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달빛기행’의 백미는 부용지의 화려한 야경이다. 연못에 비친 규장각의 그림자를 보며 궐내를 걷노라면 육백년 전 조선시대와 21세기를 오가는 독특한 체험을 하게 된다. [김현동 기자]](https://pds.joins.com/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904/13/642400f9-36c5-4475-a52a-d85c36864cd8.jpg)
‘창덕궁 달빛기행’의 백미는 부용지의 화려한 야경이다. 연못에 비친 규장각의 그림자를 보며 궐내를 걷노라면 육백년 전 조선시대와 21세기를 오가는 독특한 체험을 하게 된다. [김현동 기자]
‘창덕궁 달빛기행’ 시행 10년
왕의 집무실 인정전 둘러보니
금방 ‘주상전하’가 나타날 듯
낙선재 뒤뜰선 구슬픈 대금소리
연못 부용지는 궁궐미의 극치
효명세자가 만든 ‘춘앵무’ 공연
관람객 “궁궐의 아름다움에 놀라”
![청사초롱을 들고 창덕궁 궐내를 돌아보는 관람객들. [김현동 기자]](https://pds.joins.com/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904/13/0db952d4-d3d5-4cca-94bc-82b9a8dac301.jpg)
청사초롱을 들고 창덕궁 궐내를 돌아보는 관람객들. [김현동 기자]
진선문을 지나니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이 곧 자태를 드러낸다. 국왕의 즉위식, 대신들의 조회, 외국 사신의 접견 등 국가의 주요 행사가 열리던 곳이다. 정1품을 비롯한 표지석들이 가지런히 정렬해 있다. 활짝 열린 정전의 창호문 사이로 보이는 왕이 앉았던 어좌와 일월오봉도가 환한 조명 속에서 새 생명을 얻었다. 낮에 보던 고색창연함과는 전혀 다른 생동감이다. 금방이라도 ‘주상전하’가 나타나실 것 같다.
“한번 뒤를 돌아보라”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더니 도시의 화려한 야경 너머로 남산타워가 보인다. 600여 년이라는 긴 시간, 조선과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이라는 서로 다른 공간이 묘하게 교차되는 이곳, 이 순간이야말로 궁궐 야간 투어의 백미일 터다.
왕과 왕비가 생활하던 희정당은 현관 앞을 자동차 승하차가 가능하도록 만들고 그 위에 샹들리에도 설치해 흥미로웠다. 해설사는 “대한제국 시절 경복궁에 이어 창덕궁에도 전기가 설치됐는데, 경복궁의 3배 밝기였다”고 설명했다. 희정당 중앙 접견실에 있는 샹들리에 6점도 재단법인 아름지기와 효성그룹의 전등 및 전기시설 재현사업에 힘입어 4월부터 불을 밝혔다.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가 1989년까지 머물던 낙선재는 아기자기한 디테일이 돋보인 공간이었다. 특히 은은한 조명 속에 부각된 27종의 문창살 무늬는 하나하나가 감탄을 자아냈다. 낙선재는 24대 왕 헌종이 책도 읽고 서화도 감상하며 휴식하기 위해 만든 공간인데, 기실은 중전으로 맞고 싶었던 경빈 김씨를 3년 만에 기어이 후궁으로 들이고 신접살림을 위해 지은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헌종이 2년 만에 승하하는 바람에 이들의 뜨거운 사랑도 막을 내려야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평소엔 개방하지 않는 낙선재 뒤뜰로 올라가니 상량정이 나왔다. 누군가 구슬프게 대금을 불고 있다. 이날은 그믐이라 달이 보이지 않았지만, 보름달이 훤히 뜨는 날이면 단연 이 육각형 누각을 찾고 싶으리라. 꽃담에 동그란 만월문을 공연히 두 개씩이나 뚫어놓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땅을 상징하는 네모난 연못 안에 하늘을 상징하는 동그란 섬이 떠있고 섬 위에 인간을 상징하는 정자가 세워진 부용지는 궁궐미의 극치다. 연못 위 물결에 비친 규장각의 그림자에 다들 말을 삼켰다. 연신 사진을 찍던 회사원 팽윤정(31)·이민수(30)씨는 “어렵게 티켓을 예매해 처음 참여했는데 우리 궁궐이 이렇게 운치가 있고 아름다운 줄 처음 깨달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올해 102회 예정, 8월 7일 하반기 티켓 예매
