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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 후 둘러앉아 고기 굽던 모닥불, 건축 빅뱅 불 지폈다

도시와 건축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 무빙워크. 사진으로보면 모든 점이 모이는 곳이 소실점이다. [AP=연합뉴스]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 무빙워크. 사진으로보면 모든 점이 모이는 곳이 소실점이다. [AP=연합뉴스]

우리는 회식을 할 때 주로 고기집에서 한다. 뭔가 불을 놓고 그 위에 삼겹살을 구우면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진솔한 대화가 되는 듯하다. 그 고기가 소고기이면 더 좋다. 전 세계 문화를 통틀어서 식탁위에 진짜 불을 놓고 구워먹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고 한다. 서양에서는 바비큐를 식탁 옆에 따로 놓인 화로에서 굽는다. 그래서 우리나라 고기집을 ‘코리안 바비큐’라고 부른다. 회식을 고기집에서 하는 풍경은 마치 수렵채집의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예전에 수렵인들은 목숨을 걸고 함께 사냥을 하고, 사냥을 마치면 모닥불을 가운데 피우고 고기를 구웠다. 직장인들 역시 사회에서 목숨 걸고 힘을 합쳐 일을 하고 회식자리에서 불을 가운데 놓고 고기를 굽는다. 고기집에서 하는 회식은 수렵인들의 모닥불 식사자리인 것이다. 불을 가운데 놓는다는 것은 건축적으로도 큰 의미를 가진다.
 
 
모닥불이 만드는 공간구조
 
지난달 5일 헝가리 부하치에서 열린 부쇼 축제에서 광장 중앙에 피워놓은 모닥불을 중심으로 양털 코트를 덮어쓴 사람들이 돌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5일 헝가리 부하치에서 열린 부쇼 축제에서 광장 중앙에 피워놓은 모닥불을 중심으로 양털 코트를 덮어쓴 사람들이 돌고 있다. [AP=연합뉴스]

현대 과학에서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기원과 관련해 빅뱅 직후 공간이 인플레이션이 되면서 3분 동안 기본입자와 양성자 및 중성자 헬륨 원자핵이 순차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보고 있다. 빅뱅 이전에는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우리가 아는 이 세상은 빅뱅 이후에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건축의 빅뱅은 무엇일까. 건축에서의 빅뱅은 모닥불이다. 최초에 인류가 동굴 속에서 모닥불을 피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의 공간은 바뀌기 시작했다. 빅뱅 직후 우주 공간은 중심도 없이 팽창하는 무한의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에 태양 같은 항성이 생겨나면 비로소 태양을 중심으로 중력장이 만들어지고 공간의 균질이 깨어지고 방향성이 생겨난다. 그 때부터 지구를 비롯한 행성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태양에너지 덕분에 지구상에 생명체가 만들어지게 되었고, 수십억 년 시간이 흘러서 인간 같은 복잡한 생명체까지 진화했다. 건축에서 모닥불은 태양 같은 존재다. 모닥불은 인간이 만든 태양이다. 선사시대 때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태양을 바라보면서 태양을 중심으로 생활했다. 태양이 안 보이는 밤에는 태양빛을 반사시키는 달을 바라보면서 살았다. 혹은 더 멀리 있는 또 다른 태양인 별빛을 바라보면서 살았다. 인간은 자연이 만들어 놓은 빛을 보면서 살아가는 존재였다. 공간은 그 자연의 빛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모닥불이 삶의 공간에 들어오면서 인간은 비로소 자신이 만든 구심점을 중심으로 공간을 재구성했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듯이 인간은 모닥불을 중심으로 돈다. 서부영화나 피터팬 만화를 보면 인디언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모닥불 주위를 도는데 그것은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은 같은 맥락이다.
 
우리 일상에서 가장 큰 불인 태양은 1억 5천만㎞ 떨어져있고, 두 번째 주요 빛의 근원인 달은 40만㎞ 떨어져있다. 그렇게 멀리 있던 불이 내 바로 앞에 놓이게 된 것이 모닥불이다. 멀리 있는 불에서 점점 내 공간으로 들어왔다. 모든 동물들은 불을 두려워하지만 유일하게 인간만이 불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불을 중심으로 가깝게 모인다. 어렸을 적 추운 날 밤의 캠프파이어를 상상해보자. 모닥불 가까이는 따뜻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이 되고 거기서 조금만 더 멀어지면 열기가 없어져서 춥다. 특히 사람이 빙둘러가면서 앉게 되면 사람들의 무리 안쪽으로만 밝고 등 뒤로는 사람에 가려져서 불빛이 없는 어두운 공간이 된다. 자연스럽게 사람이 만들어진 벽이 쳐지게 된다. 이것이 모닥불이 만드는 공간의 구획이다. 모닥불을 쬐고 있는 사람들은 얼굴이 환하게 밝혀지면서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우리’라는 확실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다. 인간이 동물 중에서 신체적으로는 가장 약하지만 동물 세계를 압도할 수 있었던 것은 ‘불’을 사용해서라고 한다. 우리는 불이 고기를 익혀먹고 동물을 제압하는 방법 정도로만 생각을 했지만 그 밖에도 불은 ‘사회적 공간’을 만들고 ‘우리’라는 무리의식을 강화시키는 역할도 했다. 비로소 사피엔스는 더 많은 무리를 지어 다닐 수 있게 되었고, 사회는 더욱 정교하게 발달하였고, 다른 종들을 압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공동생산·공동소비의 공간
 
