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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 영화] 천만영화 시대, 일상이 된 독점

박우성 영화평론가

박우성 영화평론가

우연히 『계몽의 변증법』(사진)을 다시 펼쳤다. 이 책은 1947년에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가 주도해서 작성되었다. 영화학 전공자로서 눈에 띈 건 ‘문화 산업: 대중 기만으로서의 계몽’이라는 챕터다. 이것을 처음 접한 건 학부생일 때, 그러니까 대략 20년 전 한국어로 번역되었을 즈음이었다. 당시 한국 영화학계는 차이, 해체, 균열 등과 같은 복잡한 개념어로 가득한 후기구조주의에 심취해 있었다. 이것에 비할 때 영화는 대중 기만의 장치일 뿐이라는 아도르노의 주장은 지나치게 선명한 나머지 단순해 보였던 게 사실이다. 놀랍게도 20년이 지난 이제야 그것이 어떤 최신 이론들보다 강렬하게 다가왔다.
 
계몽의 변증법

계몽의 변증법

아도르노는 대중문화에 회의적이었다. 심지어 대중문화라는 이름조차 거부했다. 그렇게 부르는 순간 대중의 자발적 참여라는 맥락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반면 그에게 대중문화는 문화산업일 뿐이었다. 그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독점한 소수의 권력층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대중을 하향 평준화시켜 동원하기 위한 지배수단에 불과하다. 그가 활동하던 당시의 나치즘은 차치하더라도, 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전쟁도 학살도 없었던 미국사회였다. 그가 보기에 미국 대중들은 대중문화의 향락 속에서 노동자로서의 지적 저항을 포기한 채 기만적인 환상에 젖어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대중문화의 단계에서 새로운 것이란 새로운 것을 배제하는 일이다” “문화산업은 하자 없는 규격품을 만들 듯이 인간을 재생산하려 든다” “대중매체는 단순히 사업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도르노가 문제시한 상황과 현재의 한국 영화산업을 동일시하거나, 특정 영화의 흥행을 비판하거나, 흥행에 동참한 대중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다. 복잡하게 말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최근 몇 년간 흥행한 대개의 한국영화가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 상황, 메시지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높은 영화적 교양으로 대중의 영화 감식안을 고양하는 게 아니라 낮은 수준으로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는 전략이 고착되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이제 한국에서 영화는 사업 외에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가고 있고, 이미 그렇게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한국영화산업의 대기업 독점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한때 존재했던, 이에 대한 문제 제기조차 이제는 도통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런 진단 역시 아도르노의 논의만큼이나 뻔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대기업 독점이라는 뻔한 문제는 훨씬 더 강력해졌는데 그것에 대한 문제 제기는 뻔하다는 이유로 힘을 잃고 있다. 독점을 둘러싼 복잡한 실타래를 다층적으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 상황에 비춰 볼 때 복잡해질수록 유리해지는 건 자본이다. 자본은 비판을 수용해 문제를 수정하는 대신, 사태를 복잡하게 만들어 비판을 지치게 하고는, 수정 자체가 필요 없는 상황을 이끄는 중이다. 아도르노의 선명한 선언들 이면에 지쳐가는 비판에 대한 경계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떤 영화가 전체 상영관의 절반을 차지할 때 어떤 영화는 몇십 개의 상영관도 확보하지 못하는 뻔한 반복들 앞에서 아도르노의 주장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이제 독점은 딱히 문제시되지도 않는다. 일상이 된 것이다. 다시, 아도르노를 음미할 때다.
 
박우성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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