![연경당에서 펼쳐지는 공연. [김현동 기자]](https://pds.joins.com/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904/13/8db7e25a-6b4b-48ed-acd7-fdcd228331ea.jpg)
연경당에서 펼쳐지는 공연. [김현동 기자]
따뜻한 생강차나 시원한 매실차 중 하나를 마시며 관람 선물로 받은 한과를 꺼내 먹는 사이 전통공연이 시작됐다. 효명세자는 춤과 음악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가 순원왕후 탄신 40년을 기념해 만든 춤 ‘춘앵무’를 비롯, 판소리 심청가 중 ‘심봉사 눈뜨는 장면’, 창호문 위로 펼쳐지는 그림자극, 부채춤 등 다섯 가지 공연이 이어지며 관람객들의 신명을 돋웠다. 세종시에서 KTX를 타고 올라왔다는 결혼 6개월차 이종선(43)·최지현(34) 부부는 “궁궐이 생각보다 크고 아름다워 놀랐다”며 “아이들이 태어나면 함께 꼭 다시오고 싶다”고 말했다.
기간 중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열리는 ‘창덕궁 달빛기행’은 올해 102회 예정돼 있는데, 하반기 60회(8월 22일~10월 27일)의 티켓 예매는 8월 7일 오후 2시부터 옥션티켓에서 진행된다. 만 65세 이상은 전화로도 예매할 수 있다. 외국인은 일요일에 관람할 수 있다.
이날 행사에 동참한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궁궐을 우리 곁에 살아 숨쉬는 문화유산으로 만들기 위해 최대한 개방하려고 한다”며 “한복 무료 입장 등 우리의 궁궐활용 정책을 벤치마킹하겠다며 프랑스 베르사유궁 관계자가 조만간 방한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궁중 연회, 과거시험 … 26일부터 궁중문화축전
![화관무. [연합뉴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1904/13/e99803ba-6d2d-4bb6-91ea-5dfacd2b51fd.jpg)
화관무. [연합뉴스]
이날 경복궁에서는 7개의 하이라이트 공연이 맛보기로 펼쳐졌다. 근정전 앞에서 ‘경복궁’을 시제로 3행시 과거시험을 치른 관람객들은 자리를 교태전으로 옮겨 왕비의 회임을 축하하고 경회루에 용이 나타났다는 경사스런 소식을 들었다. ‘경회루 판타지 화룡지몽’의 시작이다.
홀연히 등장한 일곱 선녀가 화관무(사진)를 추는데, 갑자기 조명이 어두워지자 한복 실루엣이 LED 조명으로 바뀌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어 고요한 연못 위로 한 여인의 노래가 들려오고 이어 용 한 마리가 등장해 국태민안을 축원했다. 수정전 앞에 모인 관람객들은 대한제국황실의 초청을 받은 외국 공사가 된 느낌으로 황실군악대의 브라스 밴드를 즐겼다.
26일 개막제에 이어 경복궁에서는 ‘왕과 왕후, 비밀의 연향을 열다’, 창덕궁에서는 ‘왕실 내의원 체험’, 창경궁에서는 ‘창경궁 양로연-가무별감’, 덕수궁에서는 ‘시간여행, 그날-고종’, 경희궁에서는 ‘어린이 궁중문화축전-아가씨들 납시오’, 종묘에서는 종묘대제와 종묘제례악 야간 공연 등이 다채롭게 이어진다.
정형모 전문기자/중앙컬처앤라이프스타일랩 hyung@joongang.co.kr
