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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친일 청산이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면

김환영 대기자 / 중앙콘텐트랩

김환영 대기자 / 중앙콘텐트랩

시험이 코앞인데 연필을 깎거나 책상 정리에 착수하는 친구들이 있다. 부모의 애간장을 태운다. 작가 중 상당수는 원고 제출을 연기하고 또 연기하다가 최후의 순간에 원고를 제출한다. 미루는 게 습관인 작가는 원고 담당자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우리말로 미루기인 ‘프로크래스티네이션(procrastination)’이라는 영어 단어는 1540년대에 처음 생겼다고 한다. 지나친 미루기는 현대 심리학에서 비중 있게 다루는 연구 주제다.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미루기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역사상 대표적인 미루기의 달인은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다. 그가 16여년 동안 작업한 ‘모나리자’는 사실 미완성이라고 한다.
 
상습적인 미루기와 정반대로 고질적인 미리 하기도 있다. 예컨대 미리 하기가 습관인 사람들은 연말정산 기간 첫날에 연말정산을 끝낸다. 최대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미루기형 인간과 대조적으로, 미리형 인간은 최대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9시에 가까스로 출근하는 미루기형과 달리 어둑어둑할 때 집을 나선다.
 
미루는 버릇이 심각했지만 불멸의 업적을 남긴 다빈치 . [사진 피터 뷰리언]

미루는 버릇이 심각했지만 불멸의 업적을 남긴 다빈치 . [사진 피터 뷰리언]

미리 하기는 대체로 좋은 습관이다. 미루기와 마찬가지로 경우에 따라 본인과 주변을 괴롭힌다. 예컨대 원고를 일찌감치 제출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손볼 게 너무 많은 저품질 원고를 내미는 작가는 미루기형 작가 못지않게 원고 담당자를 곤란하게 한다. 뭐든지 미리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은 약속 시각 30분 전에 약속 장소에 도착한다. 카톡으로 ‘도착했다’고 알린다. 교통체증으로 10분이 더 필요한 상대방을 미안하게 만든다.
 
미리 하기는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 투입을 초래하는 경우도 많다. 상황이 급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각한 미루기 못지않게 그 반대도 문제라는 것을 인지한 학자들이 프리크래스티네이션(precrastination, 미리 하기)이라는 학술 신조어를 만들었다.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의 데이비드 로전봄 교수와 동료 학자들이 2014년에 만든 말이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미리 하기는 사람뿐만 아니라 일부 동물에게도 발견되는 성향이라고 한다.
 
철두철미하게 모든 것을 미루거나, 반대로 모든 것을 미리 하는 인간형이 있을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다. 하지만 다수 사람은 미루기도 하고 미리 하기도 한다. 예컨대 이메일 답장이나 청구서 지급은 칼 같은데 금연·금주나 운동은 미루고 또 미루는 사람이 있다. 관점에 따라 같은 행동이 미루기 일수도 미리 하기일 수도 있다. 예컨대 시험 전날 연필 깎기는 공부 미루기다. 동시에 평생 쓸 연필을 깎아두는 미리 하기이기도 하다.
 
미루기, 미리 하기라는 개념을 국가적·사회적 문제를 고민하는 데 응용해볼 수 있다.
 
카카오 카풀 앱을 둘러싼 갈등으로 분신자가 나왔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본격 개막하고 자율주행 택시·트럭이 등장하면 대량 실업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카풀 앱과는 비교가 안 되는 극심한 갈등을 낳을 수 있다. 정부가 미리형이라면 대책을 일찌감치 마련할 것이다. 미루기형이라면 대비를 최대한 늦출 것이다.
 
친일파 청산 문제가 더는 미룰 수 없는 중요하고도 시급한 과제라는 국민·유권자 그리고 정파가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의 목록은 길다. 최저 임금 인상을 통한 양극화 완화, 일자리 창출, 원전 폐기, 규제 완화, 기업 경쟁력 강화, 남북의 화해·협력·통일, 자주국방, 공교육의 정상화 같은 것들이다.
 
개인이 지나친 미루기나 미리 하기 문제를 해결하는 게 사회나 국가보다는 쉽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국가적 문제는, 가치관·이념이 다른 수천만 국민·시민·유권자와 주요 정당들이 함께 해결해야 한다. 대화와 설득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된다. 지지자만 믿는 정부와 정당은 국민·유권자를 미루기와 미리 하기의 ‘희생자’로 만든다.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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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