말러의 교향곡 10번은 각기 다른 완성본에 따른 여러 버전으로 연주된다.
 
1910년 여름 어느 날, 그로피우스는 토블라흐에 머물고 있던 말러를 직접 찾아갔다. 아내의 젊은 연인과 마주친 말러는 자신의 별장으로 그를 데리고 왔다. 침착하려고 애쓰며 거실과 자신의 방을 오가던 그는 알마에게 그로피우스와 자신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했다. 알마는 말러를 선택했다. 당시 빈 최고의 음악가였던 말러의 부와 명예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절망하여 돌아간 그로피우스에게는 이렇게 편지했다. ‘내가 그대를 여전히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밤낮으로 당신만 생각합니다. (…) 당신이 성공할수록 당신은 나의 것이 됩니다.’
 
이제 막 자기 건축사무소를 시작한 젊은 그로피우스는 어떻게든 성공해야만 했다. 적어도 구스타프 말러 수준은 되어야 알마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알마의 부정은 말러에게 엄청난 고통이었다.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발표한 교향곡 8번을 알마에게 헌정했지만, 괴로움에 어쩔 줄 몰라 하던 말러는 네덜란드에서 휴양 중이던 프로이트를 만나 상담까지 받았다.
 
그로피우스·알마 5년 동안 부부로 지내
 
작가 프란츠 베르펠.

작가 프란츠 베르펠.

프로이트는 그의 결혼생활에 관해 치명적인 정신분석학적 해석을 내놓는다. 어린 알마는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그리워 19년 연상의 말러와 결혼했다는 것이다. 말러에게는 ‘어머니 애착(Marienkomplex)’이라고 진단 내렸다. 딸처럼 어린 부인에게서 어머니의 품과 같은 따뜻함을 찾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말러와 알마의 관계는 풀기 힘들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잔인한 정신분석학적 결론이었다. 많이 진부한 해석이기도 하다.
 
말러가 죽자, 알마는 그로피우스가 아닌 표현주의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1886~1980)와 아주 특이한 사랑을 한다. 7살 연하였던 코코슈카와의 사랑은 휴양지에서의 짧은 불장난에 불과했던 그로피우스와의 관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코코슈카의 집요함과 질투를 알마는 견딜 수 없었다(알마 말러와 코코슈카의 특별한 사랑이야기는 별도의 책 한 권이 필요하다). 몇 년간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코코슈카와의 관계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알마는 전쟁터의 그로피우스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때 그녀의 옆에는 코코슈카가 자고 있었다.
 
‘군인’ 그로피우스는 그 유혹에 그대로 넘어간다. 코코슈카의 집착에 질려있던 알마는 오랜만에 만난 남성적이며 귀족적인 ‘군인’ 그로피우스와 또다시 충동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1915년 8월 18일, 둘은 그야말로 충동적으로 결혼했다(알마와 그로피우스의 애증에 관해서는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다. 다음 호로 이어진다. 아무튼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알마 말러로 태어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죄다 자빠뜨리는 거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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