직장인들의 고기집 회식자리. [중앙포토]

직장인들의 고기집 회식자리. [중앙포토]

모닥불이 만드는 공간은 평등한 공간이다. 불은 가까이 가면 뜨겁고 멀리 가면 어둡고 춥다. 자연스레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닥불을 중심으로 같은 거리를 두고 빙 둘러서 앉게 된다. 권력자는 불 가까이에 앉고 권력이 없는 자라고해서 불에서 멀리 앉지 않는다. 인원이 늘어나게 되면 모닥불에 장작을 더 던져 넣고 원의 지름을 더 크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더 많은 사람이 불로부터 같은 거리를 두고 앉을 수 있다. 예전에 아서왕은 기사들의 권력암투를 없애기 위해서 원탁에서 회의를 했다. 그래서 아서왕의 상징은 ‘원탁의 기사’이다. 직사각형의 회의테이블에서는 좁은 쪽에 앉는 사람이 높은 사람이 된다. 회장님이 보통 거기에 앉아서 직원들의 옆얼굴을 편하게 보면서 회의를 한다. 직원들은 고개를 돌려서 불편한 자세로 회장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편하게 볼 수 있는 좁은 쪽 자리가 권력자의 자리가 된다. 그런데 원형은 어디가 구심점인지 알 수가 없다. 물론 문에서 먼 쪽이 최고 권력을 가지는 자리가 되긴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옆 사람과 거의 동등한 권력의 위계를 가지는 공간이 원형 테이블이다. 모닥불을 중심으로 불을 바라보면서 같은 거리를 두고 앉는 공간구조는 전형적인 평등한 공간구조다.  
 
이러한 공간구조는 당시 원시공산주의 사회시스템과 잘 어울리는 구조다. 냉장고도 없던 수렵채집의 시대는 사냥이건 채집이건 먹을 것을 구해오면 모두가 다 동등하게 나누어먹던 원시사회주의 경제시스템이었다. 이런 공동생산 공동소비를 하는 평등의 사회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구조를 모닥불이 만들어주었다.
 
모닥불이 만든 공간의 또 다른 특징은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게 한다는 점이다. 모닥불이라는 광원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무리의 중앙에 위치해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가 그 곳을 바라본다. 그림에서도 소실점이라는 것이 있다. 그림 안의 모든 선들이 모여지는 곳에 있는 점을 말한다. 중학교 미술시간에 배우는 내용인데 기억이 날 것이다. 그림의 역사를 보면 이 소실점이 그림 밖에 있느냐 아니면 안에 있느냐가 아주 중요한 차이를 나타낸다.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 시대의 그림을 보면 소실점이 없다. 이들의 그림에는 공간감이 없이 평평한 느낌이다. 중요한 사람은 크게 그리고 중요하지 않은 노예 같은 사람은 작게 그린다. 그러다가 서서히 공간감이 생겨나게 되면서 소실점이라는 것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내 공간 안의 소실점
 
르네상스 초기의 그림을 보면 소실점이 있어도 그림액자 바깥에 있었다. 이후 르네상스시대때 부르넬레스키에 의해서 투시도기법이 완성이 되면서 소실점이 그림의 내부에 놓이게 되었다. 소실점을 중심으로 투시도가 그려지고 그 소실점이 그림 내부에 있다는 이야기는 그림을 그리는 1인칭인 화가가 그림 구도안의 모든 것을 컨트롤하고 장악했다는 것을 말한다. 내가 중심이 되어서 주변 세상을 재정립해서 보는 자기주도적인 시각의 시작이다. 인류는 르네상스때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하늘이 돈다는 천동설을 포기하고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움직이는 지동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변두리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반대로 이 시대의 사람은 자신의 시점인 소실점을 중심으로 자신이 주체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무리의 시선이 모여지는 소실점이 먼 하늘에 있는 경우와 집단 내부에 있는 경우는 그림의 소실점이 그림 밖에 있는 것과 그림 안에 있는 것 같은 차이다. 모닥불을 통해서 인간은 비로소 공간적으로 구심점을 가지게 되었고 다른 동물과 차별화된 사회구조를 발전시킬 ‘공간적인 수단’을 가지게 된 것이다. 모닥불이 만든 공간구조는 인간 사회를 구심점이 내부에 있는 강한 조직으로 만들었고, 이는 인간만의 강점이 되었다. 같은 이유에서 지금도 우리는 조직의 구심점을 가지기 위해서 회식자리는 테이블 위 가운데에 불을 올려놓는 고기집에서 하는 것이다. 고기집 회식은 파스타집 회식보다 우리 회사라는 공동체 의식과 애사심을 고취시킬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 중 고기집 회식은 어떨까. 여유가 되신다면 소고기로.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하버드·MIT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젊은 건축가상 등을 수상했고 『어디서 살 것인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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